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갤러리2000에서의 첫 개인전 이래, 국내외에서 작업하고 발표해 온 김인태는 구성과 해체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켜 왔다. 구성과 해체가 자연적 대상에 집중된 2000년대 초반(4회 개인전, 사간 갤러리)을 지나, 2000년대 중반(6회 개인전, 웅 갤러리)에는 인공적 구조물로 확장되었고, 올해 여름 진화랑에서의 9회 개인전은 그 동안 발표된 작품의 새로운 버전과 조각 작품의 스케치이자 단독의 그림으로서도 손색없는 자유분방한 평면 작품들을 선보였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인공의 시기를 명백히 구별 지울 수는 없다. 양자는 언제나 상호 교차되어 왔기 때문이다. 김인태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공성, 그리고 인공 속에 존재하는 자연성에 주목한다. 자연은 단단한 실체와 본질 보다는 구조와 과정의 측면이 강조된다. 조립된 자연이란 주어져 있는 한정된 목표를 따르지만, 완벽히 통제되는 변화는 불가능하기 마련이며, 여기에서 다양성이 파생된다. 인공과 자연, 구성과 해체라는 여러 겹으로 설정된 좌표 속에서 돌연변이와 잡종, 괴물 등이 탄생한다.

올해 전시에서는 여러 가지 색으로 변주된 [사과 모자 상](2008)이 많았는데, 이전에 발표한 사과 모자상과 다른 점은, 단면을 스테인레스 스틸로 마감 한 점이다. 사과 안에 또 다른 사과라는 설정에 반사면까지 가세함으로서 복제라는 이미지가 강화된다. [붓다 부자 상](2007)은 사과 모자상과 같은 스타일로 안면의 반을 잘라내 작은 스케일의 반복된 형상을 안치한 것이고, [부자 상](2004)은 자소상의 안면을 잘라내 같은 형태를 소규모로 반복한 것이다. 모체와 분체는 프랙탈 형태처럼 자체 유사성(self-similarity)을 가진다. 잘 디자인 된 형태의 안정된 조각상과는 달리, 조각 작품 전 후에 그려졌을 법한 드로잉들은 거칠고 속도감 있는 붓 터치가 특징이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붓질로 채색된 [메두사의 사과](2007)나 계단 뒤에서 혀가 튕겨 나오는 [앨리스의 사과](2007) 등이 그것이다. 보다 추상적인 것은 복잡한 선들이 유기체의 일부처럼 엉켜있는 [식물적 구조](2008)와 신체의 기관들이 잘려 조합된 모습으로, 90년대 제작된 설치 작품들의 회화 판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인 [내속](2008)은 거대한 배추 상으로, 그 원형은 2000년대 초반 발표한 [수퍼 배추]에 있다. 이전에 비해 배추의 자연적 색이 사라지고, 반 포기가 아닌 마주 본 쌍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나머지 반쪽 표면에 반사상이 만들어 진다. 2001년의 [수퍼 배추]는 재현에 충실하면서도 식물의 동물적인 면모가 예시되었다면, 지금의 배추는 광물질적인 반사면이 두드러진다. 어떤 것이든 간에 단일한 종의 이미지가 아니라, 변형 특히 복제라는 측면이 강화된다. 거대한 배추를 처음 선보인 [생장하는 탈주선](2001) 전은 식물과 동물성, 자연과 인공성 등의 경계가 모호한 괴물들의 생태계를 연출했다. 자연적인 것은 해체되고 그것의 파편적인 재구성을 통해 수퍼 배추, 수퍼 마늘 등이 만들어졌다. 표면에 식물이 이면에는 혈관이 붙은 대지가 움직이는 형상을 한 [대지의 반란](2000)이나 잔디에 붙은 다리, 그리고 기계가 내장된 투명 반구의 결합체인 [자라나는 대지](2001) 같은 작품은 광물성, 식물성, 동물성이 결합된 복합적인 존재이다.






김인태의 작품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은 구별되어야할 경계가 사라져 종이 오염되고 금기가 위반되는 것이다. 하나의 형상에 다양한 힘들이 대결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합된 그 작품은 그로테스크하다. 기이한 변종들은 무질서와 병적인 측면을 가지면서도, 그 이면에는 경이로운 생명력의 팽창이나 복잡성이 예시된다. 그것은 생명의 또 다른 규범을 내포하며 새로운 종의 기원이 될 수도 있다. 괴물은 낭만주의 이래, 거대한 환상의 저장소에서 서식해 왔다. ‘예외를 지배하는 법칙의 학문인 파타피직스(Pataphysics)’라는 말은 만든 알프레드 자리는 괴물을 ‘서로 조화되지 않는 요소들의 혼합체이기 보다는, 모든 독창적이고 소진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라고 정의 한 바 있다. 김인태의 작품에서 종간(種間) 잡종은 유기체와 기계의 접합으로도 나타난다. 신체 기관은 기계와 연결되곤 하는데 깔대기 모양의 기계 구조물로 만든 [요로](1997년)나, 기계와 귀가 연결된 설치작품 [듣기](1998)가 그 예이고, 이번 전시에서는 유기체와 기계의 혼입 양상을 격렬한 선으로 표현한 [항문 기계](2008)가 그것이다.

김인태의 작품은 유전공학 및 사이버네틱스에 의해 자연에 대한 개조가 전면적이고 근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걸 맞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자연을 변형시키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고 모방한다. 자연 법칙의 탐구 및 모방은 변형을 위한 기본 단계이다. 작가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배추나 사과 같이 흔한 대상을 쪼개고 확대시키고 표현의 강약을 부여하는 가운데, 자연과 인공이 교차하는 지점들을 극대화 시킨다. 자연 모방은 표피적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에너지 축적과 분배의 패턴이 유사함으로서 생기는 동형적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의 주요 소재이기도 한 사과의 경우, 2000년대 초반의 작품 [붉은 사과](2001)에서는 그 단면에 동물의 혈관계가 새겨 있었지만, 이후에 모자 상으로 변화한다. 조각 사상 가장 성스러운 소재 중의 하나인 모자 상을 무성생식이나 복제같은 불경스러운 이미지로 번역한다. ‘21세기의 창세기’라고도 불리는 생명공학의 시대에 자연을 조작하는 전능한 도구에 대한 비유가 이번 전시에 나온 [마그리트의 도끼](2008)이다.




나무를 찍고 있는 도끼는, 유기체를 절개해서 그 내부를 낱낱이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고자하는 욕망으로 불타오른다. 파괴보다는 연금술적인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는 도끼는 변모(metamorphosis)시키는 힘을 상징한다. 절단은 혼돈에 맞서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유가 된다. 그러나 기존의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변형이나 변신은 무정부주의적인 양상을 보인다. 바슐라르는 예술가의 역동적 상상력은 변신이라는 광란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존재를 변형시키고 변신을 결정하는 것을 바로 과도한 삶의 의지인 것이다. 변신은 또한 정해진 원형으로부터의 탈주를 말한다. 김인태의 작품에서 탈주라는 키워드는 전시부제나 작품제목으로 빈번히 사용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정착된 종을 탈주시켜 새로운 종을 만든다. 여기서 새로운 종이란 뒤섞인 종이다. 뒤섞인 종은 단조로움과 무력한 존재 조건으로부터의 탈주를 보여준다. 작가는 동물과 식물, 산 것과 죽은 것, 현실과 허구의 뒤섞임, 이 극심한 모순 속에서 긴장감이 조성된다.

자연이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예술을 펼치듯이’(다윈), 예술가 또한 그러한 선택을 한다. 유전자라는 텍스트를 재편집함으로서 새로운 종을 생산하는 생명공학의 이미지와 더불어, 건축이나 도시 같은 인공적 구조물에 내재한 자연성을 탐구하는 것이 또 다른 축이다. 파이버 글라스나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최근작 [신생], [분기](2008) 시리즈는 움트고 자라나는 이미지로 충만한데, 그것들은 미지의 도시와 건축을 향한다. 반복된 구조를 쌓아 올려 만든 [catastrophy column](2006)은 [무한 주](2006-7)라는 제목으로 쇠, 스테인레스 스틸, 대리석 등으로도 만들어졌다. 일련의 모듈이 반복되면서 리드미컬한 구조를 이룬다. 작품 [도시 생장의 탈주선](2006)은 원통형 말단들이 전면으로 성장하며, [study on fractal table](2008)은 수평면으로 분열 증식한다. 수직, 수평을 넘어 전 방위로 분열 증식하는 미래 도시로 확장되기도 한다. [catastrophy city](2008)는 파괴와 생성의 중간적 단계들이다.

자연에서 추상된 형태는 구성으로, 구성은 건축이나 도시와 같은 생산물로, 생산물은 통제되지 않은 분열 생성의 양상을 보인다. 계몽이나 합리주의가 그러했듯이, 기능이나 형식은 늘 자기에게 할당된 몫을 초과하며 애초에 정해진 출발과 목표를 벗어나곤 한다. 그것은 생명의 발생과 진화 과정에 개입할 때 일어나는 사태와 유사하다. 스케치나 모형의 단계로 구현된 김인태의 미래도시는 모더니즘의 이상인 생산적 기계를 넘어선다. 유기체이든 무기물이든 실체보다는 관계가, 동일성보다는 차이가 두드러진다. 특히 스케치 작품에서는 차이를 가로지르는 연결망이 예측 불가능한 경로로 뻗어나가며, 애초의 계획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변화무쌍하다. 구성요소는 유기적이지만, 분절된 형태들의 결합은 최대한의 가변성과 상호교환의 가능성이 내재한다. 미래주의 풍의 인공도시 모형은 자연적 생장을 따른다.

여기에서 자연과 인공은 대조가 아니라, 공통된 논리적 과정을 통과한다. 그것은 자연적 실체 보다는 그것들이 생성, 발전, 소멸되는 운동성을 드러내는데 집중된다. 특히 파괴나 해체로부터 다시 생성되는 과정은 정지되어 있는 조각 작품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여기에서 스스로 운동하는 자연은 자기 지시적인 형식체계를 넘어서 어떤 방향으로든 끝없이 밀고나가는 뿌리줄기 같은 흐름이 있다. 현대 도시의 생태에 대한 유비를 보여주는 김인태의 작품은 구성됨과 동시에 해체된다. 정확한 절단면을 가진 구성단위들이 이합집산하며 만들어내는 도시 생태계는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 결합이나 균형 잡힌 전체를 벗어나서, 일정한 방향이 없는 자생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차이 짓기를 가속시킨다. 그의 작품은 자연이든 인공이든, 우연성과 이질성이 우글거리는 바깥으로 열린 구조와 체계로 이루어진다. 구조와 체계를 갖추면서도,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탈주를 감행한다.

출전 | 월간 미술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