윤사비 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 전 4.18-5.13 인사미술공간
전시장은 예술가의 손을 떠난 결과물이 얌전히 진열되어 있는 장소가 아니라, 기록물이 쌓여있는 창고나 작업이 진행중인 실험실같은 분위기이다. 전시의 주인공은 윤사비라는 작가 한명이 아니다. 1층의 ‘후리잘 컨슈머 프로젝트’는 여다함과, 지하 전시장은 2004년부터 ‘윤사비 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라는 명칭으로 진행해 온 몇몇 작가와의 생산물이 다큐멘타리 및 아카이브 형태로 보여지고 있다. 공동작업이 아니라, 윤사비의 마음에 드는 다른 작가의 작품이 끼어있기도 하다. 어떤 작업은 진위가 의심되는 자료들로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전시제목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공동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암시한다. 윤사비는 작가 간의 협업이 연애와 같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연애가 환상에서 시작해서 환멸로 끝날지 말지는 때에 따라 틀릴 것이며, 언제 결실이 맺어질지도 기약이 없다. 이러한 전략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이 세상의 절대 유일의 것으로 완성된 것이며, 그자체가 한 개인의 온전한 창조물이라는 관념을 거부한다.
그것은 곧 낭만주의로부터 기원한 예술가 및 예술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정하는 것인데, 근대의 자아중심주의는 작가를 객관성이나 논리를 초월하는 영감에 찬 예언자나 마술가, 또는 천재로 고양시키며, 대중들에게 각인된 바의 전형적인 예술가상을 정립시켰다. 그래서 창조자로서의 개인이라는 관념은 좌파 비평가들에 의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 낙인 찍혀왔다. 작가를 작품의 의미의 기원이자 고정점으로 간주하는 낡은 관념은 이미 사라진 듯하지만, 자본주의의 핵심인 시장 시스템이 편재하는 한 겉모습을 달리하며 집요하게 존재한다. 시장이 물신화하곤 하는 개인은 어원적으로는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가리켰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작품의 생산자는 여럿으로 쪼개진다. 개인 뿐 아니라 대상, 가령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사물인 상품도 익명화 된다. 간판들을 지우거나 작가들이 다시 만든 상표를 붙이는 등의 작업이 그것이다. ‘후리잘 컨슈머 프로젝트’는 빨간색 테이프로 도시의 간판 등을 지우는 작업인데, 장면이 나오는 모니터의 상표조차도 빨간 테이프로 가려진다.
작품들은 생활 주변의 이미지와 소리들을 취합하고 풀어놓으면서 건조하고 지루하게 펼쳐지는 일상의 장면들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한다. 사운드에 관심이 많은 작가 김영은과 음악가인 권병준과의 공동작업이 특히 그렇다. 균형을 맞추어 쌓아놓은 버려진 음향기기의 형태나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가 다소간 흥미롭다고 해서 그것 자체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것은 아니다. 작품은 협업의 과정자체, 거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와 예측불가능성을 공유하고자 한다. 한편 이러한 방식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로의 회귀이다. 작품이 완결이 아닌 영원한 생성의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한다는 것, 예술형식도 외적인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 등은 낭만주의의 또 다른 일면이기 때문이다. 비평가 G. 루카치는 낭만적 개인주의가 생활의 절대적 자유를 요구하였고, 창조적 주관성의 무제한적 자유로 인해 예술형식이 해체되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창작은 ‘인간의 행위 중 가장 무책임한 행위’(횔덜린)가 되었다. 윤사비가 매개가 된 작업들이 낭만적이든 아니든 간에, 어수선한 배경 속에서 명멸하는 인터페이스들이 무책임의 난점과 해방감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은 분명하다.
- 월간 퍼블릭 아트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