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선 전 | 5.28--6.18 | 학고재
Abstract Imagination 전 | 6.26-- 7.31 | PKM Trinity Gallery



외국 출신 작가들이 참여한 Abstract Imagination 전과 최인선 전은 3차원적 환영과 자연적 외관을 벗어난 추상 언어의 세련됨을 구사하면서도, 그 언어의 기원이 되었던 리얼리티와의 연결을 지속적으로 환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추상 언어의 뿌리가 되는 현실과의 거리가 극대화되다 못해 단절되어가는 자율화로의 여정은 미술에 의해서만 성립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전진해왔다. 그러나 순수화된 형식 언어가 세계를 투명하게 드러낼 것이라는 모더니즘적인 신념은 나름의 성취가 있었지만, 미술을 점차 빈곤하게 만들었다. 현대의 의식을 빈틈없이 잠식하려는 언어의 그물망을 초과하거나, 그러한 언어적 질서 자체를 재편하는 근원적 힘으로서의 현실의 면모가 이 전시들의 추상적 작품에서 드러난다. Abstract Imagination의 여섯 작가와 최인선의 작품에서 추상 언어가 현실과 어떤 역학 관계를 가지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그들의 작품이 선사하는 풍부한 감각의 향연에 심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Abstract Imagination 전의 재미 작가 바이런 킴의 작품 [Koryo Green Glaze]은 붓질자국 하나 없는 모노크롬 회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청자의 색을 재현한 것이고, 작품 제목은 그 미묘한 색의 기원을 다시금 확증한다. 영원히 친숙해 질 수 없을 것 같은 텅 빈 캔버스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친근한 사물의 색이 뒤덮여 있는 것이다. 바이런 킴이 다문화 사회의 한 복판에서 다양한 피부색을 격자무늬로 배열하여 무색무취의 추상 언어에 인종적 이슈를 끌어들였던 작가임을 염두에 둔다면, 추상의 언어는 사회적, 문화적 현실을 색다른 관점에서 읽게 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 [Sunday painting]은 여러 개의 작은 패널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분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로 변모하는 하늘 한 조각을 잘라 배열한 것 같은 그림들이다. 그 위에 써놓은 문장들은 자기 주변에서 겪은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 대한 것인데, 이는 주류 추상미술이 익명성에 가까운 보편 언어를 지향해 왔다는 사실과 모순된다.

존 밸드서리는 색이 칠해진 다섯 개의 기하학적 형태를 보여준다. 입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평면적 형태가 섞여있으며, 프린트 한 후 색을 칠했다. 그의 작품은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 모호하다. 3차원과 2차원, 그리고 사진과 그림이 이음매도 없이 융합되어 있다. 형식주의화 된 모더니즘의 신조인, 각 매체가 지녀야할 순수함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은 초기 추상 미술의 문법을 확립한 [검은 사각형]을 떠오르게 하는 추상적 이미지와 전기 코드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병치시킨다. 이렇게 차원이 다른 이질적 세계를 공존시키는 것은 균질화 된 중립적 언어를 신봉하는 형식주의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요나스 달버그의 작품은 자연광이 잔잔하게 들어오는 평범한 침실이나 거실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모형을 찍은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은 하나의 환영이라는 것과, 이 환영이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장치와 분리될 수 없이 얽혀있음을 예시한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Colour Space Embracer]는 어두컴컴한 방 전체를 무대로 하는 광학적 설치이다. 세 겹으로 엇 겹쳐진 반투명 원이 천정에 메달려 순차적으로 돌아가고, 기계에서 투사되는 빛을 사방으로 반사한다. 여러 색과 크기, 그리고 자전 주기의 차이를 가지는 원들과 빛의 만남은 공간 전체를 환상의 무대로 연출한다. 그의 작품은 변덕스런 상상력에서 문득 튀어나온 장식 같지만, 작품의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완전한 조정과 예측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기술과 만난다. 엘리아슨의 작품은 수학적 계산과 분석에 의해 드러난 소립자나 대우주의 구조에 내재된 심미적 측면과 교차되는 부분이 있다. 그의 정교한 광학적 장치는 심미성과 현실성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가브리엘 오로즈코와 존 웨슬리는 운동선수나 무용가 등에서 발견될 수 있는 패턴화 된 움직임을 추상적 구성으로 표현했다. 오로즈코의 수직 수평 구도에 실린 금색. 붉은색, 푸른색의 반구들은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율동감이 있으며, 존 웨슬리는 같은 동작을 취한 소녀들을 통해, 반복이라는 현대적 리듬에 실린 추상화된 인간성을 표현한다.





학고재 본관과 별관을 가득 메운 최인선의 작품은 그 규모도 놀랍지만, 팔렛트의 모든 색을 방류시킨 듯한 화려한 색조의 향연이 장관이다. 색채를 한정 짓는 것은 하나의 소우주이자 대우주의 부속품인 패널의 틀 뿐이다. 패널들의 종합이 아닐 경우에는, 그리드처럼 구획된 면들이 색채를 한정 짓는다. 일정한 틀로의 한정은 내재적 자족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결을 위한 것이다. 섬세한 표면의 물성에 주력해왔던 그의 작품에서 한동안 억압된 것이 분출이라도 하듯, 화려한 색조가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세상을 다양한 모자이크로 간주했던 세오 갤러리에서의 개인전(2005년)에서였다. 각각의 모자이크는 ‘지각의 창’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창구멍이 되어 주었다. ‘원초적 질료’로 환원된 회화의 본질, 그리고 개인의 감각성이 극대화된 표면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섬세함이 이전 작품의 주요 특징이었다면, 2000년대 중반부터 적극 도입되는, 화려한 색과 결합된 기하학적 요소는 단절이라 할 만큼 이질적이다.

최인선의 새 작품에서 부각되는 기하학적 요소란, 자로 대고 그어진 코드화된 추상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창에 해당된다. 그의 ‘창’은 재현적인 틀이 아니라, 2000년대 중반 그의 한 작품제목처럼 ‘지각의 창’이다. 3차원 세계를 고정 짓는 재현적 틀로서의 창은 유일한 객관적 질서를 표방하는 과학의 아류에 불과하다. 석고를 입힌 금속판의 추레한 절개 면이 드러나는 작품 [사고 조각]은 관념으로 환원된 세계의 실체를 보여준다. 반면, 사고와 완전히 동일화될 수 없는 다채로운 공간이 수없이 덧칠한 색채의 층위 속에서 분출된다. 관념주의는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대상을 저 멀리 상공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세계로 향해 열린 ‘지각의 창’은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에게서 다시금 시작하는 세계와의 뒤섞임, 그리고 세계와 나 사이를 흐르는 지각적 삶과 이야기’(메를로 퐁티)를 보여준다. 세계와의 뒤섞임은 나, 또는 객관적 진리에게만 속하던 독단을 지양하고 세계와 교감하려는 것이다.

최인선의 작품에서 수많은 창처럼, 또는 세포나 구조적 단위처럼 보이는 요소들은 끊어지지 않는 연결망을 이룬다. 그것은 나와 타자의 지각, 그리고 나의 몸과 사물의 뒤엉킴을 그린다. 그의 최근작에서 수직선과 대조 항을 이루는 수평선이 강조되는 것은 구체적 세계와의 접속 지점을 확대하고자 함이다. 작품 [먹는 언어와 지각의 창]에서 죽죽 그어진 약간 기울어진 수평선들은 화면 위에서 무한히 늘려지고 증식되어, 몇 개 층을 관통하는 건축적 스케일을 갖추기도 한다. 그것은 한 눈에 보여 지고 포착되기 보다는 [수직, 수평 위에 걷기]처럼, 거닐 수 있을 만큼 확장된다. 세계의 지평을 확대하는 의미의 수평적 요소는 단지 수직과 대조되는 또 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지각하는 몸 전체와 관련된다. 작품 [수직은 수평으로 그 존재감을 성취한다]는 수많은 수평면들의 집적이 몇 미터 높이의 수직을 만든다. 최인선의 작품에서 수직은 수평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역으로 수평은 규칙적인 구조적 단위를 이루면서 수직을 축조해 나간다.

구조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색채와 형태를 발생시키는 장치가 된다. 그는 작가 노트에서 수평을 ‘자연, 인간, 가시적 세계’로, 수직은 ‘신, 영원, 불변, 비가시적 세계’로 상정하며, 그 교차점에서 양자의 일체화를 경험한다고 밝힌다. 현상적 세계의 풍부함을 긍정하면서 동시에 성스러운 질서를 요청하는 것이다. 조형을 통해 보편적 질서를 구가하려한 몬드리안의 수직/수평에 대한 집념이나, 숭고를 향한 열망을 표현한 뉴만의 수직성을 떠오르게 하지만, 최인선의 최근 작품은 모더니즘적 추상의 엄격성이나 금욕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그는 미학적, 또는 유사(類似) 신학적인 초월성 보다는 현실 세계의 다채로움을 긍정한다. 그의 작품에서 구상적 요소는 수평이라는 상징적 구조 뿐 아니라, 거장의 회화에서 발췌한 모티프나 잡지 사진 등을 프린트하여 가필한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기표화 된 현실의 조합, 색채로 채워진 그리드에서 구조화 되는 또 다른 실재들은, 구별되는 여러 차원을 공존, 소통시키려 한다. 소통은 미끄러지듯 경쾌하게 이루어지고, 수많은 색깔이 내는 다양한 소리와 그 메아리들로 채워진다.

출전 | 아트 인 컬처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