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형의 형상 위에 덧그려진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 깨진 접시 위에 흩뿌려진 물감의 흔적들, 그리고 화면 밖으로 돌출된 박제된 사슴뿔 등의 오브제, 이렇게 줄리안 슈나벨의 회화는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지만 낯설기는커녕 오히려 친근하다. 그의 회화는 부조화를 통한 조화 또는 불균형을 매개로 한 균형을 꾀한 바로크미술의 전통에 속해 있으며(이는 질서와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 르네상스 미술과 비교된다), 내적 파토스의 직접적인 표출을 겨냥한 주정주의에 바탕을 둔 표현주의 경향성을 띠며(이는 이성과 논리를 도구로 한 주지주의에 의해 견인되는 개념주의미술이나 미니멀리즘 경향성과 비교된다), 그리고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의 잡다한 공존에 주목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의식의 흐름기법’에 연루돼 있다.

흔히 뉴페인팅의 기수로 알려진 그의 회화적 전통은 특히 신표현주의의 일단의 경향성과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드나 프랑스의 자유구상 그리고 독일의 신표현주의 회화에서의 형상성의 복권과 자전적 요소의 강조, 역사와 신화와 정치에 대한 관심 등이 자유자재하게 화면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슈나벨의 회화는 이러한 경향성을 더 밀고 나아가 더 파격적이고 공격적이다. 특히 소위 순수미술을 강박적으로 지향했던 모더니즘에 의해 억압된 재현과 서사, 의미와 내용, 그리고 형상성을 되불러온다.




그의 회화는 적어도 외관상으론 이 모든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떠한 내적 필연성이나 개연성 없이 깔때기 속으로 합류된 듯하다. 흡사 프로이드의 ‘억압된 것들의 귀환’현상을 회화적으로 실현해놓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아서 단토에 의해 정식화된 ‘예술의 종말’이나 ‘회화의 죽음’ 선언에 대한 심각한 자기반성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서, 모더니즘의 서사의 종말에서 비롯된 반성은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결정적인 형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태도로써 나타나며, 형식이란 주어진 것이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내고 찾아내는 것이라는 회화적 모럴을 재확인시켜준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형식을 강조하고 변주하기보다는 그 틀을 깨는 과정 자체가 그대로 형식이 되고, 이는 후기 근대적 자의식에 의해 뒷받침된다.

아시아 순회전 형식으로 열린 이 전시에는 줄리안 슈나벨의 대표작 20여점이 전시돼 있다. 대략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랄 수 있는 접시회화 연작, 주변사람들을 소재로 그린 초상화 연작, 블랙페인팅 연작, 그리고 문자와 이미지가 중첩된 자전적 성향이 강한 일련의 서사적 회화들이다.

접시회화는 조개껍질이나 깨진 유리 그리고 타일 조각을 중첩시켜 마무리한 안토니 가우디의 조각적 건축양식에서 그 착상을 얻은 것으로서, 차이점이 있다면 가우디의 양식이 초현실주의의 경향성을 띤다면, 슈나벨의 접시는 표현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접시를 깨트리는 행위는 그대로 내면적인 파토스의 직접적인 표출로서 표현주의의 행위와 연관되며, 화면에 어지럽게 붙어있는 파편화된 접시 조각은 추상표현주의의 스트로크(행위가 실린 붓질)를 연상케 한다. 접시 외에도 가죽이나 벨벳 조각 그리고 타르를 칠한 천 등의 이질적인 재료들을 캔버스 대신 차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일종의 즉물적인 회화 혹은 물질적인 회화를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블랙페인팅 연작은 그 자체로는 비가시적인 무의식적 성질에다 물질적 형식을 부여한 것이다. 이로부터 고독이나 불안 등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조건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미지와 문자가 자유롭게 조응하고 결합한 화면에서는 문자가 조형적인 요소로도 그리고 의미론적인 요소로도 기능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미지로서의 서사와 문자로서의 서사가 서로 보완, 보충하고 있는 것이다.
슈나벨은 동료화가의 전기를 다룬 영화 <바스키아>와 전신마비환자의 삶을 그린 영화 <잠수종과 나비>(작가는 이 영화로 2007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쿠바 출신의 동성애 작가 레이날도의 삶을 다룬 영화 <비포 나잇 폴스> 등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이 영화들 또한 그의 회화에 버금가는 강한 밀도감을 보여주고 있다. 문자와 이미지가 어우러져 상호 보충적이고 보완적인 서사를 만들 듯, 그에게 있어서 영화는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로써 슈나벨은 형식과 형식, 장르와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에 모든 이질적인 형식과 장르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양식과 그 경향성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