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끝자락, 전시공간이 시작되는 부분은 평소와 달리 융기되어 있는 듯하다. 몇 걸음을 떼면 규칙적으로 구획되고 알파벳과 번호까지 새겨진 바닥이 움직인다. 전시부제는 ‘세번째 경계경보’지만, 아무런 경고 없이 딛고 선 바닥이 이동하면서 관객의 평형감각은 혼란에 빠진다. 바닥은 검정과 나무 색이 평행으로 교차되어 있으며, 바닥 한켠의 구부러지고 융기된 면은 바닥이 밀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움직이는 바닥으로 인해 나지막이 다가온 천정 사이에서 낄 것 같은 위기감을 준다. 벽에 걸린 그림이나 프로젝터로 투사된 창문의 환영은 바닥 레벨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수직, 또는 수평의 기하적 패턴으로 뒤덮인 창밖 풍경을 비롯하여, 관객의 시선이 빠져나갈만한 가상의 창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교란된 현실감각을 압축한다.





수직, 또는 수평선, 그리고 스트라이프로 이루어진 면들은 그자체가 강한 인공성을 띠는 구조로, 기존의 현실을 차단하는 강력한 장치들이다. 바닥을 이루는 인공적 구조물에는 일련의 순서가 매겨짐으로서, 질서가 있고 균형 잡힌 체계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참조대상이 사라진 엄격한 자기지시적인 형식체계가 그 내부에서 차이에 의한 미끄러짐 현상이 끝없이 발생하듯, 이 두서없는 토대들은 중심을 유지할 수 없다. 기하학적 체계로 나타나는 구조에의 견고한 의지는 역설적으로 토대의 불확실함으로 이어진다. 가령 예측할 수 없는 지진이나 증시 폭락 같은 대파국은 물샐틈없이 꽉 짜여진 거대한 질서를 전제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전체를 구성하는 체계적 요소들은 동질성을 강화하기 보다는 이질성을 끌어들인다. 급작스런 바닥의 운동은 현재의 질서가 또 다른 질서로 변모하기 위한 증후이다. 보다 깊은 근저로부터 발생한 힘은 파동처럼 전달되면서 표면적인 질서를 교란하고 재배치한다. 그것은 서로에 대해 동일한 순간들을 가지지 않는 지속을 만들어낸다. 장윤성의 작품에서 질서화 된 표면의 공간적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것은 시간이다. 공간보다 시간에, 정지보다 운동에 경도된 형이상학자 베르크손은 수를 단위들의 집합으로 본다. 단위들은 동일한 것으로 가정된다. 공간은 동질적인 것이 위치를 달리하며 서로 구별된다. 공간은 동질성과 위치적 차이라는 기반을 가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수를 세면서 그 각각을 공간의 점으로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베르크손은 이러한 공간적인 시간과 순수한 지속을 구분한다. 그에 의하면 순수한 지속은 수와 무관하며 명확한 윤곽도 없고 서로 녹아들고 침투하는 질적 변화의 연속이다. 그것은 이질성을 낳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기하학적으로 구획된 바닥의 수들은 공간적인 시간에 해당된다. 관객의 눈앞에 펼쳐진 공간은 동질성이 부여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질서에 급작스런 단절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공간에 질서정연하게 펼쳐진 시간은 서로 포개지거나 융합된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눌 수 없는 것으로, 양은 질로, 동질성은 이질성으로 변모됨으로서, 강한 감정의 상태를 일깨우고 있다.


출전 | 계간 조각 2007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