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엉덩이와 결합된 높은 구두 굽은 섹시함을 드높인다. 인체의 일부인 발은 주물이 되는데, 하이힐은 성기의 모양을 강조 한다. 가변적으로 설치되는 이 작품은 또한 상품 진열의 형식을 갖춘다. 작가는 은밀한 성적 환상을 상품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일상적 현실로 불러온다. 그녀의 작품에서 물신은 성과 상품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다. 장 보드리야르는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대상의 초자연적인 속성에 결부되는 물신이라는 용어는, 본래 정 반대의 것, 곧 제작물, 인공적 구조, 가공된 겉치레와 기호들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페티시즘이란 말은 15-16세기에 포르투갈 사람이 서아프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돌이나 나무 등 특정 대상물에 대해 예배하는 것을 보고 만들었다. 포르투갈어 ‘feitico’에서 유래한 물신(fetish)이란 용어는 ‘인공적인’이란 뜻을 공유하며, 최초의 의미는 ‘-인 체하다’, ‘기호들로 모방하다’, ‘독실한 신자인 체 하다’이다.
자연의 진실과 거리가 있는 인위적 속임수라는 어원적 의미는 물신이 우선 기호들, 자의적인 약호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의해 개념화된 물신주의 역시 지시 관계의 문제, 문화 내 지시성의 상실 현상, 즉 유동적인 기표에 대한 개념을 예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라 멀비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함께 등장하는 물신주의에 주목한다. 프로이트에게 물신주의의 원천은 어머니의 육체이다. 한편 마르크스에게 물신주의의 원천은 가치로서의 노동력을 삭제하는 것이다. 물신주의는 어머니의 육체에 대한 억압과 가치의 원천으로서의 노동력에 대한 억압이라는 두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마르크스적인 물신주의 개념은 가치의 기호가 상품에 각인되는데 실패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 물신주의가 판을 치는 것은 가치를 기호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반면 프로이트적인 물신은 환상적인 과잉 각인에서 구성된다.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느낀 것에 대한 대체물, 무언가 빠져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 숭배자들에게만 가치를 부여하는 기호를 설정하는 것이다. 물신주의는 현대미술과 원시주의의 만남부터 ‘의미의 불안정성과 지시(reference)의 무한한 지연 속에서 쾌락을 찾는 미학’(로라 멀비)인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관통하는 문화적 키워드가 된다. 김민형의 작품에서 다양한 하이힐들은 번지르르한 표층으로 파편화되고 재구성되는 물신적 이미지와 관련된다. 몸은 통일성을 상실하고 단편들로 해체되며, 그 자체로 자족적인 활기를 띄고 꿈틀거린다. 전체에서 잘려진 부분을 숭배하는 것이 바로 물신적인 도착이다. 작품 [진화를 꿈꿔버린 다리]는 높은 구두에 적응하다 못해 그자체가 높은 구두가 되어버린 다리의 모습을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발은 구두의 좁은 틀에 맞춰 형태가 변해있고 짐승의 발톱을 가지고 있다.

쇠사슬에 매달린 몸은 고통과 쾌락이 결합된 감정과 잔인한 진화의 메카니즘을 폭로한다. 작품 [하이힐을 질투한 코르셋]은 하이힐에 맞춘 까치발 형태를 조이는 코르셋 가죽 끈이 묶여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위해 자르고 조이고 주입하는 성형 강박을, 그리고 작품 [킬힐Kill heel-목발과 신발]은 하이힐이 야기하는 신체의 불구화와 치유를 나타낸다. 김민형의 뾰족한 구두는 쾌락과 아름다움을 위한 고통과 인내를 표현하며, 이는 매저키즘적인 성욕과 관련된다. 들뢰즈는 매저키즘을 연구한 논문 [냉정함과 잔인성]에서 물신은 환상의 대상이고, 또한 환상 속의 사물이라고 해석한다. 물신으로 선택되는 대상은 어린이가 여성의 신체에 페니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로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대상이다. 예를 들어 발에서 시작하여 위쪽으로 시선을 향할 때 보았던 신발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직 믿음의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는 마지막 지점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물신숭배는 부인(否認)이다.
그것은 환상 속에 정지되어 있는 이상을 계속 안전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세계를 부인하고 정지시킨다. 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날개옷을 입고 꿈의 세계로 도피하는 것 뿐’(마조흐)이다. 매저키즘에서 물신의 형성은 환상의 내적인 힘, 그 끈질긴 기다림과 정지된 부동의 힘, 이상과 현실이 함께 흡수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김민형의 작품에서 인간의 신체는 예술작품으로 변화하지만, 그것은 잔인함 아래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브론즈로 만들어진 [샴쌍둥이]는 한 켤레의 신발에 굽이 하나만 있는 형태를 가진다. 분열 또는 접합의 이미지는 정상적인 생식에서 비켜나는 기형적 성을 예시한다. 작품 [인조 뱀무늬 가죽 하이힐]은 샴쌍둥이와 마찬가지로 하이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구두의 소재로 잘 사용되는 뱀가죽을 입히고 날름거리는 혀를 첨가하여 치명적인 유혹자로서의 여성적 섹슈얼리티를 표현한다.
김민형의 작품에서 구두와 여성 성기가 중첩되는 물신적 구조는 작품 [Inside Story I-Volcano]와 [Inside Story II-Walk inside!]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전자는 버려진 액자에 작가의 하이힐을 넣은 것이고, 후자는 하이힐 내부의 외형을 통해 감추어진 발과 여성의 질을 교차시킨다. 물신숭배자는 신발같은 비 생식적 기관을 에로틱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그것들에게 성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여성의 성기 형태는 거세공포를 야기하며, 물신은 거세 콤플렉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 의하면, 물신 숭배자는 어머니가 거세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부정한다. 물신은 여성의 거세에 대한 공포에 찬 인식과 그것에 대한 격렬한 거부 내지 부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기이한 타협이다. 나오미 쇼어가 지적하듯이, 물신은 여성의 생식기에 대해 은유가 아닌 환유로 연결된다. 그것은 육체의 일부 또는 여성의 생식기와 인접한 무생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물은 결코 본래의 것과 동일하지 않다. 그리고 본래의 것은 허구이다. 물신적 대상은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호이다. 그 대체물은 표면과 그 표면이 숨기고 있는 어떤 것 사이에 환영적인 공간을 구성한다. 환상이 조직되는 지배적인 중심은 성기이지만, 그 중심은 텅 비어 있기에 욕망의 방향은 종잡을 수 없으며 충족되지도 않는다. 작품 [1000개의 수세미로 만들어진 크나큰 하이힐]은 이러한 욕망이 기념비화 된 형태를 갖춘 것이다. 복잡하게 꼬인 쇠수세미 조직으로 되어 있으며, LED조명과 음향장치가 곁들여진 이 작품은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가시화한다. 억압의 결과 상실된 대상을 반복적으로 대체하는 사물들은 결코 완전한 만족을 제공하지 못한다. 김민형의 작품에서 물신을 통해 표현된 욕망은 상품이 지배하는 현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쇼핑과 구속]은 새 둥지와 새 다리로 된 굽이 결합된 하이힐이 쇼핑카트와 함께 설치된 작품인데, 새 다리를 꿈꾸는 여자의 욕망이 파국적인 소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쇼핑 카트의 쇠틀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끝없이 소비해야하는 질곡을 철장을 연상시키는 사물을 통해 표현한다. 작품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드로잉] 같은 크기의 철판에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하여 하이힐을 둘러싼 소비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55개의 작은 판들에 형상화된 것들은 유기적인 총체성을 이루지 않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관객의 상상에 따라 우회적으로 연결될 뿐이다. 그것은 어떠한 내용이든 동일한 형식에 담아 코드화시키는 상품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녀의 작품이 사회적인 의미로 확장되는 것은 물신과 상품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방식에 의해서이다. 원래 페티시즘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원시종교에 대한 연구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 때 물신의 의미는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무생물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마르크스는 이 용어를 빌어 와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하였다. 즉 그는 ‘상품 물신주의’라는 말로 사물들 사이에 맺어지는 착각의 방식을 기술하였다.
물신숭배는 주술적 사유를, 상품은 자본에 대한 구조분석을 지시하는 차이가 있지만, 양자의 경계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교환가치를 위해 사용가치가 추상화된다. 추상화는 신비화를 부른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상품은 자명하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수수께끼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실제의 노동과정을 기호들에 의한 추상과정으로 대체하는 과정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오려내기, 기호들로 표시하기에는 언제나 기호학들에 의한 합산과 기호체계들의 형식적인 자율성이 겹친다. 그것은 기표에 대한 물신 숭배, 곧 대상에서 인위적이고 변별적이며 약호화 되고 체계화된 것에 주체가 사로잡히는 사태를 야기한다. 육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체는 끊임없는 배려와 집착의 대상이 된다. 멋 부리기는 육체를 인공적인 구조로 잘라내고 약호화하며 물신으로 대체한다. 김민형의 작품 속 화려하고 기묘한 하이힐들은 몸과 사물에 각인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들을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