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유모어, 그리고 저항


이선영 | 미술평론가


이흥덕의 그림은 각기 다른 맥락을 가진 여러 장면들이 한 무대 위에 배열됨으로서 발생하는 긴장감이 특징이다. 장면들 각각도 나름의 특이한 이야기가 있지만, 자연스럽게 어울릴수 없는 여럿이 한 무대 위에 병렬되면서 상황은 더욱 부조리해지고, 장면은 더욱 스펙타클하게 펼쳐진다. 이전에 발표한 작품이 함께 걸린 이 전시에서는 카페나 지하철같은 극도로 압축된 인공적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에, 서울 근교의 풍경이 더해졌다. 작업실을 서울에서 경기도 지역으로 옮기면서 전원주택이나 신도시 풍경들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노란색 길이 깔려있는 최근의 풍경 역시 무대같은 느낌이 남아있다. 전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노란색 길은 행복을 찾아 떠나는 동화 속 주인공의 환상적 여정을 떠오르게 하며, 작품 속에서 말풍선을 달고 있는 산이나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칠해진 전원주택 역시 무대세트 같다.

이러한 느낌은 화사하게 칠해진 일러스트레이션 같은 색채 처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재 자체의 특성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이흥덕의 새로운 소재로 체택된 신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장소 아닌가. 급조의 와중에 긴장과 모순은 격화된다. 그런 이유로 그의 전원풍경은 겉으로는 평화로운 듯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과 고요함이 감돈다. 작품 [신도시](2006)는 노란 길이 난 저 너머의 그림같은 전원주택 앞에 교통사고, 가정폭력 따위의 장면이 교차된다. 신도시 시리즈에서는 주로 길 위에서 사건들이 벌어진다. 작품 [노란 길](2007)에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길 위에서 화가가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 세트 앞에는 모종의 메시지를 암시하는 배우들이 배치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장면들의 목격자이자 관객을 향한 나레이터를 겸한 듯한 단발머리 소녀가 등장한다. 소녀는 정면 보다는 옆을 응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상황 속에 직접 뛰어들기 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하려는 작가의 시점이 드러나 있는 듯하다.

[소녀](2007)는 벽 뒤에 숨어 흘낏 보는 단발머리 소녀를 그린 드로잉이고, 유화로 그린 시리즈 작품에서도 소녀와 그녀가 곁눈질로 보는 풍경이 병치되어 있다. 근작 속의 풍경은 이전의 무대였던 카페나 지하철만큼 북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인간들이 등장하며, 이곳에서는 장소 자체도 배우 못지않게 역할 연기를 한다. [노란 집](2006)은 전경에서 야당의 유력 정치인에 대한 테러 사건이 벌어지고 배경의 노란 집에서는 연기가 나는 풍경인데, 상호 무관한 듯하면서도 알 듯 말 듯 한 정치적 암시를 전달한다. 그의 작품은 전혀 무관한 장면들조차도 보이지 않는 의미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산불](2006)은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배경의 긴급 상황과, 뜬금없이 민들레를 캐고 있는 전경의 처녀가 병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집단과 개인 간에 만연한 이해 관심사의 괴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들은 파국적인 폭력으로나 결판날 갈등 상황 속에 있거나 냉랭한 무관심에 싸여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폭력을 낳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 시킨다. 지하철 시리즈는 이전의 카페 그림처럼, 좁은 공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의 대표적인 무대의 하나이다. 한 장소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자체에 갈등의 씨앗이 존재한다. [서울역](2002)은 지하철 환승구를 가득 메운 인파를 그렸는데,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듯한 군중 속에서 인간적인 것이라고는 발견되지 않는다. [군중](2007)은 완전 밀착되다시피 근접해 있으나 서로 시선을 전혀 교환하지 않는 군중을 그리고 있다. [4 line](2002)에서는 한 공간에서 거지, 폭력을 휘두르는 군인, 개, 치마가 들춰지는 여자 등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각기 비극적일 수도 희극적일 수도 있는 장면들이 지하철이라는 공통의 배경 속에 배열된다. 그것은 서로 다른 것들의 조화로운 공존보다는 갈등과 모순의 압축으로 보여 진다.

이흥덕의 작품에는 심란한 상황과 유모어, 폭력과 신비,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는 어두운 내용과 깔끔한 형식 등이 공존하지만, 대체로 풍자와 비판에 무게 중심이 놓여있다. 그것은 한 평면 속에 여러 장면들을 재배치하는 형식 속에서 발견된다. 마치 펼쳐진 신문 한 면에 하루를 1달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과 주가 조작으로 하루아침에 수백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뉴스를 동시에 접할 때와 같은 역설 같은 것을 전달한다. 요소들 간의 인과성은 굳이 자연스럽게 끼워 맞추려 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요소들 간의 조화나 통일이 아니라, 요소들 간의 간격, 어긋남, 비틀림을 통해서 메시지가 생산된다. 그러나 요소들이 무한대로 흩어지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은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개인의 일상적 경험에 바탕을 하고 있으며, ‘저항’--[저항, 풍경](2006년, 예술의 전당), [저항의 암시적 풍경](2007, 본전시)--이라는 중심 코드가 관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이흥덕의 작품이 패스티쉬처럼 긴장감 없이 쇄도하는 요소들의 나열이 아니라, 패로디처럼 풍자적 메시지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의 그림은 적나라한 정치적 풍자부터 사소해 보이는 문화적 역설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작품 [메리 크리스마스](2006)는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상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현대미술가가 만든 작품으로, 고가의 개인 컬렉션이기도 하다. 작가가 몸담고 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요즘의 풍경 작업에서는 사람들끼리의 갈등 보다는 그것이 집적된 물화된 사물에 잠재되어 있다. 개나 멧돼지 등 사람과 더불어 등장하는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동물은 폭력의 행사자이기도 하고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비합리주의와 야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저돌적 야성의 종말](2006)은 사냥개한테 쫒기는 멧돼지와 배후의 권력자들을 그린다.

[영웅](2006)은 멧돼지를 죽인 사냥꾼 뒤에서 박수치는 각국의 대통령들이 등장하는데, 제국주의 전쟁이나 생태계 위기 같은 근자에 벌어지고 있는 타자에 대한 폭력을 떠오르게 한다. 블랙 유모어를 구사하는 무언극 배우같은 작품 속 주인공들과 그들을 에워싼 무대같은 환경은 초현실주의나 부조리극의 요소가 있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원인과 결과라는 명료한 인과적 내용을 무시하는 비합리적 구성을 가진다. 돌발적 사고와도 같은 에피소드들이 엮인 장면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 내재된 위험과 모순, 긴장과 갈등, 그리고 역설과 신비가 내재되어 있다. 작품 속에 내장된 부조리의 장치는 소통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고 방해가 되기도 한다. 가령 그의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해독 불가능한 장면들은 부조리가 난삽함으로 매몰될 수도 있음을 예시한다. 그것은 그림 자체의 문제보다는, 보다 깊은 사회적인 통찰을 통한 공감대의 확보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일상과 상식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이면을 보여주려는 작가는 아이러니스트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리차드 로티는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에서 아이러니스트의 반대편에 상식을 고수하는 이들과 형이상학자들을 둔다. 그에 의하면 형이상학자란 가령 정의, 과학, 지식, 존재, 신앙, 도덕성, 철학들의 본래 성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피상적으로만 수용한 사람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아이러니스트는 선험적으로 가정되거나 상식으로 인정된 본질을 믿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것을 재확인하거나 추론보다는 새로운 은유를 생성하는데 주력한다. 그것은 논증적인 절차나 주관과 객관을 통일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매끄럽고도 재빠르게 옮겨감으로서 놀라운 형태 전환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아이러니스트는 상식의 신봉자나 형이상학자가 제시하는 것과 똑같은 사회적 희망을 제시할 수 없다. 이흥덕 역시 두 가지 극점에서 움직인다. 그는 일상과 상식에서 출발하면서도 그 안에 안주하지 않는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가진다. 그는 작가의 태도로서 저항을 강조하고 작품에서 사회와 사실을 다룬다. 그러나 사회적 사실주의처럼 전형성을 통한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작가는 현실에 비판적이지만, 정치가들처럼 모순을 타개하는 하나의 지점을 지적할 수는 없다. 작품은 하나의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전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