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는 저마다의 본성이 있다. 본성은 사물들 속에 숨겨져 있다. 본질은 기능적인 관점이나 자연과학적인 분석대상으로 삼아 뜯어보려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무의식처럼 사물의 물질적인 성질 너머에 있으며, 그 무엇으로 명명되기 이전의 위상으로서 자리하며, 모든 선입견을 걷어낸 맨 의식에만 자기의 실체를 드러내 보여준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던 정현(52)의 조각은 바로 이런 사물의 본성을 발견하고 캐내는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오랜 세월 동안 땅속에 갇혀 있던 석탄 덩어리나 온갖 풍화를 견뎌낸 막돌을 가만히 응시하면 켜켜이 중첩된 시간의 지층(地層)과 세파가 만들어낸 상처가 보인다. 또 이 모든 것이 응축된 사람의 얼굴도 보인다. 작가 정현은 이 석탄 덩어리와 막돌을 선호한다. 작가의 뜻대로 잘 다듬어지지 않는 물질과의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석탄과 막돌 속에 내장된 비정형의 결들은 자기를 제어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렇게 석탄 덩어리나 막돌을 깨 나가다 보면 작가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결들이 나타나고, 그 결들이 얼기설기 모여 암시적인 얼굴의 형상이 드러나 보인다. 내면이 표면이 되고, 무의식이 의식의 층위로 밀어 올려진 것이다.

여기에 도로포장용 재료인 아스콘이나 침목을 소재로 한 조각은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사람들을 위해 길이 되어준 재료들이다. 작가는 이제 그 소임을 다해 버려진 이 재료들 속에서 마치 길바닥처럼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인 보통사람들의 심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초상을 캐내어 보여준다. 이렇게 작가 정현은 전통적인 형상조각과 모더니즘의 물성조각 사이의 단절된 끈을 이어준다.

- 조선일보 1. 15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