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회화



2007년 국내 미술계는 온갖 사건들과 언론의 집중 조명 그리고 이에 따른 무성한 말들과 논쟁으로 어느 때보다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한 유명 미술관계자의 학력위조 사건과 정치적 커넥션, 광주비엔날레 파행사태와 비자금 사건, 무려 2000점이 넘는 박수근과 이중섭의 위작 판명사건, 여전히 구태를 못 벗어난 미술대전 심사비리사건, 미술시장의 호황과 거품 논란, 경매사와 아트펀드와 아트페어의 무분별한 설립은 미술작품을 공공연하게는 상품과 동일시하는 천민자본주의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나아가 도덕 불감증 우려마저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중국현대미술시장의 호황으로 촉발된 신설 경매사의 무분별한 설립은 올해 들어서만도 8개의 경매사가 새로이 생겨나, 현재 국내의 미술전문경매사는 총 10여개에 이른다(잠정적인 집계에 따르면 15개사에 달한다는 말도 있다). 현재 사실상의 메이저급 경매사에 해당하는 가나아트갤러리의 서울옥션과 갤러리현대의 K옥션을 중심으로 해서, 서울의 D옥션과 대구의 M옥션 그리고 전주의 A옥션이 새로이 신설되는 등 경매사의 지역별 확장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심지어는 창작주체인 작가들마저 소액을 출연하여 직접 경매사(오픈옥션)를 개설하기도 했는데, 이를 두고 미술경매시장의 춘추전국시대 운운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생존 작가나 중견작가의 작품이 경매에 나오는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경매제도가 미술시장의 중심인 화랑의 역할을 보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화랑간의 무분별한 경쟁을 촉발시켜 화랑 본연의 존재의미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심지어는 화랑들끼리 혹은 경매 주체들끼리 서로 사고 되파는 식의 반복과정을 통해서 그림 가격을 올려놓는 식의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고, 또한 그렇게 책정된 그림 가격이 그대로 유통가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런 우려와 관련하여 경매제도를 관리하고 감시하는 관 주도의 상시적인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단순한 과열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진정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정착되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여하튼 이러한 과열현상이나 과도기적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한 방안으로서 국내를 넘어 해외 미술시장을 개척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미술문화를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소개 전시하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그리고 일관된 전략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호황에 따른 국내 미술시장의 국제시장 진출은 이제 단순한 조짐을 넘어 현실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는 어느 정도 중국현대미술시장의 붐에 힘입은 것으로서, 대체로 국내 상업화랑의 중국 현지 진출로서 나타난다. 예컨대 갤러리현대의 두아트, 갤러리아트사이드, 스페이스 눈, 갤러리 묵, 물파아트스페이스, 창갤러리, PKM 갤러리, 금산갤러리, 구아트센터 등이 베이징을 중심으로 해서 중국에 연이어 개관을 했으며, 특히 아라리오 갤러리는 베이징에 이어 뉴욕 첼시에 아라리오 갤러리 뉴욕을, 금산갤러리가 일본 도쿄에 스페이스 355를, 그리고 카이스 갤러리가 홍콩 분점을 각각 개관하기도 했다. 더불어 해외 유명 갤러리의 국내 진출도 눈에 띠는데, 마이클 슐츠 갤러리와 오페라 갤러리가 새로이 국내에 문을 여는 등 이제 미술시장의 국제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아직은 시장이 중국에 치우쳐 있는 감이 있지만(이마저도 국내작가를 소개 전시하기보다는 소위 잘 나가는 중국 블루칩 작가들을 전시하고 거래하는), 그 범주는 앞으로 점차 확대되리라 전망된다.

네오팝과 극사실주의 회화의 경향

국내미술시장의 호황은 중국현대미술의 약진과 더불어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기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이는데, 홍콩 크리스티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한국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홍콩크리스티가 실시한 아시아 동시대 미술경매에서 홍경택의 유화 한 점이 한화로 무려 7억7천여만 원에 팔리는 등 소위 블루칩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이에 힘입어 국내최대의 미술견본시장인 KIAF가 예년에 비해 배 이상의 매출(175억 원)을 올리기도 했다. 미술시장이 기존의 상업화랑 중심에서 경매사와 아트펀드 그리고 아트페어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장들에서 전시되고 거래되는 작품의 유형을 보면 다분히 한쪽으로 편중돼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거의 예외 없이 회화가 중심이며, 그 중에서도 네오팝과 극사실주의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대체로 소위 블루칩 작가들을 중심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젊은 신진작가들이 도맡고 있다.
먼저, 네오팝의 경향을 보면 <모란 이후의 모란>(대전시립미술관, 2.19-3.29), (충무아트홀, 3.9-4.19), <유쾌한 상상>(이화익갤러리, 5.10-23), <팝콘믹스>(영은미술관, 6.6-9.22), <누보팝>(소마미술관, 7.12-9.30), <포스트팝>(박여숙화랑, 9.12-29), <트랜스팝>(아르코미술관, 12.18-2008.2.29) 등의 기획 전시들이 주목된다.
이들 가운데 <누보팝>은 산업화된 사회의 일상을 대중적인 코드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유럽 팝아트를 소개 전시한 경우로서, 팝아트의 새로운 일면을 엿보게 한다. 지금까지의 팝아트 관련 전시가 미국에의 쏠림현상이 지배적이었던 것과는 비교된다. 그런가하면 <트랜스팝>은 단순히 네오팝으로 범주화할 수만은 없는 정치적인 특수성이 느껴진다. 베트남 전쟁을 매개로 한 한국과 미국 그리고 베트남간의 삼자 관계를 중심으로 그 변화된 양상을 추적해 보여준 것이다. 특히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지닌 역사적 트라우마와 최근 한류 붐에 힘입은 대중문화의 결합을 보여준 초국적 현상에 주목한 전시였다.
그리고 개인전으로는 캔버스의 표면에 각종 곡물을 붙여나가는 방법으로 일련의 초상 시리즈를 재현한 이동재(인사아트센터, 3.7-20), 작은 초상화들의 집적으로 큰 초상화를 이루는 이중초상의 김동유(사비나미술관, 5.30-6.30),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유명 캐릭터를 차용한 손동현(두아트갤러리, 4.4-22), 아톰과 같은 대중매체의 캐릭터를 재구성한, 시대에 대한 풍자와 도발이 돋보이는 현태준(갤러리 상상마당, 9.7-10.28), 아토마우스와 판다손오공의 혼성잡종 캐릭터를 보여준 이동기와 가오유(베이징 묵 갤러리, 10.20-11.16), 대중적인 스타인 이소룡을 캐릭터로 내세워 허구적 신화를 추구하는 세태를 반영한 신창용(갤러리 선컨템포러리, 11.14-27), 탑신과 신전, 케이크와 에로티시즘 등의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을 중층화시켜 혼성의 경향성을 보여준 신명선(헤이리 아트밸리 내 터치아트갤러리, 12.20-2008.1.27), 조선시대 민화를 각색한 홍지연(인사아트센터, 4.11-24), 전통적인 책거리 그림을 차용하고 각색한 김지혜(인사아트센터, 8.22-9.4), 전통적인 산수화를 유사 큐빅과 크리스털 소재의 화면으로 변용한 김종숙(인사아트센터, 5.9-15), 동물농장을 연상시키는 디즈니랜드 풍의 판타지를 열어 보인 여동헌(아트파크, 5.2-20), 토끼를 캐릭터로 내세워 현대인의 삶을 풍자한 지우개 그림의 류지선(도올갤러리, 9.5-20), 일상으로부터 차용해온 온갖 이미지의 편린들로써 광고를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재구성한 정재호(세오갤러리, 9.6-21), 밤거리를 현란하게 불 밝히고 있는 간판들을 매개로 해서 일상적 풍경을 재구성한 박상희(인천 신세계갤러리, 9.13-18) 등이 눈에 띤다.
그리고 중진작가들 중 한만영(노화랑, 11.7-17)과 김용철(빛 갤러리, 11.20-12.4)의 그림이 이런 네오팝의 경향으로 범주화된다. 진작부터 동서양의 널리 알려진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각색한 이미지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주의 담론과도 긴밀하게 맞물려온 한만영은 이번 전시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인쇄된 이미지를 콜라주하고 재구성해 보여준다. 그리고 김용철은 조선시대 민화 중 모란도를 차용하고 각색한다. 이 중견작가들의 그림은 팝이 더 이상 신진작가들의 전유물일 수 없음을 말해준다.
네오팝의 전범 격인 팝아트는 여러 면에서 현대미술과 관련해서 의미 있는 분기점이 된다. 자본주의와 물신주의를 그 밑바닥에 깔고 있는 팝아트는 고급예술과 대중문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경계를 허물면서 예술을 세속화시킨다. 팝아트의 이러한 후광(?)을 덧입고 일본의 재팬팝과 중국의 냉소적 사실주의 그리고 코리안팝이 한국현대미술의 한 경향성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향은 내용적으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고, 형식적으론 만화를 비롯한 애니메이션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소위 뉴에이지페인팅을 아우른다.
한편, 극사실주의 회화의 경향으로는 이정웅(이화익갤러리, 4.18-5.1), 이재삼(갤러리 아트사이드, 5.30-6.11), 도성욱(인사아트센터, 5.30-6.12), 강형구(아라리오 천안, 6.5-8.19), 한슬(한전플라자갤러리, 9.29-10.8), 안성하(인사아트센터, 10.31-11.13), 배준성(갤러리 현대, 11.7-25), 김상우(잔다리갤러리, 11.22-12.26), 김성수(카이스 갤러리, 11.30-12.29), 김승진(갤러리 현대, 12.5-23), 정보영(이화익갤러리, 12.5-18) 등이 주목된다.
이들 가운데 나체 사진 위에 비닐을 덮고, 그 표면에 덧그리는 식의 일종의 이중그림을 보여준 배준성은 근작에서 랜티큘러를 통해 이러한 이중그림 효과를 심화 내지는 다변화한다. 사진과 회화가 만나는 접점 가능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김상우는 사실적인 그림에다가 시간과 움직임, 서사와 영상적인 화면 전개를 결합시킴으로써 여타의 극사실 경향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지점을 예시해준다. 또한 정보영의 경우는 극사실주의 가운데서도 특히 상징적 알레고리와 문학적 서사의 경향성이 강한 회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근작에서는 기왕의 원근법적 고찰과 함께 특히 빛에 대한 성찰이 주목된다.
이러한 극사실주의 회화는 그 생리가 현저하게 사진의 그것을 닮아있다는 점에서 종래의 구상미술이나 형상미술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그 밑바닥에는 상황주의에 연유한 구경거리의 사회 논의와 가상현실과 시뮬라크라 논의가 깔려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이전의 사실주의 회화가 새로이 부상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 견인한 회화, 사진이 그 원인을 제공한 회화, 사진으로부터 유래한 회화, 사진이 낳은 회화로 범주화할 수 있다. 사진은 표면(피부)적이고, 깊이를 결여하고 있으며, 도회적 감수성에 어울리는 미디어이다. 이처럼 사진의 등장으로 인한 달라진 삶의 풍경이나 그 생리를 반영한 회화가 한 경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드로잉 경향성의 회화와 민중미술 이후(포스트리얼리즘)

2007년에는 소마미술관 내 소마드로잉센터의 본격적인 개관에 힘입어 드로잉 경향의 회화들이 한 경향성을 이루며 대세로 자리 잡은 점이 주목된다. 소마드로잉 센터의 <막 긋기>(2.15-3.18)와 <드로잉 속으로>(10.18-11.25) 등의 기획전을 비롯해서, 문경원(성곡미술관, 3.30-4.29), 황혜선(이화익갤러리, 9.12-10.2), 김원숙(예화랑, 10.5-25), 김지원(PKM 갤러리, 10.6-11.5), 이진경(갤러리 쌈지, 10.9-29), 서혜영(금호미술관, 11.22-12.16), 김태헌(갤러리 스케이프, 12.7-2008.1.7) 등의 작가들이 눈에 띤다.
이제 드로잉은 단순히 본격적인 타블로를 위한 밑 작업이기보다는 그 자체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성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의미나 범주 또한 머리 속에 들어있는 사고(대개는 설익거나 애매한)를 즉각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일체의 방법이나 매체를 아우르고 있다. 미처 선입견에 편입되기 이전의 사고의 즉발적인 외화(형상화)를 통해 상상력을 풀어헤치고, 회화의 표현영역을 증대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1980년대 민중미술에 의해 촉발된 리얼리즘 미학이 갖는 의의를 계승 발전시키는 한편, 역사성과 같은 공동체 의식 이후 그 의식의 질을 상대적으로 더 개인적인 층위로까지 심화시킨 소위 포스트리얼리즘 경향의 회화가 예시되기도 한다. 예컨대 <민중의 힘과 꿈 - 청관재 민중미술컬렉션>(가나아트센터, 2.2-19)은 80년대 민중미술을 집중적으로 컬렉션 한 청관재 조재진의 소장품을 전시한 보기 드문 기회로서, 민중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게 했다.
그리고 개인전으로는 연보랏빛 화면으로써 역사적 판타지와 덧없는 청춘을 형상화한 최민화(문화일보갤러리, 6.7-24/ 아르코미술관, 8.31-9.30), 포르노그래피 풍의 여고생 초상화로써 가식적인 시대를 풍자한 최경태(뉴욕 소재 프로젝트 스페이스 35, 7.5-21), 붓 대신에 손으로 그린 질박한 느낌의 마티에르가 두드러진, 사북의 겨울 풍경을 그린 오치균(갤러리 현대, 9.6-26), 역시 사북의 탄광촌을 중심으로 해서 광부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그려낸 황재형(가나아트센터, 12.4-2008.1.6), DMZ을 소재로 한 행위예술로써 생태담론을 실천해보인 이반(아르코미술관, 10.12-11.20), 그리고 일관되게 인간실존을 화두 삼아 작업해온 안창홍과 정복수(갤러리 아트사이드, 10.17-30)의 경우가 주목된다.


형상미술과 추상미술

형상미술과 관련해서는 재미 원로작가의 60여년에 걸친 화업을 조망한 김보현(덕수궁미술관, 10.12-2008.1.6), 진경의 현대적 의미를 묻는 정주영(갤러리 175, 2006.12.20-1.28), 독일 신표현주의 풍의 김혜련(한길아트스페이스, 2.3-3.4), 일상적인 장소에 내재된 의외성에 주목한 공성훈(아트포럼뉴게이트, 2.6-16), 인간상황을 실존주의적으로 변주한 오원배(갤러리 아트사이드, 5.2-15), 인터넷이나 대중매체로부터 차용한 이미지로써 재현의 의미를 묻는 홍순명(세오갤러리, 5.31-6.28), 평면적인 풍경화로써 역시 회화에서의 재현의 의미를 재고하게 한 송명진(노화랑, 7.4-14), 자연과 인체를 대비시켜 정적이고 몽환적이며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 이우림(갤러리 우덕, 7.24-8.3), 반복적으로 중첩된 연립의 구조를 패턴화한 정직성(갤러리스페이스아침, 11.7-20), 꽃을 모티브로 하여 그 원형을 해체한 연후에 재차 이를 재구성해 보여주는 한수정(갤러리스케이프, 11.10-18), 그 실체가 애매한 풍경을 통해 소위 ‘사이’에 대한 인식을 엿보게 한 박세진(아라리오 천안, 11.16-2008.1.6)의 경우가 주목된다.
그리고 한국화와 관련해서는 남농 허건(덕수궁미술관, 5.4-6.10)과 월전 장우성(이천시립월전미술관 개관기념전, 8.14-9.26) 그리고 심향 박승무(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C, 12.13-2008.1.26) 등의 원로작가들의 전시가 열렸다. 중진작가로는 사군자의 전통적인 소재를 매개로 해서 현대문인화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문봉선(학고재, 2.28-3.20)과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진 유목적 삶을 소재로 한 허진(갤러리 베아르테, 6.20-7.18/ 한전플라자갤러리, 11.9-18)의 경우가 눈에 띤다.
이외에도 중견작가들의 전시로는 유근택(동산방화랑, 3.28-4.10), 정재호(관훈갤러리, 4.18-5.1), 한기창(학고재, 5.9-22), 이진혁(미술공간 현, 7.11-17), 성태훈(갤러리 꽃, 7.30-8.12), 임택(심여화랑, 9.1-20), 정용국(인천 신세계갤러리, 9.4-10), 박윤영(아라리오 천안, 9.11-11.4), 박병춘(쌈지스페이스, 10.10-12.4), 정진용(표갤러리, 10.16-29), 박능생(영아트갤러리, 10.24-30), 고찬규(장은선갤러리, 10.24-30) 등의 전시가 주목된다.
이들 가운데 이진혁은 교통체증을 주제로 하여 현대인의 삶의 질을 풍자하고 있으며, 성태훈은 일상적인 정물화와 더불어서 이와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운의 느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의외성을 드러낸다. 옮겨진 산수 유람기를 주제로 한 임택은 전통적인 산수화를 입체로 구현한 연후에, 이를 재차 디지털프로세싱을 통해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였으며, 유기적 정원을 주제로 한 정용국의 화면에서는 형태의 자유자재한 변태가 두드러져 보인다. 채집된 산수를 주제로 한 박병춘은 기존의 평면 작업과 함께 전시장 벽면에 산수를 직접 그리고 설치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전시장 바닥을 라면으로 채움으로써 그림에 나타난 소위 라면준을 공간 설치 형식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철저한 현장사생에 바탕을 둔 평면, 벽화, 설치 형식의 실험적인 산수풍경화를 통해 전통 산수화의 평면적 한계를 공간설치에로까지 확장한 경우로 사료된다. 일종의 미세 유리 알갱이 소재인 비즈를 소재로 한 정진용의 그림에서는 간결한 화면과 함께 고요함과 모호함 그리고 아련한 정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박능생은 홍묵과 흑묵을 병치시킨 신작에서 이전의 도시적 삶을 소재로 한 것으로부터 자연을 소재로 한 혹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소재로 한 것에로의 변화된 양상을 보여준다. 고찬규의 그림에서는 왜소하고 나약한 현대인의 일상적인 모습이 가식 없이 표현돼 있다.
이와 함께 <한국화 1953-2007>(서울시립미술관, 4.25-5.27)와 <신산수풍경>(관훈갤러리, 5.16-22) 등의 기획전들이 주목된다. 그리고 <뻥화론 연구>(쌈지스페이스, 12.12-31)에서의 뻥 화론이란 임모를 통한 새로운 예술작품을 뜻하는 방화(倣畵)를 비틀어 해체한 신조어로서, 이를 통해 전통적 형식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존중과 조소의 이중적 시선을 드러낸다.

추상미술과 관련해서는 한국 단색조 회화의 대표작가 서승원(가나아트센터, 1.12-28), 윤형근(샘터화랑, 3.7-31), 정창섭(표갤러리, 3.28-4.28), 정상화(갤러리 현대, 5.2-20), 박서보(경기도미술관, 5.11-7.8/ 아라리오 베이징, 9.22-11.18), 윤명로(표갤러리, 10.17-11.9), 이강소(이화익갤러리, 10.24-11.6), 추상표현주의의 곽훈(예화랑, 11.1-1.21), 빛의 흔적을 추구해온 방혜자(환기미술관, 9.14-10.28), 한국추상미술의 대표작가 이준(아람미술관 개관기념전, 9.21-12.2) 등의 원로작가들의 전시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5각형을 주제로 한 기하학적 패턴회화의 고낙범(카이스갤러리, 4.3-5.11), 볼펜그림으로써 몽환적인 풍경을 재현한 문범(갤러리 PKM, 5.25-6.25), 반투명의 띠 조형그림으로써 우호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남춘모(카이스갤러리, 5.31-6.29), 캔버스의 표면에 유사 큐빅이나 유사 진주를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재구성된 텍스트작업의 고산금(갤러리 선컨템포러리, 9.19-10.14) 등의 중진 혹은 중견작가들의 개인전이 주목된다.
이와 함께 <호흡>(서울시립미술관, 3.3-4.29), <추상미술, 그 경계에서의 유희>(서울시립미술관, 11.7-2008.2.17), <신사실파 60주년 기념>(환기미술관, 11.9-2008.1.13), <언어적 형상, 형상적 언어; 문자와 미술>(서울시립미술관, 11.28-2008.1.27) 등의 기획전들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신사실파>전은 1947년 처음으로 결성된 회로서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규상, 이중섭, 백영수 등 추상미술 1세대 화가들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전시였다. 그리고 <문자와 미술>전은 문자와 기호 그리고 텍스트를 이미지의 한 형태로 보는 태도를 조명한 것으로서, 일종의 신개념주의 미술로 범주화할 만한 경향성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한국화의 추상미술 경향에 대해서는 이종상(대전시립미술관, 4.6-5.20), 홍석창(갤러리 호, 4.11-30), 이응로(가나아트센터, 5.3-24/ 이응로미술관, 9.11-10.30), 이철주(금호미술관, 5.17-6.10), 정탁영(서울대학교미술관, 7.4-20) 등의 원로작가들과 함께, 정종미(닥터박갤러리, 7.7-8.5), 남궁환(성남아트센터, 7.18-28), 홍순주(노화랑, 8.17-25), 박영대(인사아트센터, 9.19-10.2) 등의 중견 작가들의 전시가 주목된다.
한편, 2007년 한 해 동안 <장 뒤뷔페>(공근혜갤러리, 2006.12.21-1.28), <막스 베크만>(서울대학교미술관, 3,12-6.22), <오노레 도미에>(서울대학교미술관, 12.14-2008.1.31) 등의 국외의 유명 작가들의 판화 전시들이 잇따라 열렸다. 이외에도 <프린트스펙트럼>(선화랑, 2006.12.27-1.10), <2007 서울미술대전 판화>(서울시립미술관, 6.8-7.1), <서울 국제 판화 사진 아트페어>(예술의 전당 미술관, 10.3-7), <한국현대판화 1958-2008>(국립현대미술관, 12.14-2008.1.27) 등의 주요 판화관련 전시들이 있었다. 이 일련의 전시들은 그 형식이 평면은 물론이거니와 입체와 설치마저도 아우르는 것으로서, 판화의 외연이 전에 없이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졌음을 예시해준다. 그리고 디지털프린트와 사진 심지어는 영상을 포함하는 등 판화의 기술적 프로세스가 당대의 첨단의 미디어와 강하게 연동돼 있음을 증언해준다.

블록버스트 형 전시와 외국작가의 국내전시

2007년 한 해 동안 열린 주요 블록버스트 형 전시로는 초현실주의의 대가 <르네 마그리트>(서울시립미술관, 2006.12.20-4.1), 빛의 화가 <모네>(서울시립미술관, 6.6-9.26), 표현주의의 대가 <빈센트 반 고흐>(서울시립미술관, 11.24-2008.3.16), 우수에 젖은 여인 초상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아람미술관, 12.27-2008.3.16)와 같은 유명 작가들과 함께, <오르세미술관>(예술의 전당 미술관, 4.21-9.2), <비엔나미술사박물관>(덕수궁미술관, 6.26-9.30)과 같은 유명 미술관 소장품을 유치한 전시들이 있었다. 이 소위 블록버스트 형 전시들은 대개 전문기획사가 주관하고, 언론사가 지원하며, 미술관은 다만 공간만 빌려주는 형식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 미술관이 주체적인 기획력을 갖고 끼어들 여지가 전무한 구조이다. 물론 대중적인 계몽을 위한 미술문화의 필요성도 상존하겠지만, 그렇다고 유명 미술관들이 이 전시들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외에 주요 외국작가들의 국내 전시로는 자유구상의 <장 뒤뷔페>(덕수궁미술관, 2006.11.10-1.28), 만화 같은 자유분방한 드로잉이 돋보이는 <로베르 콩바스>(서울시립미술관, 2006.12.20-2.11), 팝아트의 <탐 웨슬만>(더컬럼스갤러리, 2.2-3.3),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삼성리움미술관, 3.15-6.10), 거꾸로 그려진 인체의 <게오르그 바젤리츠>(국립현대미술관, 5.11-7.15), 독일 신표현주의 경향의 문틴 앤 로젠블룸(아라리오 서울, 10.17-11.18), 월페인팅의 <마커스 린넨브링크>(더컬럼스갤러리, 3.7-4.7)의 경우가 주목된다. 최근 들어 외국작가들의 국내 전시의 규모가 커지고, 다변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와 함께 예년에 이어 중국현대미술과 일본현대미술의 국내 진출이 탄력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중국작가들의 그림에서는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일면 즉 일명 냉소적 사실주의 경향성의 한 단면이 느껴진다. 오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통과 자본주의의 문화적 아이콘이랄 수 있는 팝아트가 서로 결합해서 그들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부터 구세대와 신세대의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갈등과 반응이 읽혀진다. 그런가하면 일본작가들의 작업의 이면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략 만화(망가)와 일러스트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축조된 튼실한 인프라가 뒷받침되고 있다. 말하자면 대중문화와 순수미술과의 긴밀한 상호관계에 대한 인식이 주요 동인으로 작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2007년 한 해 국내 화단은 네오팝과 극사실주의 회화의 경향, 드로잉 경향성의 회화와 후기 현실주의 미술, 블록버스트 형 전시와 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약진으로 특징된다. 이외에도 그 이면에 미술이나 예술의 본질에 대한 자기반성적 성찰과 더불어 비평적 기능마저 내재한 신개념주의미술과, 아직도 여전히 형식실험 중인 소위 대안미술의 여러 형식들이 주목된다. 그리고 환경조형물과 관련한 정체성 논란 이후 그 대안으로 제시된 각종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었지만, 아직은 현재진행형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