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 미술평론가
정재호가 그린 수많은 허름한 건물에는 거주자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땟국물 어린 삶의 흔적을 자세히 훑어내린 건물 정면에는 인간의 표정이 담겨있다. 도무지 밖을 쳐다보기 위해 붙어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은 흐릿한 유리창의 무채색 계열이 장관을 이룬다. 간혹 열린 시커먼 창구멍들은 건물을 바라보는 인간을 향한 사물의 눈구멍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작품에서 사물은 인간에게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단기간에 급속히 낡아버려 더 이상 소통(유통)되지 않은 사물들이 가지는 고립과 유폐, 빈곤이 창안했다고 해야 할 다양성과 필연성의 연결망이 건물에 부속된 낡은 창문, 문, 개인 집기들에서 간접적으로 읽혀진다. 본래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 수직적 구조물은 인간주의를 기념한다. 그러나 작가는 수직적 기념비에서 어떤 핵심을 제거함으로서, 그것들을 인간 이후의 기념비들로 전치시킨다. 인간 의 대다수가 이렇게 비좁은 칸막이 공간에서 모여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묵시록적이다.
화면 위 아래에 여백을 두지않고 건물들을 수평으로, 또는 수직으로 붙여놓은 구조는 자연스런 관점이 아니다. 누추한 건물 주변에서는 전체적인 조망을 포착할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스펙타클한 장면들은 꼴라주의 산물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밀집된 대도시 주거 문화를 압축하면서 빠른 생산과 소비주기를 가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정재호의 그림은 무엇을 강하게 주장하거나 설명하기 보다는 중성적인 관점을 유지한다. 그의 작품은 기표와 기의를 일치시키면서, 배후에 숨어있을 심오한 통일성이나 형이상학적 질서를 배제하고, 관객의 시선을 무한한 표면의 흐름 속에 표류시킨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직시하면서, 인간이나 관념이 아니라 사물이나 상황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냉정한 열정은 누보로망의 정신을 떠오르게 한다.

누보 로망의 이론가이자 작가인 알랭 로브 그리예는 ‘세계는 의미있는 것도 아니고 부조리한 것도 아니다. 세계는 단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바로 이점에서 세계는 가장 주목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세계의 구체적이고 확고하며 물질적인 자기현전 속에서, 작가는 사물을 측정하고 위치를 정하고 경계짓고 정의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사물들을 묘사한다는 것은, 사물들을 마주보며 사물들의 외부에 단호하게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물의 표면에 대해 아무런 실권을 쥐고 있지 않으며, 인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사물들이 계속 남아있음을 자각한다. 표면 묘사에 맹목적일 만큼 탐닉하는 것은 이러한 외면성과 무관계성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정재호는 침묵으로 응대하는 사물의 세계를 직시하면서,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상황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출전 | 미술과 비평 2007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