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교환방식에 대해

예술과 자본 2.1--2.29, 대안공간 루프
함경아1.24--3.9, 쌈지 스페이스



홍대 부근 대안 공간 두 곳에서 각각 열린 ‘예술과 자본 전과 함경아 전은 세계화의 그물망을 타고 전에는 미칠 수 없었던 세세한 구석까지 작동하는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와 정치경제학을 주제로 한다. 누구도 선뜻 살 것 같지 않은 순수 예술작품에 대한 지원체계가 나름대로 존재하며 미술시장의 부흥 등, 언뜻 생각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작가들은 여전히 불편한 구석이 있다. 이들의 작품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율된다고 가정되는 시장 논리가 질서가 아닌 무질서를, 안정이 아닌 불안정을, 풍요가 아닌 빈곤을, 건설이 아닌 파괴를, 평화가 아닌 전쟁을 낳는 역설적 경향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예술과 자본’처럼 경제가 문제이거나, 함경아의 ‘such game’처럼 정치가 문제라면, 양자의 핵심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교환(소통) 방식이 놓여있다.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유일한 코드가 지배하는 가치체계 아래, 개별적 특수성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분란의 소지를 낳는다. 아마도 그것이 현 사회에 대해 예술가들이 불편을 느끼는 이유이며, 거창한 정치의식 없이도 체계에서 소외된 자들과 자연스런 연대감을 갖게 되는 이유이다.




루프의 전시장 초입에 있는 락스 미디어 컬렉티브(인도)의 영상물은 일상과 자연이 병치되어 잔잔하게 흘러가거나 이미 낡아버린 생산 체계들이 지나간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덧없이 흘러가는 것들은 모두 모더니티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지하 전시장 입구에 ‘작품에 손대지 말라’는 엄포가 모던 페인팅의 방식처럼 평면적으로 드러난 작품에서, 물신적 체계를 가동시키는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의 공통성이 지적된다. 샤오 위(중국)는 금색 액자 안에 스튜디오 사진들을 걸어놓았다.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은 기념사진 안에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배경이 스며있다. 전통에서 현대로 변화하는 와중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거친 격동기 중국의 초상이 출처불명의 기호들로 짜깁기 된다. 돈으로 연결된 양복쟁이들이 무한반복 되는 이중근의 작품은 자본주의 교환 시스템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본이라는 하나의 중심 코드가 지배하는 시뮬라크럼simulacrum의 세계이며, 이윤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쉴 새 없이 굴러가는 악무한의 원 속에서 개인은 익명의 매개물에 불과하다. 이동기의 아토마우스는 눈을 하나 더하여 후기 자본주의에 상응하는 분열적 정체성을 표현한다. 대형 프린트물로 번안된 작품은 순도 높은 개별 생산품으로서의 미술품을 대량소비의 체계에 투입하고픈 생각이 담겨있다. 작가의 의지가 그러하며 이제는 유명해진 아토마우스가 탄생한지도 꽤 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작품이 미술품에 머무른다는 점은, 자본주의 교환시스템이 가지는 배타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손때 묻은 작은 봉제 인형들과 플라스틱 인형들을 잔뜩 모아놓은 후지 히로시(일본)의 ‘카엣코 시스템’은 각자 필요 없는 물건을 내놓고 필요한 것과 교환하는 시스템이다. 돈이라는 매개를 거치지 않은, 주고받는 끝없는 과정으로 이루어진 대안적 교환체계는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소박하고도 근본적인 거부이다. 플라잉 시티는 골판지나 패트 병같은 폐품으로 종횡무진 연결되는 마을을 구축하였다. 얼기설기 만들어졌지만, 벌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이것저것 되는대로 모아놓은 브리꼴라주 스타일의 주거지는 소수의 이익에 봉사할 뿐인 대규모 계획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아래로부터 자율적으로 생장하는 풀뿌리 같은 삶의 모델인 것이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태국)의 작품은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는 세계 분쟁지역의 신문기사들을 발췌하여, 지구촌의 당면과제를 다시금 부각시킨다. 그룹 안테나(일본)는 우주창생과 생멸에 관한 애니매이션에서 ‘신, 악마, 사람들,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이 살았던 세상과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을 신화적 어조로 전달한다. 공해에 찌든 묵시록적인 장면은 현대의 풍경과도 비슷하다. 비디오 작품은 전통 의례의 모티브와 가면 쓴 만화적 캐릭터가 결합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별천지처럼 보이는 배경에 우스꽝스런 가면과 엄격한 제의적 몸짓은 환상 속에서 매끄럽게 흘러간다. 새로운 절대 존재는 매우 재미있게 생겼다. 선천적으로 입력된 듯한 캐릭터들의 행동거지는 개별적 성향과 우연적 요소를 배제하고 삶의 질서를 우주화 한다. 상품과 예술품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화려한 이미지가 작동되는 배후에 잠재되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세계의 예측 가능성 같은 일련의 규칙성이다.






함경아의 ‘such game’전에는 이라크, 북한 등 ‘깡패국가’로 낙인찍힌 국가들이 등장하고, 대 테러전쟁을 빌미로 일상에 만연한 규제들이 고발된다. 노동과 달리, 자본은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우며 이를 통해 최대의 이윤을 산출한다. 그것이 세계화의 본질이며, 그것은 각 지역 간, 계급 간 이해관계의 상충과 끝없는 전쟁을 낳는다. 경쟁이 만연한 일상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실제로 피 흘리는 전쟁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1세계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일상을 지탱해주는 것이 타자화 된 주변 국가들과의 항시적인 전쟁이라는 진실이 함경아의 작품에 나타나 있다. 지하 전시장의 작품들은 벽에 걸린 액자형 백자부터 식탁 위에 차려진 만찬 세트들 까지, 마치 백화점의 도자기 코너나 박물관의 수집품처럼 배열되어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고즈녁한 산수풍경이 그려있는 청화백자 안에는 탱크나 비행기같은 현대의 무기류가 곳곳에 박혀있고, 총구멍이 나거나 박살난 백자들도 보인다. 기관총이나 칼같은 살상무기가 백자로 구현되어 있는가 하면, 아예 백자와 무기류의 결합체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드라이버나 망치같은 도구류가 무기류와 같은 반열에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도구적 합리성과 전쟁의 광기에 사이에 놓인 인과관계가 있다. 청화백자로 상징되는 것이 수세기 동안 내려온 각국의 특수성이라면, 총은 그것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근대화된 도구를 상징한다. 그 총부리는 스스로를 향할 수도 있고 바깥을 향할 수도 있다. 간간이 놓여 진 망가진 총들은 부질없는 평화에의 희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 다른 전시장 입구를 메워버린 여행용 가방들은 대 테러 전쟁이 일상에 미치는 여파를 표현한다. 대 테러 전쟁은 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을 감시하고 억압하며 스스로 조절하게끔 하며, 이러한 시스템을 가동하여 이익을 얻는 세력은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한다. 메인 전시장에는 작가가 스케치하고 북한 수공예 노동자에게 맡긴 자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3국을 경유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과 압수 및 행방불명 같은 변수는 세계 유일의 분단 상황을 일깨워준다. 청화백자 시리즈처럼 평화로운 장면 곳곳에 육해공군용 무기류가 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의 생산 및 유통방식을 삐라에서 얻었다고 한다. 삐라처럼 작품을 매개로 북한 노동자와 전쟁 및 테러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반체제적 메시지를 소통하고자 했다. 인터넷 같은 수단을 통해 전 세계를 상대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이때, 애써 에둘러간 이런 식의 소통이 얼마나 많은 장애물과 경계를 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의 솜씨로 완성된 작품 내용은 원주민과 정복자의 불행한 조우, 피어오르는 버섯구름, 테러리즘을 경험한 이라크 아이들의 그림 등과 인터넷 등에서 수집하여 북한 말씨로 각색한 테러 관련 이야기들을 엮은 병풍 등이다. 소박한 필치와 솜씨로 완성된 텍스트와 이미지들은 세계화에 저항하였기에 그 세례를 받지 못한 ‘낙후된’ 지역들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이러한 상황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음을 알려준다. 가령 석유가 아니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제국주의 전쟁을 빗댄 작품인, 석유찌꺼기로 그린 양탄자는 이국적 타자를 착취하는 동일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합리적 계몽과 도구적 이성이 추동하는 끝없는 노동과 생산이 인간이 아닌 생산력만을 해방시켰고, 이 고삐 풀린 생산력과 축적된 부가 호혜적 평등과 평화, 그리고 풍요가 아니라, 파괴와 전쟁을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밀은 희소성을 통해 지배적 권력을 유지하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 속에 있다. 시장으로 대변되는, 자못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교환체계는 타자를 억압하는 잉여가치와 생산만을 허락하는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작가들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구조적 병폐에 대해 대안의 교환체계를 제안하는데, 생산 중심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 낭비와 광기, 죽음에까지 이르는 소모과정이라 할 수 있는 예술도 그 중 하나이다.

출전 | 아트 인 컬처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