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용, 죽음은 삶을 세척 한다
정현용의 전작은 각종 매스미디어에 등장하는 유명 연예인이나 모델 등 대중적인 스타들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이를 죽음의 이미지와 결합시킨다. 스타들의 영정을 보는 듯한 이 일련의 제단화들은 화려하고 영원할 것만 같은 존재의 이면에 드리워진 허무를 암시한다. 그리고 신이 죽고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스타나 스타에 대한 열광은 실상 그 실체가 없는 한갓 허구적 이미지에 지나지 않음을 주지시킨다. 신화적 존재의 화려함이 삶의 덧없음을 상기시키고, 생의 찬미와 함께 죽음의 그림자가 감지된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숙명적으로 덧없고, 영원한 것에 대한 열망은 비루한 일상을 증명해줄 뿐이다.
이 부정, 이 허무는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짙고 푸른 청색 속에 잠겨 있거나 검붉은 암적색 위로 부유하는 암울한 이미지들이 현실을 닮아있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의식의 층위에 속한 것 같지만 사실은 무의식의 심연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리고 (근작에서의) 이 암울한 비전은 병원에 연유하고 있다. 오랜 병상생활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철저하게 무기력해지는 것을 경험한 작가가 당시 병원의 정경이나 동료환자들의 (그리고 자신의) 심리적 정황을 옮겨 그린 것이다. 작가는 개인의 사적 경험을 토대로 해서 불안과 고독, 죽음과 공포, 그리고 고통과 같은 보편적인 존재론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에서 환영을 만들어내고, 악몽을 불러일으키며, 비현실적 비전을 그려낸 것이다.
환자는 잠이 든 것 같다(영원한 휴식, 병실 풍경). 접이 식 긴 의자 위에 편안하게 몸을 누인 채 잠이든 그는 모처럼의 휴가를 즐기고 있는 휴양객 같다. 그는 과연 편안한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 혹여 그의 수면이 다만 휴식처럼 보일 뿐, 그 이면에서는 영원한 휴식 즉 죽음과 대면하는 치열한 순간을 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잠든 의자 아래로 그물과도 같은 비정형의 촘촘한 망들이 드리워져 있다. 그 망들이 그의 감은 눈 뒤쪽 어두운 심연으로부터의 망상이거나, 그의 누인 머리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악몽을 불러일으킨다. 그런가하면 수술대 위에 뉘어진 그의 머리 위로 섬광과도 같은 연록색의 빛줄기가 그려져 있다(수술실). 마취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통증이 사라진 탓인지 오히려 그의 의식은 더 투명하고 명료해 보인다. 칼이 자신의 몸을 째고, 소형 그라인더가 자신의 뼈를 깎는 소리를 여과 없이 헤아려 들으면서 순간적이지만 그의 의식, 혼이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의 머리는 그렇게 혼이 빠져나가면서 텅 빈다(기억의 공백). 그 공백은 마취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사실은 기억을 지우고 싶은, 돌이키고 싶지 않은 그의 의지에 연유한 것이다.
정현용의 그림의 주조색은 짙푸른 청색이나 검붉은 암적색이다. 그 색채가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죽음, 피, 무의식, 심연, 어둠을 떠올리게 한다. 수차례 덧칠된 짙고 투명한 그 색채는 물을 암시하며, 이때 물은 무의식이 그려낸 피바다와 통한다. 약을 타는 곳의 카운트 안쪽에서 깊은 심연을 보던(약타는 곳) 작가는 철저하게 무력해진 나머지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든다(무기력, 혼수상태). 혼수상태에서 헤엄치는 물속은 마치 붉게 물든 노을 같기도 하고 피바다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비전은 마침내 도시 전체가 온통 피바다에 잠긴 듯한 악몽으로 이어진다(수혈).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 텅 빈 도시가 피바다의 홍수 속에 잠겨 있는 이 정적이고 암시적인 비전이 세기말적 상상력을, 묵시록의 계시를, 카타스트로피(인류 마지막 날의 전면적인 파국)를 불러일으킨다. 이와 함께 아마도 한강변에 위치한 실외수영장을 소재로 한 듯한 그림에서는 그림 뒤쪽으로 어둠의 정적 속에 감싸인 아파트가 보이고, 수영장 한가운데로부터 붉은 섬광 같은 빛줄기가 솟아오른다(수중 분만). 이는 물이 낳은 빛, 무의식이 낳은 빛, 어둠이 낳은 빛인 양 보인다. 모두가 잠든 순간에도 자연의 영들은 깨어있고, 의식이 잠든 순간에도 무의식은 잠들지 못한다. 휴식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지우는 이 불면증을 작가는 꽉 막힌 송유관에다 비유한다(급체).
정현용이 그려낸 이 일련의 그림들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의식 속에 내장된 무의식과 심연, 어둠과 죽음을 대면케 한다. 이를 통해 그 실체에 있어서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또렷하고, 죽음이 삶보다 더 강하며, 어둠이 빛보다 더 선한 것임을 주지시킨다. 죽음과 대면하는 행위에는 삶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힘이 내장돼 있다. 작가는 자신의 상처와 대면함으로써 무의식적 자기와 화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자기반성적 행위에 바탕을 둔 존재론적 보편의식을 획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