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시간을 밝히는 고고학과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는 기상이 함께 한 ‘고고학적 기상도’란 임근우의 오랜 작업명제였다. 비교적 일관되게 이 명제를 화두삼아 회화와 입체, 판화와 설치 등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업을 오랫동안 선보였으며 이는 현재진형행이다. 그는 재료의 연금술사 마냥 다채로운 물성과 도상들을 통해 이야기가 있고 재미있으며 장식적인 그림을 연출해왔으며 나아가 항상 인문학적인 메시지를 담아왔다. 여기에 덧붙여 자신의 살고 있는 주변 공간에 대한 역사적, 고고학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을 곁들여 풀어내고 있다. 그것이 근작에서 만나는 ‘모락산성’ 기상도란 명제를 단 작업들이다. 지난 역사의 흔적들을 매개 삼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과거의 의미를 되물어보는 한편 현대인의 내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작은 여전히 진행형인 고고학적 기상도란 페인팅이며 두 번째는 금속판재를 이용한 부조적 작업,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려진 토기 그림과 솜으로 채워진 프레임작업,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변에 잇는 모락산성터를 복원해서 재현한 그림 및 이 모든 그림들을 아트상품으로 만들어 펼쳐놓은 매우 다양하고 현란하면서 종합적인 전시였다.

고고학적 기상도란 이름을 단 회화작업은 캔버스 바탕에 반투명물감을 수건에 홍건히 적셔 속도감 있게 밀고 나간 자취 위에 구름이 이미지를 두껍게 얹혀놓았다. 이는 마치 분청사기의 귀얄분청기법을 연상시키는 한편 화면을 몇 개가 층위로 나뉘고 깊이를 동반하고 있다.

자신의 집주변 산인 경기 의왕에 있는 모락산을 산행하면서 그 산과 산성에 관한 역사적, 고고학적 사실을 복원해낸 그림들이 그것이다. 한성기 백제시대에 산지를 둘러싼 돌로 쌓은 산성인 이곳은 경기 남서부에서 가장 오래된 관방유적이라고 한다. 지난 2005년도에 거의 완형에 가까운 상대로 지표에서 수습되었다고 하며 작가는 이를 기반으로 해서 복원된 산성을 상상해서 그렸고 그 그림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준법을 흉내내 그려졌다. 고고학적 연구와 미술행위를 접목한 사례로 이는 관방유적인 모락산성의 문화재적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이를 미술적으로 재해석하고 재탄생시키고자 하는 의도 아래 풀어져 나온다. 어쩌면 이런 시도는 한 지역에 사는 작가, 미술인들이 지역공동체의 학제간 연구와 성과에 관련된 의미 있는 시도라는 생각이다그는 고증에 의거해 상상해서 그린 모락산성 그림을 전통적인 동양화 화풍으로 그리는 가하면 이를 도기화 등으로 연결해 이른바 아트상품으로도 만들고 있다.

그는 스테인레스 거울 판재에 중절모 형상을 레이저로 컷딩하고 판재를 꼬아서 큰 중절모 위에 자라나는 무수한 작은 중절모를 만들어 마치 금관과 대수大首의 장식으로 제작하였다. 벽으로부터 일정한 간격을 지니고 돌출된 이 형상은 조명에 의해 벽에 그림자를 리우면서 무척 회화적인 선을 만들고 나아가 섬세하게 떨리고 진동하면서 동영상적인 시각적 일루젼을 준다.

그런 면에서 임근우의 작업은, 이전부터 지속되는 것이지만 항상 학문적인 연구과 탐색, 발굴이란 방법론을 가지고 미술행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항상 텍스트를 써내려가는 상징과 기호들로 직조된 문장 같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주된 상징들을 엮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계단형상의 이미지는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만나는 지층으로 이는 시간과 연대기를 보여준다. 돌도끼나 화석 잎사귀도 등장하고 오래된 토기의 형상도 보인다. 중절모형상은 고고학자들이 즐겨 쓴 모자로 고고학자를 암시한다. 나선형으로 꼬여있거나 꽈배기 형상은 기류를 표현하고 있고 구름과 소용돌이 등 역시 날씨, 기류와 관련된 형상들이다. 이 형상들은 화면을 배경으로 공기처럼, 솜사탕처럼 떠다닌다. 현실계를 지배하는 중력의 법칙을 가볍게 지우고 모두 공중 부양되어 덧없이, 지극히 가볍게 흘러 다닌다. 작가는 과거와 대화를 나누고 곧 닥칠 내일의 날씨를 접한다. 그 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운명이 부양한다.

고고학과 기상도란 사실 무관해보이면서도 이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지난 시간과 미래의 시간을 아우르고 지층으로 파내려가 만나는 무수한 시간의 층위와 하늘의 기류와 기압을 측정해서 그 행선지와 위치를 통해 날씨를 판단하는 기상이란 것은 묘하게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어 보인다. 우리가 매일 궁금해 하고 우선적으로 접하는 것이 다름 아닌 그날의 날씨, 기상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내가 발 딛고 사는 이곳 장소와 터전에 대한 의문과 해명이 결국 고고학이고 그것은 근원에 대한 모색일 것이다. 자신의 근원, 근본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란 시간 속에 사는 인간에게 불가피한 일이다.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가 맞물려 순환한다. 작가는 이를 서구적인 직선적 시간관과는 다른 ‘초월적 무시간관’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