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의 조각은 거대한 원천인 자연의 근본성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군더더기 하나 없는 기술적 완벽성을 통해 자연의 진면모를 다시금 추체험하게 한다. 가령 이 전시의 대표적인 작품 [자두]는 자연적 대상인 자두의 정교한 기술적 재현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공적 수단의 절묘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작품 [낙엽]은 50x50x50cm의 정방형 입방체 위에 걸쳐진 나뭇잎인데, 기하학적 인공성과 유기적인 자연 형태의 대조가 특징적이다. 그러나 좌대에 해당될 법한 입방체와 본체에 해당할 법한 나뭇잎 사이에는 재료와 질감의 차이가 없는 일체형을 이룬다. 김정미의 작품에서 자연과 인공은 대조를 이루면서도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작품 [나뭇잎]은 4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의 정사각형의 돌판 위에 나뭇잎이 융기되어 있는 형태이다. 온전한 잎 새가 하나도 없이 조금씩 가장자리가 잘려 부분적으로 재현되어 있다. 마치 나뭇잎이 흐트러진 대지를 불특정하게 잘라낸 듯하다.

자연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사각형이 인공의 상징이라면, 잘려진 가장자리는 인공 만으로서는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자연의 무한성을 지시하고 있다. 정확한 구획을 이루는 절단면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무한한 자연의 편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벽에 걸린 [풀잎]은 마치 나뭇잎처럼 보이는 실제 크기의 풀잎을 그대로 떠낸 작품이다. 대리석 작품들과는 달리, 실제와 비슷한 상을 가지고 있지만, 풀잎 6장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어 이 역시 인공적인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 직선을 이루는 구도는 나름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한 인공적인 배치이기 때문이다. 작품 [자두]는 거대한 자두 4개를 정확하게 재현했다. 자두가 이렇게 섹시하게 생긴 줄은 처음 알았다. 대리석의 자연적 무늬만이 간헐적으로 가로지르는 유백색 형상은 여인의 깊은 속살처럼 은근한 관능미가 흐른다. 매끄러운 표면으로 흐르는 봉긋한 부피감은 생명의 기운으로 충전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받침대도 없이 그 어느 곳에 놓여 져 있을지라도 자체의 응집성이 흐트러지지 않을 자족성을 향한다.
작품 [동심원]은 동심원을 그리는 물의 파장이 새겨진 대리석 판이다. 역시 [나뭇잎] 시리즈처럼 사각형으로 잘려진 상태이다. 그러나 나뭇잎처럼 양각된 것이 아니라 내부로 새겨져있으며, 두 판의 크기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퍼즐처럼 파장의 아귀를 맞춰볼 수 있는 대칭성을 가진다. 동심원은 자연에서 맨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기하학적 형상으로, 굳이 형상 배후의 질서를 따로 찾을 필요가 없을 만큼, 자연과 인공의 완벽한 통일성을 보여준다. 자연과 인공이 줄다리기 하는 일련의 장치 속에서 재현된 나뭇잎, 풀잎, 과실 등은 성장하고 사멸하는 유기체의 형태를 가지면서 계획된 예술 작품 같은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서 자연과 작품은 무한한 점근선을 향해 질주하면서 근접해 있다. 물론 자연과 인공은 차이가 있다.

‘자연적’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가라타니 고진)을 가리킨다. 반면 인공적인 것은 짜여 진 구축물construction이나 조립품의 성격을 가진다. 한쪽은 무한을, 다른 한쪽은 유한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해 보이는 자연의 미시적, 거시적 차원에서 모종의 계획된 질서를 파악할 수 있고, 인공적 구축물에는 최초의 계획과 구도를 초과하는 몫이 있다. 그 점에서, 양자는 명확하게 구별될 수 없는 차원을 가지며, 이 접점의 지대가 예술가들로서는 가장 어렵고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과학 저술가 제임스 글리크가 지적하듯이, 자연에서 무질서함이나 우연성의 횡행은 죽음을 부른다. 자연에서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향해 고도로 조직되어 있는 것이다. 가령 식물에서 가지들이 나오는 순서나 방향은 정확하게 똑같다. 자연은 단순한 물리법칙에 의하여 그 자신을 조직하기 시작하고, 무한한 인내로 어디서나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였을 때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이에 상응하여 고전주의 미학은, 있음의 형식이 절대적 동일성을 인식하는데서 비로소 충족된다고 설파한다. 예술 역시 자연과 유사한 견고한 실재성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이성이다. 반면 이성으로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초과분의 몫이 없으면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나 노동으로 격하될 수 있다. 김정미의 작품은 이중적이다. 그것은 물질의 가장자리에서 생명을 꺼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은 자연의 동력학적 과정이 물리적 형태로 구체화되는데, 그것은 내용과 형식 양자 모두에서 그러하다. 가령 엽 맥이나 파장을 이루는 미세한 자연의 결과 그것의 몸통을 이루는 재료의 암맥(대리석 내부의 주름)이 미묘하게 뒤엉키며 생명의 율동을 표현한다. 거기에는 명확한 형태의 재현으로 나타나는 엄밀한 질서와, 이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카오스의 흐름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질서의 구조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의 신축성과 융통성(변형)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출전 |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