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전 | 4.23-5.23 | 사루비아 다방
어둑한 전시장 바닥 가득히 퍼져있는 원 형상의 중심에는 산이 솟아있다. 반대로 보면 빙하가 아래서부터 녹아내린 듯도 하다.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초고속으로 찍은 사진처럼, 중심에서의 절정과 사방으로 퍼지는 파장이 결합된 장면 같기도 하다. 이러한 비유는 어떤 짧은 시간에 포착된 공간의 모습과 관련된다. 반대로 그것은 종유석처럼 억겁의 세월이 고착된 양상과도 비교될 수 있다. 어떤 모습이 연상되건 간에 그것은 극히 짧거나 극히 긴 시공간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바다 저편Ultramarine’이라는 전시부제는 처음과 끝을 가지며 기계적으로 나뉘어 진 시간, 오성과 이성을 지배하는 그 일상적 시공간을 초월하는 세계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일상의 선적 시간은 뭉개지고 파동치며 역류하고 꼬리를 물고 순환하기도 한다. 선적 시간은 이 카오스적 시간의 극히 일부분에 해당된다. 필자가 기억하는 김윤수의 이전 작업은 이 세상에 왔다가 갈 수많은 인간의 족적을 지질학적인 시간대로 압축한 것이었다. 수평성, 세밀하게 나뉘어진 층들이 이번 전시에도 나타난다. 층들은 이전처럼 사선으로 밀려가기 보다는 동심원이나 회오리같은 중심 집중적인 구조로 변했고, 동일한 단위를 바닥에 산포하듯 설치한 이전과 달리 큰 덩어리 하나로 압축시켰다는 점이다. 이전 작업이 사막에서 부는 바람을 연상시켰다면, 이번 전시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을 연상시킨다. 가닿을 수 유토피아 같은 그 섬은 바다와 하늘과 산과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윤수의 풍경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는 무한의 색으로 불리 우는 블루와 연결된다.
전시장 초입에 입간판에 붙여놓은 네 가지 계조의 푸른색 종이가 상징하는 바가 그것이다. 그것은 전시장 벽에 엽서 크기의 구름 떠 있는 하늘 풍경 등으로 반복되곤 한다. 네 가지 구성요소가 심오하고 그럴듯한 환영이 아니라, 입간판에 붙여놓은 종이 장이나 엽서 한 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그것은 무한한 시공간 속의 자연(자신을 포함하는)은 재현이 아니라, 제시될 수 있을 뿐인 숭고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간판 뒤에 붙은 작가의 말(전시장 벽에서도 반복된다)--‘내게는 말할 줄 아는 혀가 없다. 내게는 안을 줄 아는 팔이 없다. 내게는 움직일 줄 아는 다리가 없다. 내게는 볼 수 없는 두 개의 귀와 소리 내지 못해 슬픈 두 개의 눈이 있다’--에는 경험 및 감각적 현실에 대한 물리적, 반사적 반응이 아니라, 우회적 수용에 대한 암시가 담겨있다.
‘바다 저편’을 응시하는 감수성이라 해야 할까. 김윤수의 작품에는 느릿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푸른색과 대조되는 색으로 쓰인 황금빛(그것은 푸른색과 달리, 사자 같은 구체적 형상과 결합되어 있다)은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는 상상과 관련된다. 바다, 하늘, 산, 구름 등 4대 구성요소는 푸른색 뿐 만 아니라, 황금색과도 연결된다. 황금색은 빛을 의미하며, 푸르른 무한 공간을 일순간에 가르는 시간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수직과 수평, 이곳과 저곳이라는 지형학적 비유, 그 낙차에서 빠져나오거나 투입되는 거대한 에너지가 작품의 원동력이다.
출전 | 계간조각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