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 미술평론,경기대교수
이강소의 그림은 공허하다. 그 허허로움이 순간 역동적이랄까, 파격적인 몸짓, 붓질에 의해 깨져나가도 바닥과 허공에는 여전히 무서운 적막과 차가운 기운이 드리워져있다. 그러나 이내 그 적막은 또 걷잡기 힘든 동세로 내몰린다. 몇 마리 오리들은 자신들의 희박한 실루엣으로 그토록 심심한 화면에 시선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내 낭만과 서정, 아득한 전통문화의 향수와 추억을 일으켜 세운다. 이 기호로서의 오리가 납작한 캔버스를 헝공으로, 우주로 이끌고 나간다면 오리의 머리 위에서 사뭇 난리를 치는 붓질들은 그리려다 만, 무엇인가 쓰려다 이내 포기한 듯한 자조의 흔적이자 모든 표현의 불임과 불능을 드러내는 안스러움을 잔뜩 머금고 있다. 그런가하면 가장 단순하고 경제적인 그림으로 회화의 멋과 맛이 듬뿍 베어나오는, 그러면서도 지극히 동양적인 뉘앙스로 충만한, 선 적인 정신세계나 영성적인 측면이 감도는 그런 틀을 만들어나가는 의지가 깃든 그림이다. 모호하고 이중적이고 종잡기 힘든 그림이란 인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멋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멋은 이우환의 붓질이나 윤형근의 번짐 같은 것과의 유사성 속에서 진동한다. 뭔가 그럴듯하다는 얘기다. 바로 이 점이 대중들이 어렵지 않게 그의 그림을 받아들이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런 그림이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이 이해하고 소화하는 현대미술이다. 한국적인 모더니즘이란 바로 이런 그림들과의 유사성을 지닌다.
이강소는 7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유산인 평면성의 미술개념 내에서 전통과 현대의 문제를 생각하는 작가다. 동시에 현대미술에서의 추상과 구상의 대립으로 생기는 문제 또한 고민한다. 그는 한국현대미술의 여러 문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용해시켜내는 작가다. 무엇보다도 구상, 추상의 갈등을 추상적 어법의 경향에 근접해서 풀고 있는 그의 그림은, 나로서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하다. 오늘날 이 땅에서 산수화 혹은 실경산수 내지 풍경적 산수를 그리는 모든 이들보다도 이 작가의 그림에서 훨씬 전통산수의 내음이 물씬 거린다는 생각이다.
문범이나 김영길의 경우가 동일한 선상에서 작업하는 이들이다. 전통을 끌어들이되 고리타분하거나 직접적이지 않고 현대미술을 하되 난해하거나 개념적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 둘을 교묘히, 매우 장식적이고 감각적이며 세련되게 포장해서 하나의 화면으로 엮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구미술이 한국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이식되어 야기된 여러 제반 문제들을 용광로처럼 끌어안고 이를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절충적 그림이라는 인상도 준다. 어쨌든 그런 것이 이강소식의 그림이다. 여러면에서 전략적인 그림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현대미술사의 주류속에서 살아남으면서도 매우 보편적인 대중적 미감까지 아우르고 감싸안은 그림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강소의 근작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붓질의 액션이 좀더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변함이 없다. 변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만의 심벌로 굳어졌기에 그렇다. 무채색의 화면위에 집, 산, 폭포 그리고 오리를 암시하는 간소한 선들이 그려/칠해졌고 그 사이로 붓질이 춤을 춘다. 그야말로 일필휘지다. 서체적이라고들 흔히 말하는 그런 붓놀림이다. 동양미술이란 그 붓질안에 모든게 다 담겨있다. 서예나 회화가 동일하다. 이강소는 함축된 붓질 안에 기운과 느낌, 시간과 동세, 이야기와 절제, 강약의 조절, 이어짐과 끊어짐 등 상반된 것들을 버무려 놓았다.
그 붓이 놀림은 새삼 보는 이의 시선을 사각형의 화면 밖으로 내몬다. 내 몸이 함께 빨려나간다. 일획으로, 무의식적인 낙서로, 하나의 숨결로, 생동하는 기운으로 요동친다. 정적인 요소와 동적인 요소들이 혼재하고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는 것, 구상의 욕구와 추상이 욕구가 맞닿아있고 그리기와 쓰기의 욕망이 충돌하고 의미와 무의미가 몸을 섞고 모더니즘적 화면인식과 산수화의 정신이 이종교배한다. 아니 절충하고 배분하고 윤색한다. 어쩌면 동양적인 것 혹은 동양적이라고 표상되는 것을 디자인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선험적으로 자리한 관념의 도해 혹은 서구모더니즘과 동양미술이 전통을 전략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런 틀이 너무 반복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