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자연에 대한 괄호치기

다색다감전 9.6-10.10 갤러리잔다리

이선영 | 미술평론가


다섯명의 사진가와 화가가 참여한 이 전시는 각각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저변을 흐르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일상과 자연으로 대변되는 현실에 괄호를 치고 예술 언어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거리두기, 소격효과라 할 만한 것인데, 그것은 예술이 삶에 대해서 취해왔던 가장 강력한 전략 중의 하나였다. 여기에서 언어는 현실을 직접 지시하고 해석하기보다는, 현실에 내재되어 있지만 예술적 언어가 아니고선 쉽게 드러나지 않는 빈 공간, 무의미, 잉여, 과도함 등을 부각시킨다. 예술적 언어는 실재를 자극하여 그 진면목을 비추어주는 것이다. 물론 작가들은 언어의 힘을 과장한 나머지 그것을 완전히 자율화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화면에는 1차적 지시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 언어에 의해 다시 호출된 지시대상들은 더 이상 이전의 권태로운 자연이나 진부한 일상은 아니다.

박상희는 햄버거 가게나 카페에 앉아 음식을 먹거나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현대적 인테리어의 구성요소 중 하나를 쭉 잡아당겨 거대한 색면으로 뒤덮었다. 그러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좁은 의자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서로 간의 교류보다는 각자의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향유하려 한다. 드넓은 색면들은 그들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이는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최소한 접촉하려는 현대의 개인주의적 삶의 패턴과 관련된다. 박은하는 잡다한 것으로 가득 차있는 사무실이나 집 내부에 화려한 색의 띠를 분출시킨다. 색의 물결은 무덤덤한 일상의 공간을 어지르거나 망쳐놓기 보다는 축제적인 활기를 부여한다. 반듯한 사각 공간에서 매일매일 수행되는 우리의 일들은 자명한 이유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성과 노동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삶은 그저 째깍거리는 시계침 소리와 함께 죽음에 서서히 가까워지는 과정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반면 춤을 추듯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화려한 색채의 용출은 사랑, 욕망, 희열, 광기같은 무의식적 충동을 가시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비록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것일지라도 회색빛 삶에 생기를 부여한다. 일상의 강고한 질서를 뚫고 불쑥 솟아오른 이 무정형적 힘들은 동결이 아닌 만개한 삶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이명호는 평범한 나무들 뒤에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흰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같은 연출로, 작가는 카메라를 자연을 그리는 붓처럼 활용한다. 자연적 배경으로부터 떠내어진 나무는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그자체로 조명되며, 미세한 질감과 색감을 드러낸다. 박형근의 사진은 물기와 색을 풍부하게 머금고 있는 숲 속에서 심미적 풍경을 재구성한다. 여기에서는 한 생명체의 갑작스러운 죽음마저도 불가사의한 아름다움으로 변모한다. 매장면들 속에 살아있는 섬세한 선들은 마치 실핏줄처럼 얽혀들면서 화면에 생기를 부여한다. 장희진은 나뭇가지로 가득한 숲에서 추상적 패턴을 발견한다. 요철을 이루는 굴곡진 바탕면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율동을 공간화하고 있다.
출전 |월간 퍼블릭 아트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