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코드화되어 유통된다. 만물의 코드화의 원동력은 시장이다. 시장은 무의식이나 자연 등 이전 시대에는 상품화되기 힘들었던 영역까지 빼곡히 뒤덮는다. 현대인은 인간이나 그의 생물학적 뿌리인 자연보다는 인공화된 환경과 더욱 친숙해졌다. 환경은 감정이입된 사물, 또는 물신화된 사물들로 촘촘한 그물망을 이룬다. 그것들은 단순한 대상을 넘어 친숙함과 온기를 갖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티셔츠에 새겨진 만화부터 가상세계의 아바타, 세계적 규모의 행사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부터 사회적이고 거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각각을 대변하는 이름과 얼굴로 가득하다. 캐릭터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전통적인 화가나 조각가에 비해서, 코드화된 도상으로 다른 코드화한 사물들과 짝을 지어 다양한 차원의 파생상품을 낳기도 하지만,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거대 문화사업에 비한다면 미미한 규모이다.

미술분야에서의 캐릭터는 상품보다는 예술가의 자의식과 관련이 있으며, 때로 문화적 소수자로서의 비판의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술계에서도 적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 캐릭터와 연관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서양화를 전공한 이동기, 동양화를 전공한 권기수, 조각을 전공한 노준 세명의 작가의 예를 살펴보겠다. 아톰과 미키마우스라는 대중문화의 기호를 쪼개고 짜깁기하여 새로이 탄생시킨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는 귀여운 모습 이면에 무시무시한 분열성을 보여준다. 영원히 자라지 않으며 늙지도 않는 아토마우스는 작가의 분신으로, 여러 가지 복장을 하고서 기호화된 인공낙원 속에서 역할 연기를 한다. 상대적으로 고정된 도상이 다양한 맥락에 배치된다. 화려한 색면처리는 솜씨좋은 화가의 면모를 보여주며, 일러스트레이션의 성격이 강한 깔끔한 화면은 회화 뒤에 감추어져 있는 버거운 미학적 전통의 무게를 덜어낸다. 아토마우스는 작가 스스로 고백하듯 ‘한 여름날의 아이스크림’같은 확실한 효과를 지향한다.





특히 얼굴이 크게 표현되곤 하는 캐릭터는 일종의 가면같은 효과를 주는데, 가면이란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보여주면서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인류학자들은 가면을 고대 축제의 열기와 연결시키곤 하는데, 오늘날에도 가면은 현기증날 정도로 쌩쌩 돌아가는 현대적 환경과도 잘 어울리는 듯하다. 현대사회에서는 자의식이나 본질보다는 분열이나 가상이 더욱 현실적일 수 있다. 권기수의 캐릭터 ‘동구리’는 동글한 얼굴에 까치머리 또는 펑크 스타일처럼 위로 솟은 머리털, 기쁘거나 슬프거나 한결같은 표정, 깡통 로봇같은 몸뚱이를 가진 작가의 분신이다. 권기수가 창조한 캐릭터는 조각과 회화보다는 플래쉬 애니메이션이나 디자인된 물건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동구리는 일종의 클론으로, 클론의 고향이자 서식지라 할 수 있는 액정화면 같은 매체나 응용 상품에서 더 생동감을 가지는 것이다. 동일증식 집단인 클론의 이미지, 즉 하나의 모체로부터 탄생한 똑같은 표정의 캐릭터는 개체들의 재조합을 통해서 무한히 변주되고 있다.



노준의 캐릭터들 역시 귀엽고 동글동글한 형태, 깔끔하게 마감된 색채가 특징이다. 그의 캐릭터 뒤에는 크기와 질감이 똑같은 그림자 같은 형태가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명확히 디자인된 형태가 인공적 색면에 의해 다시 한번 강조되어 있는 캐릭터와 달리, 뒤에 있는 것들은 허연 밑바탕에 검정 카오스 패턴들이 표면을 뒤덮고 있다. 그것들은 캐릭터의 캐스팅 작업에 사용된 겉틀을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석고와 먹을 여러번 중첩하여 형성된 오묘한 무늬는 밀도가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관통함으로서 생긴 패턴이다. 그것들은 그림자나 공중에 흩날리는 연기처럼 불확정적이고, 명확한 궤적을 알 수 없다. 선명한 색채와 형태를 가지는 캐릭터와 연기처럼 표면을 휘감고 있는 카오스 패턴은 시각적으로 댓귀를 이룬다. 작가는 명확한 색과 형태로 살아있는 캐릭터와 그것의 짝패를 통해 동일자와 타자의 문제를 다룬다. 노준은 상품으로 대변되는 명료한 동일성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 즉 체계화의 바깥에 존재하는 생산물의 기원을 대면시킨다. 짝패를 이루는 쌍이 상호 간에 동등한 친구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동등한 존재와는 달리, 타자와는 투명한 소통 및 가치의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명료한 의미가 아니라, 의미화 내부에 감추어진 이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노준의 작품뿐 아니라, 예술가들이 만든 캐릭터에는 다양한 조형적 장치를 통해, 표면적이고 지배적인 코드에 의해 억압되는 충동의 이질성을 분출하곤 한다.
(한국 전력 사보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