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이나 붓 같은 미술의 전형적인 도구 대신에 잡다하고도 흥미로운 사물들에 둘러싸여 사는 작가 권경환은 예술 및 창조에 대한 신화에 스며있는 과도한 자의식에 짓눌려 있는, 가령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의 ‘예술가적’ 타입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들을 선택하고 변형시키는 기이한 발명가 또는 고안자에 가깝다. 플라스틱 빗자루로 만든 화분이나 김일성 동상에 곰인형 머리를 얹어 놓는 식의 작업은 시각적, 또는 관념적 연상의 선을 따라가며 기존의 오브제를 다른 맥락에 놓는다. 그는 평소에 수집해 놓은 장난감으로부터 출발하곤 하는데, 작업을 통해 원래 물건의 기능은 상실되고 무언가 부족하거나 과장된 형태가 된다. 오토바이 주자들의 자세를 취한 거대한 작품 [울트라, 슈퍼, 그레이트]의 어정쩡한 모습은 어떤 기능과 목적을 가지는 장난감에서 무엇인가 누락된 불완전한 파편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한 것이다. 부조리한 모습 같지만, 자연스럽고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는 현실적 질서의 기원에 존재하는 우연성을 포착하고 있다.

수집된 사물들이 가지는 불완전성은 시간의 흐름과 작업을 통해서 더욱 증폭된다. 특정한 기능이 없는 기계, 기능을 상실한 육체의 이미지가 권경환의 작품에 자주 나타난다. 미사일을 맞고 죽은 시체의 일부가 쿵쿵거리며 벽을 치고 돌아다니는 절단된 신체의 이미지나, 곧 헐릴 장소에서 덜덜거리며 바닥을 치는 기계 등이 그것이다. 파편화된 신체-기계가 양산되는 사건이 바로 전쟁이다. 그의 작품에서 전쟁은 비극적이고 심각하기 보다는 아이러니하다. 그의 말대로 ‘장난감 다루듯이’ 전쟁을 이야기 한다. 인터넷 등에서 수집한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 [무제]는 무시무시한 폭탄에 귀여운 캐릭터의 얼굴을 달아준다. 수많은 사람을 단번에 먼지로 날려버릴 수 있는 현대 전쟁은 그자체가 밑도 끝도 없는 숭고한sublime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이나 종교적 메시지 전달을 위해 숭고한 장면에 삽입되던 리본 위에 상황에 맞지 않은 문장을 새겨 넣어, 심각한 현실을 소격시킨다.

폭발과 화염이 명멸하는 컴컴한 우주 속에서 흩날리는 끈나풀은 어느 연결고리에서인가 풀려나와 누군가에게 고지되는 맹목적인 메시지이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사건들은 주사위 놀이처럼 벌어지고, 폭죽놀이 같은 폭발 장면이나 불발탄으로 설정된 녹슨 미키마우스의 밝게 미소 짓는 얼굴에는 던져진 주사위 같은 무심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그 앞에 놓여 질 인간 운명의 가혹함을 예시한다. 디즈니랜드 캐릭터와 대륙 간 미사일 모형의 조합은 오늘날 세계를 위협하는 강력한 제국인 미국식 자본주의를 떠오르게 하지만, 그의 작품이 명료한 정치적 메시지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웃기게 만든 방독면, 귀여운 군인, 총구 앞의 하트, 폭발 이미지를 입체로 만들어 머리에 쓰기도 하는 식의 작업은 매우 장난스럽다. 심각함과 장난스러움의 결합, 이것이 진정한 현실적 위험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예술적 성취도 만들어 낸다.





편집증 환자처럼 수많은 연필을 갈라서 그 심을 추려내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붙여서 만든 [글쓰기를 위한 총]은 실물 크기의 정교한 권총 모사물로 글쓰기와 전쟁의 이미지를 결합시킨다. 그것은 미술이나 문필활동을 포함한 모든 담론이 중성적이거나 고매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기 보다는, 권력에의 의지나 욕망에 의해 추동됨을 예시한다. 그는 장난감 같은 일상적인 사물과 글쓰기 같은 일상적인 담론에 스며 있는 전쟁과 죽음의 그림자를 포착한다. 거기에는 치명적이면서도 편안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가장(假裝)의 문화에 대한 불안감이 스며있다. 애매한 현실에 스민 불안감은 표현주의적인 열렬한 몸짓이나 꾸물꾸물 증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택된 사물에 아이디어를 결합시키는 다소간 건조한 스타일로 나타난다. 권경환은 감정이 많이 실린 작품 보다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선을 그어 놓는 편이다. 의미가 형성되는 단초 또는 단서를 작품 바깥에 놓는 것이다. 최근 제작한 고가구 시리즈가 전형적이다. 흡사 진짜처럼 보이는 약장에는 무엇인가를 담아 놓을 수 없다. 그것은 노동력과 기술면에서 19세기 고가구 장인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지만, 재료나 도구가 전혀 다르다. 나무가 아니라 시트지를 활용하여 종이 질감을 위해 두들기고 복잡하게 덧칠하며, 때와 흠집을 낸다. 겉모습은 과거의 사물과 똑같지만 기능은 없다.

그것은 그럴듯한 속임수라기보다는,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완상의 대상으로만 남은 전통적 사물의 소비 방식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이다. 권경환이 사물에 가하는 변형은 일부러 기괴함을 연출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반대로 그의 변형은 현실의 진면목을 문득 다가오게 하는 힘이 있다. 촘촘한 필연성으로 직조된 대상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헐거워지고, 또 다른 시공간의 맥락에 놓여진다. 그는 이러한 사물의 존재 방식을 작업을 통해 가속화시키고 응축시킨다. 그리하여 엉뚱한 형태는 더욱 깊은 리얼리티를 획득하게 된다. 필연은 우연이 되고, 우연은 다시 필연이 되는 것이다. 작가에 의해 선택된 현실은 우연적이다. 우연은 불안감을 준다. 정신분석학에서 불안은 위험에 대한 반응이라고 정의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불안은 한편으로는 외상에 대한 예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완화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 외상의 반복이다. 불안은 공포와 달리 막연하고 대상이 없다는 특징을 가진다.

삶의 이면을 이루는 죽음이 언뜻 들추어지는 권경환의 작품 역시 기능을 상실한 사물이나 캐릭터,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이러한 불안감을 통해 유일성과 단일성을 확신하는 독단성의 틈은 벌어진다. 그의 작품은 결정적인 판별 기준이 끝없이 연기된다. 이러한 유예는 판단의 선택 기준이 논리가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이, 진실이 아니라 진실임직 함이 있을 뿐이다. 사물의 껍질을 정교하게 모사하는 행위는 그 내부를 텅 비워놓는 놓는다. 표면에의 과도한 몰두는 사물을 수수께끼로 만든다. 이 점에서 권경환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와 이어진다. 핼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에 나타난 정체성]에서 초현실주의 이미지가 갖는 모순적 성격은 유동적인 주체가 환상적인 장면을 반복해서 만든 결과로 생긴다고 말한다. 초현실주의 이미지는 시뮬라크르의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지시대상을 갖지 않는 재현,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복사물이라는 패러독스이다.

초현실주의의 파괴적인 양식 속에서 미메시스는 재현과는 다른 것, 즉 환상적인 것이 된다. 핼 포스터는 시뮬레이션과 환상이 둘 다 기원의 문제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시뮬라크르는 최소한 두 가지 다른 항, 시리즈 또는 사건들로 구성되는데,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원본이며 어느 것이 복제인지,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도 환상과 비슷하다. 오늘날은 매스미디어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시뮬라크르의 역할은 예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권경환의 작품은 대부분 현실에서 취해진 것이지만, 이미지의 이면에 무엇인가 사라져 있다. 사건들은 가상화 되고, 주체 또한 기꺼이 장애물 없는 가상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가상 속에서 주체는 사라지며 이것이 바로 불안을 자아낸다. 모든 것이 가상이 되면, 그것은 또한 새로운 현실이 된다. 작가는 이 가상-현실에 표류한다. 그는 특별히 초월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부재한 중심을 애써 가정하고 객관화와 합리화의 노력에 열중하는 대신에, 이미 존재하는 사물과 욕망의 그물망을 재맥락화 함으로서 현실의 이면을 보여주는 상이한 방식에 몰두한다.

출전 | 쌈지 스페이스 10기 작가 연구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