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 전해지며, 모든 것을 사고파는 자본주의 시대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몸의 압도적인 구체성과 보편성으로 인해 여전히 자극적인 소재를 제공한다. 조훈의 작품에서 ‘파트너’, ‘알바’로 불리워지는 몸 파는 여성의 이미지는 대량생산과 소비의 주기에 리듬을 실은 점입가경의 모습이다. 몸파는 시장에 나온 반라의 여자들은 핸드폰이나 인터넷, 찌라시를 통해 무작위로 살포되며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소비되는데, 작가는 이를 기념비적인 차원으로 고양시켰다. 하얀 FRP로 제작되어 천정 높은 노출 콘크리트 내벽의 세련된 전시 공간에 걸린 거대한 부조작품들은 온갖 도발적인 자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맥락이 제거된 탈색된 이미지와 완벽하게 마무리된 모양새로 인해, 끈적끈적한 유혹보다는 깔끔한 생산품 같은 중성적인 분위기이다. 붉은색으로 만들어진 예외적인 작품 [symbol]은 제목 그대로 포르노그래피의 세계--전시부제가 ‘come to my penthouse이다--를 상징하는 관문같은 자세를 취한다. 전시장 한 켠에서 둘둘 돌아가는 휴지 뭉치는 무익한 소모로 끝날 욕망을 받아내는 환유적 오브제가 된다. 풀리고 되감기를 반복하는 휴지 스크롤이 실시간으로 반복 영사되며, 그 위에는 욕망의 대상들이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있다. 갖가지 자세를 취한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고 있지만, 그녀들은 신기루처럼 지나가 버리고 만다.



스크롤 위의 섹스 오브제들 역시 끝없이 도발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주체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다음 대상으로 자리를 바꾸는 텅 빈 연쇄 고리를 이룰 뿐이다. 조형적으로 순화되기는 했지만 부조적으로 펼쳐진 낱낱의 자세함으로, 몸은 명료한 가시성visibility의 장으로 호출된다. 이러한 가차 없는 가시성은 부질없는 욕망을 넘어서 생산의 주술에 걸려든 모든 것들의 운명을 대변한다. 조훈의 작품은 노동과 성이 생산과 소비로 양극화된 것이 아니라, 한 몸의 두 얼굴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생산의 원래 의미가 뭘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게 한다, 나타나게 하고 드러나게 한다’는 것임을 강조한다.

생산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에 속해 있는 것을, 즉 비밀과 유혹의 차원에 속해 있는 것을 강제로 구체화시킨다는 뜻이다. 생산은 모든 것을 자명한 것으로 만드는데, 포르노 속에 나오는 성 또한 그러하다. 거기에서는 비밀도 유혹도 금기도, 그리고 억압과 착취도 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현대 자본주의 문화가 의도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드리야르는 외설스러움이 이 문화의 본래적 조건이라고 본다. 전형적인 외설의 기호를 취한 여성들은 벽 하나를 가득 채운다. 얇게 저며진 이 포르노 이미지들은 전영토를 뒤덮은 세상에서 가장 자세한 지도같은 모사물simulacre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대한 하얀 장막처럼 드리워진 모사물 뒤에는 어떤 리얼리티도, 섹슈얼리티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출전 | 계간조각 200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