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생으로, 90년대에 미술대학을 다닌 세대인 이윤석은 조형에 대한 진지한 의식과 강도 높은 노동이 투입되는 작업들로, 90년대의 주역이었던 신세대 특유의 가볍고 발랄한 문화적 풍토와 거리가 먼 스타일을 보여준다. 본래 건축학 지망생이었던 그는 조각을 전공하게 되면서도 치밀한 구조적 분석과 방법론을 유지했던 것이다. 조각가로서의 이력을 시작한 이래 이윤석은 주로 금속 조각에 주력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가공 후 바로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과, 어느 정도 스케일이 있는 구조적인 작품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소재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4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굵은 철사를 용접해 이어나가 덩어리를 만드는 작업은, 일본에서 석 박사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내내 해왔던 것들을 집약한 것이다. 이 전시에서 그는 금속선을 용접하여 굴곡진 면을 만들고, 그것이 복잡한 흐름으로 뒤엉킨 작품, 그리고 연속적인 질량체가 굳어져 만들어진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 등을 발표하였다. 그 이후에도 흐름(流)이나 주(宙)라는 주제는 2000년대 중후반까지 변주되고 지속된다.
첫 전시에서 이윤석은 집요한 노동의 축적에 의해 완성된 소용돌이치며 유동하는 유기적 흐름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자연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만물은 끝없이 흐른다’는 고대의 자연철학을 떠오르게 하는데, 불확정적인 방향성을 가진 거센 흐름들은 모든 형상을 탄생시키는 잠재 에너지를 품고 있다. 이 원초적 물질은 주거지 등의 구조로 약호화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주거지를 비롯한 모든 체계는 묶인 에너지로 나타난다. 미셀 세르가 [헤르메스]에서 말하듯이,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흐름은 에너지의 형태로 현존하는 자연이자 연속적인 형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근본적인 소용돌이가 없다면 어떤 것도 실재하지 않으며, 형성되지 않는다.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주름진 굴곡 면에 새겨 있는 것은 소용돌이치는 시간이다. 여기에서 시간은 단선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요동치며 흐른다. 난류처럼 휘몰아치는 흐름은 끝없는 구성요소들의 변동하기 때문에 일정한 체계를 이루지 않고 여러 합류점을 만든다.
여러 힘들 사이의 투쟁에 의해 형성된 듯한 작품 형태는 원소(素)나 주거지(宙) 같은 가장 기본적인 구조물도 조금 더 점성이 강한 액체에 불과함을 예시하고 있다. 2004년의 류(流)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변곡을 보여주며, 들뢰즈의 [주름]에 나오는 말처럼 ‘점에서 점으로가 아니라, 주름에서 주름으로’ 나아간다. 이윤석의 작품에서 소용돌이는 단독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새로운 소용돌이들이 항상 앞선 소용돌이들 사이로 끼어든다. 변곡 자체가 소용돌이가 되어 요동친다. 연속체는 미로를 이루며 직선에 의해 표상될 수 없다. 그의 작품에서 직선은 곡률로 뒤섞여 있다. 그것은 변화하면서 연속적인 방식으로 주조되며, 곡률, 또는 변곡의 무한한 계열을 이루는 것이다. 2007년 국내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은 액체가 아니라, 그것을 헤치고 나아가는 방주의 모티브로 변화한다. 같은 해 전시되고, 모란 조각 대상을 받은 거대한 배의 형상은 무모해 보이는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내실 있는 상징주의를 갖춘다. 여기에서 기둥들과 배는 신성한 공간을 축조하는 구성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2004년의 개인전에서는 자아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양하게 소용돌이치는 흐름이었는데, 보다 구조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무한한 겹을 가지면서 조밀하게 짜맞춰진 형식은 동일하며, 기둥과 세트로 설치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윤석의 모든 작업은 컴퓨터로 정교하게 설계되어 절단도에 의해 레이저 커팅 된 금속판의 조립과 용접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반복되는 구상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구성단위들이 조합되고 조밀한 텍스추어를 형성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우연적으로 떠오르는 영감보다는 꾸준히 수정되면서 변화되어가는 도중에 나온다고 말한다. 알, 구, 방주 등 작품의 주요 모티브는 고풍스런 신화적 상상력이나 자아의 심리학 등과 연관되지만, 형식적으로는 현대의 기술과학의 방법론이 관철되어 있다. 도면을 바탕으로 구축된 3차원 모형은 우주나 세계에 대한 조직적 모델로 제시된다.
그것은 ‘플라톤 이래 서구 철학의 근간을 이루었던 건축에의 의지’(가라타니 고진)와 가까운 것이지만, 이 건축적 의지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토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의 토대가 부재함을 드러낸다는 역설이 나타난다. 두 개의 날개로 갈라지는 듯한 거대한 [모선]에는 바닥이 없다. 구조는 곧바로 해체와 연관되는 것이다. 우리시대를 해석하는 강력한 키워드 중의 하나인 해체는 처음부터의 느슨함보다는 꽉 짜인 구조를 통해서 드러난다. 존재에 바닥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은 동일성이 아닌 타자를, 내부가 아닌 바깥을 가리키는 것이다. 2008년 초에 열린 최근의 전시는 중심에서 바깥으로 떠나는 이전 전시의 연장에서, 타자를 적극적으로 품에 안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타공된 스테인레스 절편을 몇 겹으로 조립하는 스타일의 작품은 여전히 크고 육중하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조립되어질 구조적 단위들에 새겨진 문양들은 유선형의 작품 외관에 상응하는 유기적 흐름이 내재해 있다. 흐르는 물방울이나 유동하는 세포내 구조물을 연상시키는 곡선들은 엄격한 기하학을 완화시킨다.
기본단위들이 호를 이루며 배열된 작품들은 보다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는데, 그것은 작품 제목 중의 하나인 [품]처럼 타자를 감싸 안는 공간을 만든다. 이윤석은 이 [품]이 자신의 전시 또는 작품 목록에서 특히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둥글게 둘러쳐진 [품] 시리즈에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형식과 유동하며 흐르는 절개면의 형태는 포용의 넉넉함을 예시한다. 에둘러진 절편들은 시계처럼 시간의 흐름을 공간화하며, 트임의 형식을 가지는 이윤석의 작품에서 이러한 원천들은 무시간적인 정적이 아니라, 바깥과의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으로 분주하다. 그것은 안과 밖, 성과 속이 교류하는 세계상(世界像)을 압축하고 있다. 중심을 에워싸는 기본 구조는 성(聖)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신성한 공간의 건조에 해당된다. 이 공간을 향한 향수는 곧 ‘낙원에 대한 향수’로, ‘세계의 중심, 실재의 한가운데에 있고픈 욕망’(엘리아데)이다. 겹겹의 층위를 따라 대우주로 반향 되는 소우주의 이미지는, 일상으로부터 이상향에 이르는 모든 구축물이 우주창생의 반복과 복제라는 것을 예시한다.
이윤석의 작품이 이 같은 종교적 상징주의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그의 작품에 어떤 구체적인 서사가 새겨져 있어서가 아니라, 형식적 장치 그 자체에서 힘입은 바 크다. 여기에서 형식은 장식이 아니라, 의미를 발생시키는 섬세한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강한 한 점을 중심으로 조직화된 중심 집중적 체계centric system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체계에서 중심은 힘들이 발생하고 수렴되는 역동적인 자리가 된다. 원은 타원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배가 그러하다. [모선](2007)의 최근 버전인 [宙](2008)가 가지는 타원형 구조는 하나의 중심이 아닌, 두 개의 중심을 탑재하면서 항해, 또는 비상의 이미지로 도약한다. 이윤석의 작품의 중심이었던 자아의 동일성은 흐름(2004)에서 구조와 해체(2007)로의 여정을 거쳐 타자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간단치 않은 재료를 사용하여 새로운 작품들을 쏟아냈던 이윤석은 과도한 노동에 지쳤는지, 앞으로 가볍고 가변성이 풍부한 재료를 사용하여 좀 더 복잡한 형태를 우아하게 표현해 보고 싶다고 말한다.
출전 | 퍼블릭 아트 3월호
이선영
#3118
흐름에서 구조로, 다시 흐름을 내포하는 구조로
이선영
2008. 02. 29.
이선영
서울 출생
인명사전 바로가기 : www.daljin.com/author/3059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
미술평론가 이선영(b.1965)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으로 등단(1994)하였으며,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과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을 역임했다. 제1회 정관 김복진 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를 수상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