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예술로 승화시킨 동서양 만남의 축제

1984년 1월 1일 전 세계에 방영된 위성 네트워크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고도로 제도화된 사회 속에서 억압적인 인간상황을 그린 조지 오웰의 원작소설 ‘1984’에 대한 백남준식의 반응이다. 미래사회에 대한 오웰의 암울한 비전에 반기를 들고, 인공위성이 전 지구인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그리고 1986년의 ‘바이바이 키플링’에서 백남준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던 소설가·시인 키플링의 예언에 대응하여 동양과 서양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보여줬다. 1988년의 ‘손에 손 잡고’ 역시 미국과 소련을 하나로 결합시켜 냉전체제를 불식시키는 비전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렇듯 백남준이 지향하는 주제는 차이와 구별을 한데 뒤섞음으로써 어울림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찌감치 미디어를 캔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장난감으로 본 백남준은 이를 통해서 궁극적으론 미디어의 인간화 즉 인간적인 미디어를 실현했던 것이다.

당시 이 프로젝트의 주요 스테이션으로 참여한 바 있는 KBS는 이 위성 삼부작을 계기로 백남준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올해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전(12월 30일까지 KBS 신관 특별전시장·02-739-8824)을 열었다. 이 전시는 작고한 지 1년여 지난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에 대한 존경의 염을 담고 있다.

전시에는 앞서의 위성 삼부작과 함께 여러 대의 모니터를 이용해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재구성해낸 소위 멀티모니터 계열의 작품 30여 점이 출품됐다. 이 경향의 작품들은 대략 1990년대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당시의 대표작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들이어서 그 의미를 더해준다. 더욱이 천장의 전면이 유리로 덮인, 층고가 높은 신관의 로비건물을 전시공간으로 마련함으로써 빛과 공간이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는 백남준의 작품에서의 역동성을 극대화했다.

이 작품들은 엄청난 스케일로 육박해오고, 이와 함께 그 개념적 특징들이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 사실상의 메인 작품에 해당하는 ‘거북’(1993)은 무려 166개에 달하는 TV 모니터를 동원해 만든 초대형 전자 작품이다. 토끼와 함께 백남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모티브인 거북은 동양의 전통과 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백남준은 이를 미디어로 재구성함으로써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정신을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골동품을 연상시키는 고물 TV에 동시대 예술을 결합시킨다. 이처럼 백남준은 온갖 이질적인 것들을 화해시킴으로써 축제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