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허물 또는 껍질 전 | 5.10-6.29 | 모란 미술관

모란미술관이 ‘오늘의 한국 조각’이라는 테마로 열어온 전시에서, 올해의 키워드는 ‘조각의 허물 또는 껍질’(고충환)이다. 껍질이라는 키워드는 조각의 핵심 또는 알맹이가 빠져나간 상태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지상 위에 우뚝 선 기념비로 존재해 왔다. 기둥식(monolithic)의 구조에서 연상되는 인간적 형태(Anthropomorphism)가 조각의 뼈대이자 알맹이가 되면서, 조각적 질서의 근본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보편적 질서의 상징이기도 한 신적 인간(神人)의 재현이었으나, 오늘날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인간 주체이다. 조각적 질서는 유기적 재현의 바탕인 중심과 주변, 부분과 전체 사이에 관계적인 구성을 견지하였으나, 현대조각에서는 이 관계가 인간주의와 더불어 해체, 또는 변형된다. 미술은 인간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마주 선 거울이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동일성에서 타자로 흩어지는 와중에 조각은 덩어리나 기념비에서 표면과 반(反)기념비가 되었다.





전시는 다섯 개의 독립된 공간에 한 작가 씩 안배하여, 전시 컨셉의 면면을 두루 표현하도록 했다. 구경숙과 김일용은 몸의 표면에, 그리고 박소영과 박원주는 대상의 표면에 주목하고, 차기율은 수집한 자연적 오브제를 변형하여 비정형적인 다발 형태의 작품을 보여준다. 몸의 분비물이 흔적으로 남는 구경숙의 [흔적]시리즈와 피부의 소름까지 석고로 떠낸 김일용의 파편화된 몸은 외계와 구분된 자족적 소우주로서의 몸 경계를 의문시한다. 몸은 정확한 대상을 구별할 수 없는 오래된 풍경이나 또 다른 파편들로 보충, 재구성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 된다. 박소영은 출력된 필름 나뭇잎을 물건의 표면에 붙인다. 어딘가에 붙을 필요도 없이 껍데기들 끼리 뭉쳐서 또 다른 실체를 만들기도 한다. 가짜 이파리들은 무한의 편린이 되어 뒤덮은 대상을 수수께끼의 사물로 만든다. 박원주는 구겨진 종이를 주물이나 유리로 떠낸다. 반대로 전기의자 같은 단단한 대상을 종이로 만들기도 한다.




작가들은 대상의 알맹이를 빼고 표면의 굴곡에 집착한다. 그러나 알맹이 빠진 껍데기를 기만이라 할 수는 없다. 오늘날 알맹이라는 것이 더 공허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는 이상적인 예술작품은 모더니즘 시기에 짧은 성취를 이루었을 뿐이다.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현대조각사]에서 작품 내의 모든 관계들이 단일한 명료성의 순간 속에 농축되는 궁극적인 이해의 한 순간이 있는 예술작품과 그렇지 않은 사물을 대조시킨다. 예술 작품은 사물과 달리 핵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조각사는 초현실주의와 미니멀리즘을 거치면서 예술에서 사물로 기울어진다. 논리적인 인과관계나 고정된 구조적 핵심이 없이 속이 텅 비어 있는 낯선 실체들에서, 작품의 의미는 핵심이 아닌 표면에서 만들어진다. 불투명한 표면은 조각을 우리의 삶처럼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으로 던져 놓는다. 그러나 표면에의 천착은 불가지론에 탐닉하는 것이기 보다는, 손쉽게 가정된 이상적이고 이성적인 세계의 부재, 그리고 미리 세워진 질서의 거부라는 적극적 의미도 있다.

출전 | 퍼블릭 아트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