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것들이 회귀하는 무대
김인배전 11.29-12.28 | 아라리오 서울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가장 큰 작품 [사랑해]는 2미터가 넘는 거상이다. 거인이 서 있는 화이트 큐브는 실내 공간으로 전치되었는데, 방의 유일한 가구인 벽면 위에 그려진 냉장고와 시-분-초침을 바꾼 벽시계가 ‘실내’를 더욱 썰렁하게 한다. 눈, 코, 입 대신에 연필 끄트머리의 고무지우개나 전구를 떠오르게 하는 두상과 그 안의 입방체가 기묘하면서도 위협적이다. 얼굴은 검은 거울처럼 주변을 비추는 듯하다. 실내의 냉장고를 반영한 것인지 그가 서있는 화이트 큐브를 바깥에서 포착한 모습인지는 불분명하다. 거인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존재하는 듯 보인다. ‘차원의 경계’(1회 개인전)에 서고, ‘진심으로 이동’(본 전시)하기를 원하는 작가의 의도로 보건데, 둘 다에 해당할 것이다.

관객은 작품을 보지만, 작품은 응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우월한 시점에서 관객을 내려다본다. 보는 능동적 행위는 보여 지는 수동적 행위로 변화하면서, 주체와 대상 간의 위상이 불안정해 진다. 작품 [델 혼 데이니]는 마치 공무원처럼 반듯하고 단정한 가리마의 두상들이다. 대패로 얼굴 구멍새들을 싹 밀어 버린듯한 평평한 표면과 그 위에 그어놓은 선들이 난폭하다. 얼굴이 나오는 유일한 가운데 두상은 눈코입이 뾰루지처럼 작게 돋아 있을 뿐이다. 표준적이면서 익명적인 두상에 가한 상징적 폭력에서 지배적 질서를 전복하려는 작가의 욕망이 느껴진다. 그 앞에 놓여있는 [샤모랄타 사모랏타]는 작가를 상당히 닮았다는 물고기 모양의 두상이다. 두상이라기보다는 두상으로 압축된 전신상 같다. 머리-몸통을 리드미컬하게 칭칭 감아 도는 선이 끝나는 뒷꼭지 부분이 마치 항문처럼 말려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유선형 몸체는 억압적인 상징 질서의 그물망을 빠져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간적 얼굴에 대한 변형은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말한, ‘얼굴을 해체하여 그 밑에 숨겨진 머리가 솟아나도록’하는 초상화가의 전략과 유사하다. 대체된 상은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통 영역으로 이동한다. 얼굴은 고기나 물질 덩어리가 되고, 그것이 흘러내리고 빠져나가는 구멍인 입은 강조되어 있다. 작품 [마술]은 전시장 벽면을 새로운 공간의 좌표축으로 삼아 공중 부양 쇼를 벌이는 남녀이다. 마술사 밑으로 평행으로 떠 있는 여성이 남성의 성기를 물고 있는 듯하다. 남녀의 수수께끼같은 손가락 모양새는 김인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기이함uncanny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거세 컴플렉스 또한 일관적이다.





[마술]에 나타난 구체적인 도상적 정황 뿐 아니라, 전능한 보호자이면서도 거세를 위협하는 상징적 아버지에 대한 살해 충동, 변형을 통해 지배적인 질서로부터 탈주를 꾀하는 아들의 드라마가 그렇다. [마술]에서 사도-마조히즘적 관계에 놓인 남녀가 보여주는 것은 성과 욕망, 주체의 불안정한 위치이다. 이미 거세된 존재인 수동적 여성은 거세를 위협하는 능동적 존재로 변모하고, 마술 주재자의 운명도 예측불허이다.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검은 벽들 사이에 쾌활한 돼지가 놓여있는 별관의 작품은 이 전시를 관통하는 정서를 또 다른 차원으로 변주한다. 금기로 둘러쳐진 검은 장막을 헤치고 기이한 기표들이 언뜻언뜻 드러나는 전시장은 억압된 것들이 회귀하는 욕망의 무대가 된다. 이 가변적 무대를 채우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조각이며 회화이고, 내용적으로는 승화이며 퇴행이다.

출전 | 퍼블릭 아트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