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에 관한 사유_Text in Bodyscape 전
7.11-8.12
서울시립미술관
이선영 | 미술평론가
공공위생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현대미술 속의 육체는 나날이 위태로와지고 있다. 분쟁지역에서의 산자와 죽은자들이 병렬되어 있는 이종구의 작품에 나타나듯, 현대사회는 자본과 기술이 집약되면서 새로운 위험과 갈등이 창궐하는 지속적인 위험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27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전시는 세계의 척도가 되어왔던 이상(理想)적인 몸이 아니라, 이상(異常)성이 두드러진다. 환경과 개체를 분리하는 자족적인 윤곽이 흩어지는 병적 징후는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진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몸의 적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몸은 정신에 의해 제어되거나 초월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기술(記述)의 대상으로 재맥락화 된다. 육체가 ‘상징의 자료이자 기표들의 원천이며, 궁극적인 기의’(프로이트)라면, 상징적인 장인 예술작품을 가득 채우는 것 역시 정신이라기 보다는 몸이다. 전시부제에 있는 ‘텍스트’라는 단어는 의미가 각인되는 장소로서의 육체에 대한 관심을 부각시킨다. 이건용의 작품은 몸과 손이 닿는 범위에 칠해진 흔적을 통해, 그리기라는 기술의 보이지 않는 매개고리인 육체적 현존을 가시화한다. 몸을 주제로 한 이 전시의 많은 작품에서 자연이나 생물학의 대상으로서의 몸이 아닌, 텍스트로서의 몸이 강조된다. 몸은 완고한 물리적 덩어리가 아니라, 글쓰기처럼 순수한 차이로서 흔적을 남긴다.

관객을 무수한 입자로 변화시키는 영상(이배경)이나, 다양한 굵기의 선의 다발로 얽어놓은 목없는 군상들(안재홍), 층을 이루어 배열된 선에 새겨진 몸을 통해 홀로그램같은 환영을 연출하는 작품(홍성철)이 그러하다. 무기물이나 유기물 표면을 잠식하면서 분열하는 기관(김주연)이나 무차별적이고 무정형적으로 증식하는 기괴한 세포의 이미지(백기은)는 몸이 깊이가 아닌 표면으로, 유기적 조직화가 아닌 다수성으로 해체, 또는 확장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여기에서 몸은 단단한 경계를 풀어헤치고 미지의 영역으로 흘러가거나 펼쳐진다. 몸을 직접 찍어 전사한 작품(구경숙)과 대지 및 지층과 몸의 표면이 교차되는 작품(김재옥), 피부 아래 엇비치는 비정상의 증후가 드러난 작품(이윤태) 등은, 이성의 편에서 본다면 어두운 대륙으로만 간주되었던 몸의 또다른 면모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몸은 임상의학적인 시선에 의해 투명하게 드러나기 보다는, 불투명한 타자로 회귀한다. 개인의 환상과 무의식이 투사된 작은 조각들이 있는 작품(이종빈)은 비밀스런 은폐와 변형의 속성을 가진다. 몸과 무의식을 통해 회귀하는 타자는 동일자가 그어놓은 금기와 위계를 넘어 축제로 고양되기도 한다. 전복과 변형, 과도함으로 점철된 몸(김준, 이희명)은 ‘카니발, 즉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 육체가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바흐친)를 예시한다. 여기에서 몸은 이성의 음울한 독백이 아니라, 세계와 흥겹게 대화하는 창구이자, 타자와 접속하는 다양한 구멍들이 된다. 100여명에게 기증 받은 헌옷을 이어 몸을 재구성한 작품(김윤경)은 타자들이 회귀하는 축제화된 세계에서 몸이 차지하는 거인적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출전 | 계간 조각 2007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