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의 세계화 전략과 방안
- 국내 미술계의 인프라 환경과 현황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미술의 세계화 현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는 대략 비엔날레와 경매제도 그리고 아트페어 진출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비엔날레가 질적인 바로미터라면, 경매제도와 아트페어는 양적인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엔날레 출신 작가와, 경매제도나 아트페어를 주요 채널로 한 작가군이 비교적 뚜렷하게 구별되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서로 혼재돼 있는 것 같다. 작품성과 상품성의 경계가 예전처럼 뚜렷하지가 않은 것이다. 국제적인 작가를 초대 전시하거나 형식실험이 강한 전시를 유치하는 것이 더 이상 비엔날레만의 진풍경이 아니며, 요즘은 상업화랑에서조차 그것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기존의 상업화랑이나 미술관을 지양하면서 그 틈새를 노려 진출한 대안공간은 비엔날레에 신진작가들을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업화랑에도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미술과 순수미술, 실천논리가 강한 미술과 형식논리가 강한 미술을 구별하게 해주던 경계도 그 경직성을 벗어나 많이 유연해져 있으며, 사실상의 주류로 부를 만한 제도권 미술의 실체도 쉽게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작품성과 상품성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실천논리와 형식논리가 상호 침투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단은 한국현대미술의 토양이 그만큼 견실해진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상호간 이질적인 것에 대한 포용력과 함께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내성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배경으로 해서, 본 글에서는 대략 창작스튜디오 및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대안공간, 비엔날레, 미술시장과 미술은행의 개념 및 그 현황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미술의 세계화 진출 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국내 미술계의 인프라와 관련한 이 세목들이 뒷받침될 때에야 비로소 세계화 전략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작스튜디오 및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창작스튜디오는 작가들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여러 다양한 장르와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시초는 각 지방의 폐교를 활용하는 방안으로서, 예전의 문예진흥원 시절인 1997년에 추진된 사업이다. 충남 논산과 인천 강화 등 전국적으로 23개소에 이르는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가 개설되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스튜디오로서 접근성이 떨어져서 작가들이 이중생활을 감수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향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사후 관리상의 미비점이 드러나는 등의 그 실효성 여부가 의문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이 폐교 활용 방안이 비록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이를 계기로 창작스튜디오 사업을 본격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는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후 (사)현대미술관회가 주관하고 문화관광부와 국립현대미술관의 후원 하에 2002년에는 창동미술스튜디오가, 그리고 2003년에는 고양미술스튜디오가 개관된다. 이후 2006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난지창작스튜디오가 개설된다.
지역적으론 2005년에 충북 민예총이 주관하는 창작스튜디오 하이브가 개설되고, 그리고 2007년에 청주시가 관할하는 청주창작스튜디오가 개설된다. 이외에도 광주 지역에 창작스튜디오 2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대구와 인천에서도 현재 창작스튜디오 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이외에도 사설 기관이 운영하는 스튜디오는 쌈지스페이스(서울), 경안창작스튜디오(경기도 광주), 금호창작스튜디오(경기도 이천), 하제마을(경기도 파주), 쿤스트독(서울)의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그리고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파리국제예술공동체(Cite 씨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지난 2000년에 개관한 경안창작스튜디오는 영은미술관과 함께 (주)대유 산하의 대유문화재단 부속 사업으로서, 국내 초유의 예술가 창작스튜디오를 겸한 복합문화시설인 셈이다. 그리고 1965년에 설립된 씨테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함께 생활하고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공간으로서, 삼성문화재단은 1996년부터 향후 2060년까지 씨테의 아틀리에를 장기 임대 받아 운영하기로 했다.
창작스튜디오의 운영 방침에 있어서 대체로 작가들의 입주 기간이 1년으로 상정돼 있는데, 이는 사실상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개진하기에는 짧은 기간이다. 따라서 작가가 이내 작업실을 옮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작업에 정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충분한 기간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그 기간을 연장하는 것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로써 마련된 각종 프로그램을 더 활성화하고 전문화하는 일이 과제이다.
창작스튜디오 운영은 창작촌과 창작스튜디오 개념을 구분 적용해야 한다. 창작촌이 작가 개인의 생활이 중심이 된 작업실이라면, 창작스튜디오는 비교적 단기간 체류하면서 일정한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작품의 생산과 발표 그리고 평가의 전 과정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한시적인 창작실험실과 같은 곳이다. 따라서 창작촌보다는 창작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한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하며, 그것도 지금처럼 장소만 제공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생활비를 포함한 기본적인 재정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참여 외국인의 비율을 높여야하며, 유명 외국작가들을 유치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이외에도 미술인회의가 주최하는 오픈스튜디오 네트워크 사업(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국공립 그리고 시립은 물론이고 개인 작업실마저 하나로 연계 혹은 연대를 꾀하는)이 현재 답보 상태에 있는데, 이 사업이 재차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또한 경안창작스튜디오나 청주창작스튜디오에서처럼 실질적인 거주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단순히 공간만을 제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일상생활과 작업이 갖는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이나 접근성과 같은 보다 실질적인 환경 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잠정적으론 버려진 공간에 대한 활용 방안으로서의 스쾃운동을 통해 도심 속의 스튜디오 운영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대안공간

대안공간은 그 최초가 1960년대 말경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술가들이 주체가 된 소규모의 비영리 조직으로 시작되었다. 창작주체를 중심으로 한, 산발적이거나 조직적인 대안공간의 활동은 이후 여러 면에서 기존의 제도화된 미술계의 체질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그 실질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소위 제도권 미술과 대안공간과의 관계는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대안공간의 활동이 제도권 미술에 대한 대안의 제시라는 생성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 관계는 대립적이고 비판적이다. 또한 대안공간에 의해서 제기된 대안적 사례들이 변화하는 현재진행형의 당대적인 문제의식과 감수성이라는 소스를 제공해줌으로써 제도권 미술의 체질을 강화하는 데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그 관계는 상호 보충적이고 상호 기생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제 대안공간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각종 비엔날레에서도 보편적인 이슈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특히 거대한 공룡으로 몸집을 키운 비엔날레가 대안을 제시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은 세계주의(세계미술의 평준화 혹은 사실상의 서구미술의 이식)를 퍼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비엔날레 무용론마저 들먹이게 한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국내적으로도 각종 대안공간 활동과 비엔날레의 이해관계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진정한 대안에 대한 회의를 불러오기도 한다. 대안공간 활동과 제도권미술 그리고 비엔날레와의 관계는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안공간 활동과 제도권미술 그리고 비엔날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돼온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벗어나서, 이를테면 대안공간 활동과 지역공동체 활동과 같은 또 다른 관계 설정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국내의 대안공간은 1990년대 말 루프가 문을 연 이후, 대략 풀, 쌈지스페이스,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아트스페이스 휴, 그리고 인사미술공간(인미공) 등이 그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쌈지스페이스는 홍익대 부근의 쌈지스페이스와 함께 헤이리아트밸리에 쌈지창고, 인사동에 쌈지길을 오픈하고 있어서 (비영리 공간 운영에 따른) 열악한 환경이 더 이상 대안공간의 특징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인사미술공간은 사실상의 관(官) 주도하에 있는 것으로서, 여타의 다른 대안공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정체성이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브레인팩토리, 팀프리뷰, 갤러리 정미소가 후발주자로서 대안공간에 참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팀프리뷰는 시사회로 명명된 정기 전시를 통해 신진작가들을 소개 전시하는 자료전의 성격을 강화함으로써 전형적인 전시와는 뚜렷이 구별되는 전시공학상의 한 대안적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이외에도 각 지역별 대안공간들로는, 공공미술 교육프로젝트와 같은 미술활동과 지역공동체 활동 간의 연대를 통한 실천논리에서 대안공간의 정체성을 찾는(이는 곧 지역성에 대한 모색으로 나타난다) 인천의 스페이스빔, 소위 대리보충공간을 표방한 안양의 스톤앤워터, 그리고 부산의 반디와 아트인오리(개별 작가들의 집단 창작 촌과 함께 별도의 독립 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는)의 활동이 주목된다.
대안공간 또는 대안미술에서의 대안은 항상 그 무엇에 대한 대안으로 작용하고 기능할 때에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제도권미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민속미술이나 생활미술(조선시대로 치자면 사대부 계급을 중심으로 한 문인화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당시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한 민화가 여기에 해당할 것), 순수미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참여미술, 아카데미즘 미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정치적 아방가르드 미술이 그러하다. 그리고 대안 개념 그 자체 항상 임의적이고 한시적으로만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만약 대안성 자체가 하나의 규범 내지는 정론으로 굳어진다면, 더 이상 그 무엇에 대한 어떤 대안도 생산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그 처음의 의미가 크게 퇴색된 아방가르드 미술에서 보듯 이미 그 징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대안공간이나 대안미술과 관련해서는 특히 장소특정성 개념이 주목된다. 예컨대 잠실주공재건축아파트 프로젝트나 안양천 발굴 프로젝트와 같은 현장성이 강한 프로젝트 작업을 주로 실천해오고 있는 윤현옥, 수년 동안 특정 장소에 대한 기록 작업과 형식실험을 축적해오고 있는 청계천프로젝트의 플라잉시티, 역시 특정 지역의 특수성에 주목한 성남프로젝트의 김태헌, 그리고 여타의 버려진 폐공장을 배경으로 한 공장미술제처럼 아예 미술계 바깥의 삶의 현장 속에서 그 가능성을 찾는 예도 있다. 이런 전시 형태는 대개 도시적 삶이 갖는 환경에다 자기를 개입시킴으로써 미술의 당위성을 찾는다. 홍익대 부근의 자생적인 미술의 한 형태랄 수 있는 포장마차미술과 같은 거리에서 이뤄지는 일상성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소위 거리미술과, 그리고 주요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즉흥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전시가 이뤄지는 게릴라(성)미술 또한 그와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다 일례로서 대한민국미술대전의 대통령상 부활에 맞춰 급조된 갤러리 세줄의 <그 때 그 상전>과 같은.
그런가하면 대안미술은 국내 최고의 구석기유적지 발굴 현장을 배경으로 한 전곡포럼 프로젝트와 조덕현의 작업에서의 미술과 고고학의 만남(특히 조덕현의 작업은 고고학적 현실과 가상적 현실을 결합시킨 일종의 유사고고학을 실현하고 있다), 로봇아트에 나타난 미술과 공학의 만남, 그리고 사운드아트 혹은 사운드스컵처에 나타난 미술과 음악 혹은 소리와의 만남 등이 미술과 인문학과의 연대가능성을 시사해주는 소위 학제간 넘나들기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이외에도 대안미술은 오브제미술의 생산구조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개념미술, 정치적 아방가르드 미술, 일인 작가주의 중심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팀 작업, 전통적인 장르 구분법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경계 위의 작업들, 그리고 지역미술(이는 단순한 장소의 개념으로서보다는 지역성의 실천논리를 강조한 것)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대개는 거대담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미시담론, 즉 작은 서사, 개인 서사, 일상성과 일상 사회학으로부터 그 논리적 근거를 끌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테면 최진기의 볼펜 지렁이에서 각종 문구류를 변형시킨 작업들과, 홍학순의 우유곽 소녀에 나타난 것과 같은 무의미한 현실(무의미한 현실인식은 이제 하나의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에 기생하여, 그 자체를 의미화 하는 여타의 노력이나 시도에서 그 예를 접할 수 있다.
미술이란 삶의 한 형식인 것이며, 따라서 대안미술이란 궁극적으로 대안적인 삶을 살아내는 한 방식이나 태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비엔날레

1995년 광주비엔날레를(광주비엔날레의 생성배경에는 미술 내적인 논리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논리가 작용한 것이 사실이며, 이는 향후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왜곡시키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선두로 해서, 2000년에는 미디어시티서울(미디어시티서울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 중 미디어아트를 집중 조명한 것으로서, 비엔날레의 특화 가능성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2002년에는 지금까지의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을 개칭한 부산비엔날레(국제바다미술제와 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 그리고 국제현대미술전의 세 전시를 축으로 구성된) 등이 창설되면서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비엔날레 입국 시대를 열게 된다. 이외에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국제초대작가전과 국제공예공모전 그리고 산업공예전의 세 전시를 축으로 하며, 금속, 도자, 목칠, 섬유 등의 공예 분야를 망라한 점이 특징이다), 경기국제도자기엑스포(경기도 광주와 이천 그리고 여주의 세 권역을 하나의 벨트로 묶는 전시로서, 지역적 특산물인 도자기 산업의 활성화를 정체성으로 연결시킨 점이 특징이다), 금강국제자연비엔날레(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설치미술 그룹 ‘야투’를 주축으로 한 전시), 인천국제여성미술비엔날레(여성미술 혹은 여성미술가를 대상으로 한), 포천아시아비엔날레(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작가들을 중심으로 소위 아시아성 담론의 허브 역할을 꾀하는)가 있다.
한마디로 비엔날레가 너무 많다. 서울, 경기, 인천, 포천, 부산, 광주, 대전, 청주를 아우르는 가히 비엔날레 현상으로까지 부를 만한 이 현상은 지역의 자치정부체제에 힘입어 경쟁적으로 치러지고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 더 가속화될 소지마저 있다. 비엔날레는 만국박람회와는 다르며, 그 당위성은 미술 내적인 논리로부터 찾아야 한다. 더불어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계기로써 작용해야지, 그렇지 않고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명분도 의미도 찾을 수가 없게 돼버린다. 그런데 벌써 그런 기미가 엿보인다. 비엔날레는 지역들이 저마다 나서서 경쟁적으로 유치에 열을 올릴 그런 사안이 아닌 것이다. 양이 아닌 질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제기되는 것이지만 정부는 지원만 할 뿐, 전시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비엔날레가 도입하고 있는 행정과 전시의 이원 체계 자체는 효율적인 전시를 위한 제도적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그 효율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말하자면 행정주체와 전시주체간의 이견(異見)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소할 방안으로서 행정주체는 미술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갖춰야 할 것이며, 더불어 전시주체는 행정에 대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해서 서로의 업무에 대한 호환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시감독 선임건과 관련해서는 국제공모전을 통해 명망 있는 큐레이터를 유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초빙된 큐레이터의 인력 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감독 선임과정에서의 잡음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분야도 별반 다를 바 없겠지만, 고질적인 악습 중 하나로서 아카이브나 이에 따른 인프라가 축적되지도 환류(피드백)되지도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이 바뀌어 그 진용이 새로 짜여지는 것이야 당연하다 할 터이지만, 그렇다고 전시와 관련된 일체의 과정이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비엔날레를 관리하는 미술 전문가로 구성된 상시적인 기구(전문 학예팀)가 있어서 매번 바뀌는 전시감독 체제와의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런 소모적인 현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시장과 미술은행

한국현대미술의 대내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미술문화의 풍토가 정착되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술시장의 중심인 화랑의 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리고 건전한 유통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써 전문적인 미술품 감정제도가 마련돼야 하는데, 이때 감정은 단순한 작품의 진위 여부를 넘어 미적이고 형식적인 가치평가를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미술시장 개방에 따른 우리 미술시장의 현실을 점검하고, 경쟁력 있는 화랑 구조에로의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유통환경과 적정한 가격 기준이 마련돼야 하며, 무엇보다도 이중가격의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 일테면 공공미술관의 작품 구입가격과 화랑을 통한 구매가격 그리고 경매가격이 갖는 편차에 대해서는 획일적인 적용보다는 각 주체의 사정을 십분 고려한 합리적이고 적정한 선에서의 가격대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전 과정에 대한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 한편 화랑을 중심으로 한 미술시장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전문적인 경매제도가 정착돼야 하며, 이를 계기로 미술작품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인식이 정착돼야 한다. 다만 미술작품은 상품이긴 하되 문화적 상품이라는 특수성이 고려돼야 하며, 나아가 궁극적으론 개인의 소유물이기 이전에 공공의 자산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경매제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올해에만 8개의 경매사가 새로 생겨서 현재 국내의 미술전문경매사는 총 10개로 늘어났다. 특히 서울의 D옥션과 대구의 M옥션 그리고 전주의 A옥션 등 경매사의 지역별 확장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화랑이 경매사의 직간접적인 주체로서 간여하는 경우로는 가나아트갤러리의 서울옥션과 갤러리현대의 K옥션을 그 예로 들 수 있으며, 현재 사실상의 메이저급 경매사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심지어 작가들이 소액을 출연하여 직접 경매사(미술펀드)를 개설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혹자는 미술경매시장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면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특히 생존 작가나 중견작가의 작품이 경매에 나오는 것은 미술시장의 축인 화랑의 역할을 보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하고 있으며, 나아가 화랑의 존재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심지어는 화랑들끼리 혹은 경매 주체들끼리 서로 사고 되파는 식의 반복과정을 통해 그림 값을 올려놓는 식은 미술시장을 혼란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경매제도를 관리하고 감시할 관 주도의 상시적인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단순한 과열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진정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정착되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여하튼 이러한 과열현상이나 과도기적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방안으로서 해외 미술시장을 개척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미술문화를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그리고 일관된 전략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술시장이기보다는 지원사업의 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미술은행이 있다. 올해로 3년차를 맞고 있는 이 사업은 그동안 진행상의 잡음이나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실효성이 높은 사업으로서 향후 그 전망이 기대된다. 국내의 경우, 미술은행제도는 국가가 기금을 조성하여 일종의 미술은행을 설치 운영하는 형태를 말한다. 주로 작품성에 비해 시장성이 없는 젊은 신진작가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사들인 연후에, 이를 필요로 하는 각 행정기관에다 미술작품을 대여하고 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창작환경을 돕고 미술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현재 미술시장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이중 가격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이를 간과할 경우에는 미술시장으로부터 화랑을 소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시장 가격이 미처 형성돼 있지 않은 신진작가들의 작품 가격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역시 쉽지가 않다. 이런 문제를 도외시할 경우에는 자칫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다.
여하한 경우에도 미술문화에 대해서는 단순히 그 득과 실을 따지는 식의 경제적인 논리보다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복지정책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미술시장의 건전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육성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한국현대미술의 세계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미술문화의 현실을 대외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채널이 구축돼야 한다. 그 방안으론 현재의 해외문화원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지금보다 더 확대하고 전문화하여 실질적인 창구로써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최소한 전문 학예사 1명씩을 상주시켜서, 국내외의 미술문화 현상을 네트워크 하는 기능을 전담케 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에 비해 효과가 큰 인터넷 활성화 방안이 적극적으로 강구돼야 한다. 가능하다면 이를 전담하는 기구의 설립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세미나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