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 미술평론가
김지훈의 조각들은 동물의 머리에 돋아난 뿔과 관객을 비추는 금속거울(수퍼 미러 강판)의 결합을 통해 드라마틱한 심리적 무대를 연출한다. 육면체의 평판 위, 또는 옆으로 돋아난 뿔은 관객을 비추며, 미묘한 각도로 굽이치는 뿔 또한 현란한 반영상을 만든다. 뿔은 평판과는 달리, 대상을 심하게 왜곡시키거나 분산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뿔은 평판의 부정이 아니라, 반사면이 내포하는 논리를 극단화시킨 것일 뿐이다. 뿔에다 머리를 맞추면 명함판 사진 크기의 상이 나오는 작품 [horn-2]는 관객의 참여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상호작용적인 작품이다. 뿔과 뿔이 돋아나는 평판의 형태와 크기는 다양하다. 왕관 같은 위용을 가지는 뿔, 양팔을 들어올린 것같은 형태의 뿔, 얼굴만 비추는 판, 전신을 비추는 판, 3개가 세트--다른 모양의 뿔을 비슷한 크기의 육면체에, 비슷한 모양의 뿔을 다른 길이의 육면체에 붙인 작품이 시리즈로 배열 됨--가 되어 설치된 작품 등, 최소의 구성요소로 최대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다양성과 통일성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김지훈의 작품은 다양한 뿔의 형태적 아름다움과, 그것을 솜씨있게 재현하는 기술적인 완성도에만 탐닉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심리, 문화, 사회 등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다산성이 있다. 작품 [horn-10]은 검지 손가락이 살벌하게 상대를 겨누는 칼처럼 길게 빼내어진 형태로, 뿔의 변주이다. 작가는 인간의 혀나 손가락 등을 공격성과 연결시킨다. 그것은 곤충의 입과 다리를 변형된 뿔로 간주하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반향된다. [horn-11]은 가시, 또는 뿔들이 요철 안에 촘촘히 박혀 그것을 보는 관객을 찌르는 듯이 보인다. 겹쳐진 가시 또는 뿔들이 배경을 이루는 평판에 반사된 실재와 반영의 복합물은, 복잡하게 꼬인 시선의 미로를 형성한다. 주체의 반영상에 얽힌 주제라는 면에서,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같은 곤충의 이미지는 다소간 의외적이다. 물론 그것들은 생김새의 유사성 뿐 아니라, 공격과 과시라는 양면성을 띈다는 면에서 외적으로는 뿔이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그러나 곤충이 나오는 작품들은 뿔 보다는, 거울이라는 김지훈 작품의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와 더욱 밀접하다.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그것은 심리학적인 거울단계와 연결되는 의태mimicry라는 주제인데,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자연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인류학적 전망으로 확대된다. 김지훈은 뿔의 강함과 공격성에서, 그것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것은 공격과 방어, 권위와 고립을 동시에 내포하며, 식물의 가시와 같은 형태적, 기능적 유사성을 가진다. 뿔은 머리에 난 것이란 점에서 자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작가는 뿔을 벗어버리고 싶지만, 뿔을 잃는 것은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빛나게 하지만, 동시에 고립시키는 이중성을 뿔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르시시즘과 공격성의 결합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최고의 단단함과 광택을 가지는 재료인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했으며, 이 밀도높은 재료를 가열하고 두들기는 과정을 반복 실행하여 복잡한 굴곡면을 가지는 미묘한 뿔의 형태를 뽑아냈다. 그렇게해서 화려하면서도 질곡을 만드는 뿔이 상징적, 물질적 차원에서 완성된다.
뿔처럼 거울이라는 주제도 양면적이다. 김지훈의 작품은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얽힌 심리적 의미를, 환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거울을 매개로 전개한다.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은 [정신분석 경험에서 드러나는 자아의 기능형성으로서의 거울단계]라는 논문에서 정체성의 형성과 자아구성의 순간을 주제로 다룬 바 있다. 거울 앞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자아라는 정체성은 허구와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다. 현대의 정신분석학은 거울이 공간적 일체화의 유혹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를 위해 환상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처음으로 인식하는 이미지는 오인에 의한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자율성이나 이타성은 부정된다. 거울 앞에 선 인간은 생애 최초의 수개월부터 나르시시즘과 공격성을 결속시킨다. 라캉은 이러한 맥락에서 정신분석학은 ‘박애주의자의 행위의 기저에 있는 공격성을 드러내야 한다. 이상주의자, 현학자 심지어 개혁가에게서조차 그들의 행동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공격성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지훈의 뿔은 거울과 뗄 수 없는 상보성을 가지고 있다. 거울 앞에선 인간은 부분적으로 보이는 조각난 육체를 벗어나 주체의 단일한 상을 접하게 된다. 거울은 실재가 아니라, 상상의 공간the Imaginary을 형성한다. 라깡은 이러한 국면(거울단계)을 동일화identification로 이해한다. 동일화란 주체가 이미지로 나타났을 때,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한다. 거울단계의 아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양육을 받아야 하며, 아직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총체적이고도 완전한 것으로 가정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주체는 거울단계에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 간의 불일치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을 보는 관객을 비추는 김지훈의 작품은 사유의 모델이 된다. 거울 앞의 관객은 원래의 모습을 감추고 환영과 관계를 맺는데, 뿔이 난 모습은 그의 현실이자 환상이며, 작품은 현실과 환상이 상호 전이되는 환상적이고 잠재적 공간을 제공한다. 그것은 개체의 자기 동일성을 확보하는 것임과 동시에, 개체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이중성을 말한다.
복잡한 곡면을 가지는 뿔에 반영된 만화경적 광채는 변화무쌍한 자아를 드러내 보인다. [거울의 역사]에서 라깡의 이론적 주제를 역사적으로 확대시킨 S.M. 보네는 반사상이 많아지면 상은 주체를 떠받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분산하고 흔들어 놓는다고 지적한다. 김지훈의 작품에서 표상은 작은 조각들로 분할되며, 주체의 결집 대신 흩어진 상들이 드러난다. 반짝거리는 표면의 신기루 안에서 인간은 특별한 중심의 위치를 상실한다. 여기에 불안스러운 이질감, 즉 타자가 개입된다. 그의 거울은 알지못한 얼굴이 솟아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보네는 반사상이 다름을 스며들게 할 뿐만 아니라, 거울이 가진 눈속임 능력은 의도적으로 대상을 변형시키고 착란을 유도하며, 존재의 해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김지훈에게도 작품을 통한 자신에로의 귀환은 확고한 자기 동일성이 아니라, 이질적인 타자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의 작품은 섬세한 심리학적인 무대를 펼치고 있지만, 거울과 연관된 또하나의 흥미로온 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모방이다. 라깡은 같은 논문에서 시선과 모방과의 문제를 다루었다. 라깡은 육체의 영상이 환상이나 꿈 속에서 거울이란 장치의 특성을 통해 드러낸다면, 거울 이미지는 가시적인 세계로 들어서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라깡의 흥미로운 주장은, 보는 행위는 유기체의 개체를 형성하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암비둘기의 생식선은 성에 관계없이 같은 종류의 비둘기를 바라볼 때 성숙하게 된다. 한 세대 내에서 홀로 사는 메뚜기가 모여사는 메뚜기를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바라보는 행위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시선은 유기체에게 의미깊은 변화를 야기시킨다. 생물학은 이 문제를 단순히 환경에 대한 적응이라고 결론내리지만,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오류를 답습하지 않는다. 라깡에게 영감을 준 것은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같이 활동했던 인류학자 로제 카이와이다.
라캉에 의하면 거울단계의 기능은 유기체와 유기체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사이에 어떤 관계를 수립하려는 것이다. 마단 사럽은 라깡의 이론을 해설한 책에서, 거울 단계는 어떤 동물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에 의태적으로 은신함으로서 자기의 진정한 본질을 소외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유아가 자신의 신체 이미지와 상상적인 통일을 생각하는 순간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울이나 의태가 말하는 것은, 유기체가 주체의 통제 밖에 있는 힘과 구조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 사마귀와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이미지에 홀딱 빠져든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적 동일성에 대한 주제에 대하여, 라캉은 카이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미지들의 구조에 의해 지배받으며, 이것이 인간 주체에게 중독성의 유독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카유와에 의하면 곤충들의 의태가 적을 속이거나 먹이를 쉽게 얻는 적응의 산물이 아니라, 곤충의 시각적 경험의 한 기능이다. 바라봄을 통해서 배경과 뒤섞이는 의태는, 환경과 일체화 된 채 자신의 자율성을 잃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광기의 발현이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곤충을 재현한 김지훈의 작품 [horn-1], [horn-8]은 전시부제이자 작품제목인 [horn] 시리즈의 처음과 마지막 순번을 가진다. 잘 연마된 금속표면은 곤충의 바닥에 깔린 동질의 금속면에 반사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놓여지는 주변 환경을 모방한다. 그것은 카유와와 라캉의 가설이 언급한,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방 현상에 나타난 공간성과 관련된다. 김지훈의 작품에서 반짝이는 곤충들은 주변 환경을 흉내내면서 유기체와 그를 둘러싼 환경 사이에 일어나는 혼돈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은 생존이 아니라, 죽음과 더욱 가깝다는 점에서, 뿔이나 거울이 가지는 이중성이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주변에 흡수된 유기체는 자신의 자족적인 한계인 정체성을 와해시킨다. 개체들은 공간 그자체로 매몰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별을 불가능하게 한다. 뿔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존재의 이중성을 탐색하는 김지훈의 작품은 자신을 확인하고자 거울 앞에선 개체가 자기동일성이 아닌 타자를, 삶이 아닌 죽음을 향하는 뫼비우스 띠의 순환 구조 속에 덧없이 놓여져 있음을 예시하고 있다.
출전 | 경기문화 재단 시각예술부문 지원사업 모니터링 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