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인천문화재단 공공미술 프로젝트-홍예문 프로젝트
개념과 기능 사이에 놓여있는 공공미술
매끈한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삶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근자의 공공미술 사례를 보면 두가지 극점 사이의 스펙트럼에서 움직이는 듯하다. 하나의 극점은 개념주의라 할 만한 것으로, 기존의 공공미술이 가졌던 물신적 성격에 대한 반발로, 최종 산물보다는 작가나 관객의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기 위한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그것은 대안적 성격의 공공미술의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예술이 놓여진, 또는 놓여질 정신적, 물질적 삶의 맥락이나 면면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고,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신선한 자극을 준다. 1960년대의 어느 개념미술가가 토로한 대로, ‘이 세상은 다소 흥미로운 물체들로 가득 차 있기에’ 굳이 거기에 더 무엇인가를 첨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예술작품이 놓여져야 할 그 자리를 비워두거나 인공적으로 연출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최소한의 개입으로 만족하곤 한다. 우리를 시시각각으로 압박하는 환경, 가령 조그만 구멍가게 하나에 3-4개 이상은 동어반복적으로 붙어있는 간판들이나 기름 한방울 나오지 않는 작은 나라에서 어디를 가나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만한 수직적 밀집 구조는 공간에 비물질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한편 작가의 이념을 중시하고 ‘물질화’에 대한 반발하는 와중에 대중과의 소통을 소홀히 할 가능성도 있다. 이념이든 생산이든 대중과의 소통은 확실한 매개 고리라는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객관적으로 가시화되어야 할 매개고리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수 작가들의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을 때, 관념주의에 빠지고 만다. 기술이나 솜씨가 아닌, 의도나 태도만을 중시하는 것은 자칫 예술가의 주관성에만 방점이 찍힌 반쪽짜리 작품을 낳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극점은 객관적인 산물을 중시한다. 그것은 공공의 필요에 부응하여 훌륭하게 디자인된 물건 또는 작품을 만들어 수용자에게 ‘헌납하는’ 과정을 따른다. 그것은 통상적인 공공장식품처럼 일방적으로 제작,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건, 또는 작품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서 공동체의 필요성에 보다 부응하고자 한다.
더불어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 생산자들이 참여함으로서 작가 스스로도 변화하는 긍정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 점에서 그 결과물은 이전의 일방통행식의 장식미술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며, 디자인 면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낳곤 한다. 그것은 공공의 부름에 응하는 봉사자의 역할에 방점이 찍히면서,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서의 야심은 다소간 희생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홍예문 프로젝트는 이 양극의 극점 어디에 위치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개념과 기능을 모두 중시했으나, 어느 것도 충분히 만족시켜주진 못했다. 어느 한쪽에 치중하지 않고 모두 아우르려 했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의 성공이자 실패이다. 양극으로 함몰되는 것을 지양하고자 하는 태도가 지향점의 불확실성 때문에 어정쩡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면서 우리의 근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의 무대가 된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라는 역사적인 무게감, 이 통시성의 씨줄과 항구가 내려다 보이며 오래된 자연 풍경이 그대로 보존된 매력적인 공간, 이 공시성의 날줄을 잘 교차시켜 다른 무늬를 짜내야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몇 달간 고심하고 고생했을 작가들에게 부여된 과제였다. 역설적으로 현지의 장소성과 역사성이 너무 그럴듯하고 드라마틱해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끼어들 여지가 좁아진다. 거기에는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그림을 완전히 지울 수도 없고 지워서도 안되는 상황이다. 역사든 자연이든 기존의 의미와 조건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형태와 의미의 가지치기를 시도해야 한다.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홍예문 프로젝트의 참여 작가 17명은 백지 위에다 무엇인가를 처음처럼 그리는 식이 어닌, 그때 그때의 상황에 개입하는 전략을 취했다.
자유(만국) 공원, 공시성과 통시성이 교차하는 지대
이 프로젝트 관람을 기회로 처음 공원에 들른 필자는 아직도 그곳이 만국공원이지 자유공원인지 헷갈린다. 그곳이 ‘만국’이라 함은 1883년 강제 개항 이래 일본, 청나라, 유럽 등 ‘만국’의 식민지 쟁탈의 전진 기지였기 때문이다. ‘자유’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래,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이념이 사탕발림된 남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1905년에 착공되어 1908년에 준공된 홍예문과 그 일대의 공원은 역사의 부침에 따라 이념의 깃발을 갈아치우면서 장소의 정체성도 수시로 변해갔던 것이다. 축제를 진행하면서 배포한 책자로, 홍예문 프로젝트 팀이 인천시 역사자료관 등의 후원을 받아 제작한 자료집 [만국공원의 기억] 말미에는 ‘만국의 자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것은 지금 이곳에서 실행하는 예술작업들이 평등과 자유를 겸비하는 이상사회를 향해 다가가야 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수려한 자연을 품고 있는 공원은 인간들이 그곳에다 무슨 기념비를 세우든 말든, 어떤 깃발을 꼿든 말든 묵묵히 그 자리에 존재해왔던 강력한 현존감이 있다. 소풍의 계절인 4월 말의 그곳은 평일 오후인데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방문자들로 북적거리는, 시민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그러한 장소였다. 구청이나 시에서 조성해 놓은 공원 중에는 시민들의 외면을 받는 죽은 장소들이 적지 않음을 생각해 볼 때, 이 공원이 가지는 천혜의 자연적 매력과 역사적 흔적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대단하였다. 우리는 봄바람에 흘날리는 벚꽃과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놓여진 작품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공원의 설치전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지역문화에 관한 많은 워크샵과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교육 예술프로그램, 그리고 인천 중구청의 지원을 받아 더불어 진행한 축제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하게 실행된 전체 일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4월 7일부터 30일 사이에 전시되는 공원 내의 설치작품은 영구적인 것도 있고 일시적인 것도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을 지닌 다른 작품들과 달리 공원 설치물은 물리적으로 남아있으며, 공원을 방문했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난 작품이기 때문에 홍예문 프로젝트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원에 남아있는 결과물을 통해 필자로서는 직접 확인할 길이 없는 작가들의 의도와 프로젝트 진행 과정의 밀도를 간접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뜬금없는 방문자로서의 관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작가의 의도와 손을 이미 떠나 불특정 다수를 접해야 하는 공공미술의 성격 때문이다. 필자가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들과 현장에 방문한 것은 전시 기간 중인 4월 26일이었는데, 가장 먼저 맞딱뜨린 것은 상당수의 작품이 변형되고 작동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작품이 놓여지는 물리적 조건 및 매체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장소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작품으로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몇몇 작품에서 유령처럼 맴돌 뿐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 유서깊은 장소에서의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있는 이러한 태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설치 전시의 서문 중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홍예문 프로젝트는 한 장소의 탄생과 소멸, 융성과 쇠락의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자 한 공공미술이다’는 첫문장은 식민지, 이념 대립 등 한 장소에 내재된 역사적 다층성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워크샵도 4차례나 진행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곧 ‘우리의 사업목적은 어디까지나 현재적 삶의 리듬과 실제를 스스로 북돋고 나누며 퍼뜨리는 것’이며, ‘공공미술의 형식을 갖추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벌이는 일은 부족하나마 스스로 삶의 신명을 엮어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공공미술은 무엇보다도 진솔하고 명랑한 삶의 기폭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17명의 젊은 작가가 역사성과 장소성에 짓눌리지 않고, ‘현재적 삶의 리듬’을 구가하려는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일단은 무엇이 더 중요하다/아니다를 떠나서 그들의 의도를 따라가면서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공원의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 홍예문 프로젝트
김수환과 신승범의 [집어 올리기]는 ‘국수가락을 쉽게 집어올리듯이 인천 중구의 문화환경을 활성화 시키자는 뜻’을 담고있다. 무언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성공적으로 털어낸 작품이다. 박진경, 오은미의 작품 [홍예문을 달래다] 역시 불행한 과거가 점철되어 위축된 근대인의 모습이라는 상투적 상상을 벗어나, 그날그날을 강인하게 살아냈을 민중들의 모습을 경쾌하게 재구성한다. 둘다 벽화인데 칙칙한 벽면을 색색으로 수놓은 그래픽은 마치 성공적인 낙서미술처럼 그 고유한 상황 속에서 활기를 부여받는다. 가벼움을 지향하는 태도는 사업 보고회 동안 잠시 보았던 영화 [맥아더는 알고 있다]의 몇몇 장면들에서 강하게 읽혀졌는데, 제 흥에 겨워 예술을 논하는 신파극 풍의 ‘로맨스 영화’(?)에 뜬금없이 붙여놓은 맥아더라는 이름이 역사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듯했다.
민원근의 작품 [일상으로]는 자유공원의 문제적 주인공인 맥아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존폐여부로 논란이 되어온 맥아더 동상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시멘트 시계탑을 지나 지나치게 좌대가 높아 올려다 보기도 힘든 곳에 놓여 있다. 작가는 ‘동상으로서의 맥아더는 너무 지쳤다’고 생각해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맥아더 상을 만들었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한 작품이었는데, 이미 파손되어 실제로는 볼 수 없었다. 장광현은 맥아더 동상의 담배 파이프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작품 [담배 파이프-추억]이 ‘정치적인 의도나 메시지를 배제한 순수 기념물’이라고 밝힌다. 맥아더 보다는 초현실주의의 작품 속 파이프를 연상하게 하는 그것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마그리트)를 패로디--마치 ‘이것은 역사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듯--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파이프 입구를 재떨이로 전용하면서 시각적인 재미와 기능성을 살린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작품 좌대에 콘크리트 타설 자국과 틀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완성도에 문제가 있었다.
역사적 장소성을 염두에 둔 작품이 없지는 않았다. 개항기의 옛 인천의 풍경이나 지금은 사라진 옛 건축 자리에 그 당시의 사진이 새겨진 반투명 구조물을 설치한 경우가 그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이곳을 교차시키는 시사적이면서도 시적인 작품이었지만, 구조물이 지금 이곳의 경관을 가린다는 약점이 있었다. 결국은 프로젝트가 벌어지는 장소의 역사성을 총체적으로 다룬 제대로 된 ‘작품’은 필자에게도 이 장소에 대한 훌륭한 가이드가 되주었던 한권의 책자였다. 물론 만화와 사진자료, 도표 등으로 만들어진 이 책자도 하나의 ‘개념 미술’로 본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다. 공원을 방문객 및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구체화된 미술작품으로 버무려진 역사적 메시지 아니었을까. 리뷰를 쓰다보니, 필자가 너무 역사적 의미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능적인 측면에 눈을 돌려보기로 한다.
신준식의 [자유마을]은 산책로 주변에 설치한 비둘기 집인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들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김수환과 신승범의 [공원환경 표지판]은 애완동물의 배변 용구를 챙겨오라는 메시지를 색다르게 표현한다. 박영식, 오혁재, 김홍희의 [산책로]는 70미터에 달하는 나무로 된 산책로와 벤치인데, 가로등 전원을 끌어들여 걸을 때마다 센서에 의해 빛이 비추어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장소를 차지한 면적으로 치면 가장 큰 작품이기도 한데, 수직적 기념비를 넘어서 공원의 굴곡을 따라 배열된 연극의 무대이기도 하다. 근대의 강박관념이 된 수직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친환경 소재로 땅을 포용하는 이 작품은 ‘나의 이상적인 조각의 길이다’이라고 주장했던 미니멀리즘의 정신을 떠오르게 한다. 통나무 뒤에 받침대나 그루터기에 칠한 색 등은 그리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색색의 의자에 앉아서 여고생처럼 놀고있는 아줌마 무리를 발견하고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한준희의 [레인보우 라이팅]도 길 사이에 센서가 부착된 조명장치가 달린 작품이다. 가로등전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낮에는 페트병 껍데기만 메달려 썰렁해 보이는 것이 단점이다. 일곱색깔의 조명은 ‘무지개처럼 된 돌문’이라는 홍예문의 역사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나무 산책로도 그렇고, 센서가 달린 작품은 낮에는 효과가 없고 인적이 드문 밤에는 공원 내의 야생 동물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창기의 [타임캡슐]은 주민들이 소장품을 담아 10년 후 개봉되는 타입캡슐이다. 돌로 육중하게 봉인된 캡슐의 시한이 10년이라는 것이 너무 짧지는 않은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대감각이라는 것이 세대마다 다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벤치의 기능도 겸하고 있는데, 공원에서의 설치작품 중 가장 안정감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공간에 구현하려는데 있어서 개념적이거나 회화적인 접근방식은 물리적 견고성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이 많은데, 이 작품은 조각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에서 미더웠다. 공원 설치물 중 많은 부분이 물리적으로 헐겁고 부실한 면이 있어서 더욱 돋보인 작품이다.
김수환, 신승범, 오은미, 박진경의 작품 [배출의 세계]는 화장실 내 외부의 페인팅 작업이다. 익명의 공중이 사용하는 화장실이라는 깨름직한 낯설음을 친숙함으로 바꾼다. 신승범, 박진경의 [무릉도원]은 동네 어르신들께서 자주 모이는 정자에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을 그린 작품이다. 그날도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낡은 건축물을 산뜻하게 리노베이션한 효과가 난다. 오은미, 박진경의 [만인]은 홍예문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의 둥근 장식물을 재미있는 얼굴로 변모시킨다. 잠깐 지나는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만지작 거리며 즐거워하였다. 김수환, 신승범의 [벤치]는 벛꽃이 만발한 산책로에 놓인 벤치를 장식한 것이고, 근처의 [힘내 계단]은 가파른 계단 아래에 그려진 그림인데, 벌써 물감이 다 지워졌다. 이 작품 뿐 아니라, 실외에 그려진 회화적 작품들의 상당수가 시간의 시험을 버텨내지 못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것들은 그곳에 원래부터 있었던 흉물스러운 기념비들보다 일찍 수명을 다할 것이다. 공공미술은 사후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관객과의 상호소통을 도모한 작품으로 양승수의 [숲의 고백]과 변재범의 [메신저 로봇]이 있다. 전자는 디지털 시대에 아나로그 방식으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포스트 박스이고, 후자에서의 소통은 디지털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변재범의 작품은 로봇의 출력물을 통해서 인터넷 사이트와 현장 관람객 간의 소통을 유도했다고 하는데, 역시 다른 많은 작품처럼 작동정지 상태였다. 깡통로봇같은 형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이지만 공공미술 작품의 수명이 채 한달이 안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공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미술작품은 보다 많은 변수에 노출되어 있다. 새로운 공공미술 은 화이트 큐브 내의 작품을 뻥튀겨서 공공장소에 갖다 놓는 식의 기존의 공공미술과는 다른 도전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도전이 무색한 결과물들을 근자의 공공미술에서 종종 발견하게 됨은 유감스런 일이다. 이러한 체험에 반복 노출된 관객들은 이전의 조형장식물 보다 더 금방 싫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공원에 설치된 작품들이 시간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금방 사라지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새로운 공공미술이 기존의 고답적인 맥락을 벗어남에 있어 낭만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현실 속에 제대로 서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어야 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사실 현대미술의 불확실한 면모는 대중들에게 ‘불안한 오브제’(해롤드 로젠버그)를 강요해 왔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결과물보다는 작가의 개념과 의도가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념비성을 벗어나고자하는 대안의 공공미술도 개념주의와의 결합을 통해 그 논리가 더 굳건해지고 외연이 넓어졌다.
개념주의는 ‘기성의 예술은 죽었으며’,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으며, ‘모두가 예술가’이고, ‘예술은 길거리에 있다’는 근사한 말들을 쏟아냈지만, 예술이 삶과 현실에 용해되려고 할수록 예술가에게는 더 많은 내공과 행운이 필요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술에 대한 정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소한 남아있는 진실은, ‘작가의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타타르키비츠)이다. 작가의 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고,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개념의 보충이 필요하다. 기술이나 생산물 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에 못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단일한 메시지를 강요하는 기존의 내용주의 미학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 자체의 존재감으로 작가에게나 관객에게 큰 화두를 던졌을 법한 유서깊은 장소에서 벌어진 공공미술은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표현의지가 돋보이기는 하였으나, 객관적인 산물이나 개념이 받쳐주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프로젝트 관람을 기회로 처음 공원에 들른 필자는 아직도 그곳이 만국공원이지 자유공원인지 헷갈린다. 그곳이 ‘만국’이라 함은 1883년 강제 개항 이래 일본, 청나라, 유럽 등 ‘만국’의 식민지 쟁탈의 전진 기지였기 때문이다. ‘자유’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래,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이념이 사탕발림된 남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1905년에 착공되어 1908년에 준공된 홍예문과 그 일대의 공원은 역사의 부침에 따라 이념의 깃발을 갈아치우면서 장소의 정체성도 수시로 변해갔던 것이다. 축제를 진행하면서 배포한 책자로, 홍예문 프로젝트 팀이 인천시 역사자료관 등의 후원을 받아 제작한 자료집 [만국공원의 기억] 말미에는 ‘만국의 자유’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것은 지금 이곳에서 실행하는 예술작업들이 평등과 자유를 겸비하는 이상사회를 향해 다가가야 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수려한 자연을 품고 있는 공원은 인간들이 그곳에다 무슨 기념비를 세우든 말든, 어떤 깃발을 꼿든 말든 묵묵히 그 자리에 존재해왔던 강력한 현존감이 있다. 소풍의 계절인 4월 말의 그곳은 평일 오후인데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방문자들로 북적거리는, 시민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그러한 장소였다. 구청이나 시에서 조성해 놓은 공원 중에는 시민들의 외면을 받는 죽은 장소들이 적지 않음을 생각해 볼 때, 이 공원이 가지는 천혜의 자연적 매력과 역사적 흔적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대단하였다. 우리는 봄바람에 흘날리는 벚꽃과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놓여진 작품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공원의 설치전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지역문화에 관한 많은 워크샵과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교육 예술프로그램, 그리고 인천 중구청의 지원을 받아 더불어 진행한 축제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하게 실행된 전체 일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4월 7일부터 30일 사이에 전시되는 공원 내의 설치작품은 영구적인 것도 있고 일시적인 것도 있다. 프로그램의 성격을 지닌 다른 작품들과 달리 공원 설치물은 물리적으로 남아있으며, 공원을 방문했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난 작품이기 때문에 홍예문 프로젝트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공원에 남아있는 결과물을 통해 필자로서는 직접 확인할 길이 없는 작가들의 의도와 프로젝트 진행 과정의 밀도를 간접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뜬금없는 방문자로서의 관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작가의 의도와 손을 이미 떠나 불특정 다수를 접해야 하는 공공미술의 성격 때문이다. 필자가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들과 현장에 방문한 것은 전시 기간 중인 4월 26일이었는데, 가장 먼저 맞딱뜨린 것은 상당수의 작품이 변형되고 작동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작품이 놓여지는 물리적 조건 및 매체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장소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작품으로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몇몇 작품에서 유령처럼 맴돌 뿐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 유서깊은 장소에서의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있는 이러한 태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설치 전시의 서문 중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홍예문 프로젝트는 한 장소의 탄생과 소멸, 융성과 쇠락의 과정을 면밀히 살피고자 한 공공미술이다’는 첫문장은 식민지, 이념 대립 등 한 장소에 내재된 역사적 다층성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워크샵도 4차례나 진행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곧 ‘우리의 사업목적은 어디까지나 현재적 삶의 리듬과 실제를 스스로 북돋고 나누며 퍼뜨리는 것’이며, ‘공공미술의 형식을 갖추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벌이는 일은 부족하나마 스스로 삶의 신명을 엮어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공공미술은 무엇보다도 진솔하고 명랑한 삶의 기폭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17명의 젊은 작가가 역사성과 장소성에 짓눌리지 않고, ‘현재적 삶의 리듬’을 구가하려는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일단은 무엇이 더 중요하다/아니다를 떠나서 그들의 의도를 따라가면서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공원의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 홍예문 프로젝트
김수환과 신승범의 [집어 올리기]는 ‘국수가락을 쉽게 집어올리듯이 인천 중구의 문화환경을 활성화 시키자는 뜻’을 담고있다. 무언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성공적으로 털어낸 작품이다. 박진경, 오은미의 작품 [홍예문을 달래다] 역시 불행한 과거가 점철되어 위축된 근대인의 모습이라는 상투적 상상을 벗어나, 그날그날을 강인하게 살아냈을 민중들의 모습을 경쾌하게 재구성한다. 둘다 벽화인데 칙칙한 벽면을 색색으로 수놓은 그래픽은 마치 성공적인 낙서미술처럼 그 고유한 상황 속에서 활기를 부여받는다. 가벼움을 지향하는 태도는 사업 보고회 동안 잠시 보았던 영화 [맥아더는 알고 있다]의 몇몇 장면들에서 강하게 읽혀졌는데, 제 흥에 겨워 예술을 논하는 신파극 풍의 ‘로맨스 영화’(?)에 뜬금없이 붙여놓은 맥아더라는 이름이 역사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듯했다.
민원근의 작품 [일상으로]는 자유공원의 문제적 주인공인 맥아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존폐여부로 논란이 되어온 맥아더 동상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시멘트 시계탑을 지나 지나치게 좌대가 높아 올려다 보기도 힘든 곳에 놓여 있다. 작가는 ‘동상으로서의 맥아더는 너무 지쳤다’고 생각해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맥아더 상을 만들었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한 작품이었는데, 이미 파손되어 실제로는 볼 수 없었다. 장광현은 맥아더 동상의 담배 파이프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작품 [담배 파이프-추억]이 ‘정치적인 의도나 메시지를 배제한 순수 기념물’이라고 밝힌다. 맥아더 보다는 초현실주의의 작품 속 파이프를 연상하게 하는 그것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마그리트)를 패로디--마치 ‘이것은 역사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듯--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대한 파이프 입구를 재떨이로 전용하면서 시각적인 재미와 기능성을 살린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작품 좌대에 콘크리트 타설 자국과 틀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완성도에 문제가 있었다.
역사적 장소성을 염두에 둔 작품이 없지는 않았다. 개항기의 옛 인천의 풍경이나 지금은 사라진 옛 건축 자리에 그 당시의 사진이 새겨진 반투명 구조물을 설치한 경우가 그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이곳을 교차시키는 시사적이면서도 시적인 작품이었지만, 구조물이 지금 이곳의 경관을 가린다는 약점이 있었다. 결국은 프로젝트가 벌어지는 장소의 역사성을 총체적으로 다룬 제대로 된 ‘작품’은 필자에게도 이 장소에 대한 훌륭한 가이드가 되주었던 한권의 책자였다. 물론 만화와 사진자료, 도표 등으로 만들어진 이 책자도 하나의 ‘개념 미술’로 본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말이다. 공원을 방문객 및 관객이 기대하는 것은 구체화된 미술작품으로 버무려진 역사적 메시지 아니었을까. 리뷰를 쓰다보니, 필자가 너무 역사적 의미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능적인 측면에 눈을 돌려보기로 한다.
신준식의 [자유마을]은 산책로 주변에 설치한 비둘기 집인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이기도 하고, 새들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김수환과 신승범의 [공원환경 표지판]은 애완동물의 배변 용구를 챙겨오라는 메시지를 색다르게 표현한다. 박영식, 오혁재, 김홍희의 [산책로]는 70미터에 달하는 나무로 된 산책로와 벤치인데, 가로등 전원을 끌어들여 걸을 때마다 센서에 의해 빛이 비추어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장소를 차지한 면적으로 치면 가장 큰 작품이기도 한데, 수직적 기념비를 넘어서 공원의 굴곡을 따라 배열된 연극의 무대이기도 하다. 근대의 강박관념이 된 수직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친환경 소재로 땅을 포용하는 이 작품은 ‘나의 이상적인 조각의 길이다’이라고 주장했던 미니멀리즘의 정신을 떠오르게 한다. 통나무 뒤에 받침대나 그루터기에 칠한 색 등은 그리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색색의 의자에 앉아서 여고생처럼 놀고있는 아줌마 무리를 발견하고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한준희의 [레인보우 라이팅]도 길 사이에 센서가 부착된 조명장치가 달린 작품이다. 가로등전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낮에는 페트병 껍데기만 메달려 썰렁해 보이는 것이 단점이다. 일곱색깔의 조명은 ‘무지개처럼 된 돌문’이라는 홍예문의 역사적 의미와 무관하지 않다. 나무 산책로도 그렇고, 센서가 달린 작품은 낮에는 효과가 없고 인적이 드문 밤에는 공원 내의 야생 동물들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창기의 [타임캡슐]은 주민들이 소장품을 담아 10년 후 개봉되는 타입캡슐이다. 돌로 육중하게 봉인된 캡슐의 시한이 10년이라는 것이 너무 짧지는 않은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대감각이라는 것이 세대마다 다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벤치의 기능도 겸하고 있는데, 공원에서의 설치작품 중 가장 안정감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공간에 구현하려는데 있어서 개념적이거나 회화적인 접근방식은 물리적 견고성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이 많은데, 이 작품은 조각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에서 미더웠다. 공원 설치물 중 많은 부분이 물리적으로 헐겁고 부실한 면이 있어서 더욱 돋보인 작품이다.
김수환, 신승범, 오은미, 박진경의 작품 [배출의 세계]는 화장실 내 외부의 페인팅 작업이다. 익명의 공중이 사용하는 화장실이라는 깨름직한 낯설음을 친숙함으로 바꾼다. 신승범, 박진경의 [무릉도원]은 동네 어르신들께서 자주 모이는 정자에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을 그린 작품이다. 그날도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낡은 건축물을 산뜻하게 리노베이션한 효과가 난다. 오은미, 박진경의 [만인]은 홍예문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의 둥근 장식물을 재미있는 얼굴로 변모시킨다. 잠깐 지나는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만지작 거리며 즐거워하였다. 김수환, 신승범의 [벤치]는 벛꽃이 만발한 산책로에 놓인 벤치를 장식한 것이고, 근처의 [힘내 계단]은 가파른 계단 아래에 그려진 그림인데, 벌써 물감이 다 지워졌다. 이 작품 뿐 아니라, 실외에 그려진 회화적 작품들의 상당수가 시간의 시험을 버텨내지 못할 것임에 분명하다. 그것들은 그곳에 원래부터 있었던 흉물스러운 기념비들보다 일찍 수명을 다할 것이다. 공공미술은 사후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관객과의 상호소통을 도모한 작품으로 양승수의 [숲의 고백]과 변재범의 [메신저 로봇]이 있다. 전자는 디지털 시대에 아나로그 방식으로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포스트 박스이고, 후자에서의 소통은 디지털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변재범의 작품은 로봇의 출력물을 통해서 인터넷 사이트와 현장 관람객 간의 소통을 유도했다고 하는데, 역시 다른 많은 작품처럼 작동정지 상태였다. 깡통로봇같은 형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이지만 공공미술 작품의 수명이 채 한달이 안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공공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미술작품은 보다 많은 변수에 노출되어 있다. 새로운 공공미술 은 화이트 큐브 내의 작품을 뻥튀겨서 공공장소에 갖다 놓는 식의 기존의 공공미술과는 다른 도전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도전이 무색한 결과물들을 근자의 공공미술에서 종종 발견하게 됨은 유감스런 일이다. 이러한 체험에 반복 노출된 관객들은 이전의 조형장식물 보다 더 금방 싫증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공원에 설치된 작품들이 시간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금방 사라지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새로운 공공미술이 기존의 고답적인 맥락을 벗어남에 있어 낭만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현실 속에 제대로 서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있어야 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사실 현대미술의 불확실한 면모는 대중들에게 ‘불안한 오브제’(해롤드 로젠버그)를 강요해 왔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결과물보다는 작가의 개념과 의도가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념비성을 벗어나고자하는 대안의 공공미술도 개념주의와의 결합을 통해 그 논리가 더 굳건해지고 외연이 넓어졌다.
개념주의는 ‘기성의 예술은 죽었으며’,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으며, ‘모두가 예술가’이고, ‘예술은 길거리에 있다’는 근사한 말들을 쏟아냈지만, 예술이 삶과 현실에 용해되려고 할수록 예술가에게는 더 많은 내공과 행운이 필요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예술에 대한 정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소한 남아있는 진실은, ‘작가의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는 것’(타타르키비츠)이다. 작가의 의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고, 단순한 기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개념의 보충이 필요하다. 기술이나 생산물 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에 못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단일한 메시지를 강요하는 기존의 내용주의 미학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 자체의 존재감으로 작가에게나 관객에게 큰 화두를 던졌을 법한 유서깊은 장소에서 벌어진 공공미술은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표현의지가 돋보이기는 하였으나, 객관적인 산물이나 개념이 받쳐주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천문화재단 공공미술 프로그램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