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자아가 투사된 벌은 꽃의 수분에 꼭 필요한 존재로, 지상적 생명의 근원인 식물 번성의 주요 매개자 중의 하나이다. 세필로 꿀벌의 자세한 형태를 재현하지만, 색은 약간의 변화를 준다. 반투명한 꿀벌의 날개에 꽃 색이 반영된 결과이다. 꿀벌은 대개 꿀을 채취하는 과정 중에 꽃가루를 옮기는 모습이다. 벌의 부지런함과 이를 통해 생산되는 노동의 정수로서의 꿀은 인생에 대한 귀감이 된다. 벌과 함께 등장하는 꽃이라는 소재 또한 단순한 생태학적 사실이나 아름다움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작가는 꽃이 가지는 생태적 특성과 꽃말을 동시에 참조한다. 상징적인 의미는 작품 제목 등에 사용되어 관객에게 다시금 상기된다. 박선녀의 그림에서 재현은 망막의 자극에서 유래되는 가시적 세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의미와 상징을 기반으로 한다. 줄리언 벨은 [회화론]에서 상징적인 재현은 어떤 것이 다른 것을 대신한다는 합의에 의해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본래 그리스어 ‘심볼라symbola’는 맹세의 표시로 사용된 반으로 나눠진 표식을 서로 맞춰보는 것을 의미했다. 상징은 확장되어 본래의 것의 특정 부분을 닮은 것이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이것이 제유이다. 한편 은유는 하나의 완전한 양을 다른 완전한 양에 대신하는 것이다. 제유가 회화적 재현이라면, 은유는 언어적 재현에 가깝다. 상징은 그것이 이해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친숙함이 공유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사성, 즉 재현적 이미지가 있는 박선녀의 회화는 은유적 상징에만 호소하는 추상미술과 달리, 관객에게 소통의 매개 고리를 제시한다. 벌과 꽃은 작가의 느낌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상징이다. 몇몇 애호되는 꽃이 아니라, 작품마다 꽃이 다 틀린데, 그것은 인생 자체가 꽃말처럼 ‘두루두루, 이것저것 걸쳐 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꽃말 앞에 붙은 ‘삶’이라는 또 다른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꽃의 신비로운 중심 속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꿀벌은 꽃의 짧게 지속되는 아름다움을 영속적인 것으로 만든다. 꽃 자체가 아픔 속에서 피어난 영혼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말해진다. 박선녀는 작가 노트에 ‘내 그림 속의 주인공 꿀벌은 내 자신이 되어 화려한 꽃 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다. 꿀벌과 꽃 시리즈는 2007년 6월부터 시작된 것이다. 2008년 중국에서의 전시된 것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 [삶-안식]은 꽃이 하나의 형태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마치 울려 퍼지는 소리나 향기처럼 공간을 향해 환하게 열려있고, 그 핵심부에 꿀벌이 작업하고 있다. 작품 [삶-오직 그대만을]은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꿀벌을 그린다. 여기에서 그대는 먼저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평생의 업으로 삼은 예술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다. 인생이 그렇듯이, 평화와 환희 보다는 번민과 아픔이 더 많으며, 꽃말에 내포된 의미에 감정을 이입한다.
작품 [삶-번뇌]는 안수리움이라는 꽃을 소재로 한 것으로, 푸른 잎 새를 배경으로 하트 모앙으로 아래가 터진 붉은 꽃을 보여준다. 작품 [삶-날지 못하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는 작가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꿀벌이 본래는 몸통이 커서 날지 못하는데,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착각을 통해 열심히 날갯짓함으로서 실제로 날게 되었다는 장영희의 글에서 영감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 꽃은 여럿이 무리지어 있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행성같은 모습이다. 작품 [삶-인정받고 싶어요]는 타래붓꽃의 형태와 꽃말에서 연유한 것으로, 예술을 업으로 살아가는 이의 자의식이 배어있다. 작품 [삶-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에서 꽃은 화면 가운데를 향하며,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서있는 벌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작품 [삶-이별]은 꿀벌이 거꾸로 선 모습으로 꽃술을 부여잡고 있는데, 분출하는 듯한 꽃잎들이 이별의 순간에 뻗쳐 나오는 강한 파토스를 표현하는 듯하다.
작품 [삶-홀로서기]는 작업 도중 화면 밖의 관객을 향해 야무지게 얼굴을 보이고 있는 벌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 자체가 작가의 모습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박선녀의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재현된 상징만을 읽는 것은 부분적인 독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촉감이다. 두툼하고 오돌도돌한 느낌을 주는 화면은 작품 크기를 지금보다 키웠을 때 상당히 추상적인 효과를 줄 것이다.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터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작품 크기에 한계가 있었으나, 앞으로는 100호 이상으로 작업하고 싶다고 말한다. 박선녀는 공사할 때 사용되는 내장재의 하나인 핸디코트를 캔버스 위에 사용한다. 핸디 코트를 바르고 설거지 할 때 쓰는 쇠 수세미로 눌러준다. 쇠 수세미로 물감을 찍어서 표면을 겹겹이 올려 나간다. 핸디코트와 쇠 수세미의 조합은 붓과는 다른 오묘한 질감을 낳는다. 물론 벌의 형태 등, 세부묘사를 할 때는 세필로 그린다.
이전의 추상작업에서는 표면 질감이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2000년에 갤러리 호에서 열린 첫 개인전의 [삶] 시리즈는 물감의 두터운 질감이 살아있는 추상회화로, 명암의 대비가 확연한 비정형적 형상을 보여준다. 추상적이든 구상적이든 작품의 질감은 박선녀의 작품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2006년 작품인 [아이들의 사연들]에는 신문지를 붙여서 크레파스로 드로잉 한 후 젯소로 마감한 독특한 질감을 가진다. 2000년대 초반에 몰두했던 추상미술에서 그 이후 아이들 같은 스타일의 그림, 그리고 요즘의 꽃과 벌을 그린 회화를 관통하는 것은 반들반들한 표면보다는 작가의 힘을 표현하는 깊은 마티에르이다. 박선녀의 작품에서 색채와 형태는 상반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고양 시킨다. 근대미술의 선지자가 언급했듯이 ‘색채가 풍부해질 때 그 형태 역시 충만해지는 것’(세잔)이다. 꽃과 벌의 재현은 광학적인 정확함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꽃은 어디선가 빛을 받기 보다는 그 내부로부터 빛을 발하는 듯하다. 꽃의 입체감과 재질감은 물리적 반사광 보다는, 회화적 리얼리티에 더욱 충실하다. 현대화가의 광학은 자연 뿐 아니라, 예술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는 세잔에 대한 화론에서 화가가 이 세계를 표현하고자 할 때에 색채 배열은 분리할 수 없는 전체를 자기 안에 담고 있어야 하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림은 단지 사물을 넌지시 가리킬 뿐이며, 실재하는 것의 절대적인 통일성, 현존, 더없는 충만성 속에 있는 사물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터치 그 하나하나가 공기, 빛, 대상, 구성, 성질, 윤곽 및 스타일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징성과 재질감을 동시에 내포하는 박선녀의 그림은 인생에 대한 상징이면서, 회화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형식적 문제에도 닿아있다.
출전 | 미술과 비평 가을호
이전의 추상작업에서는 표면 질감이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2000년에 갤러리 호에서 열린 첫 개인전의 [삶] 시리즈는 물감의 두터운 질감이 살아있는 추상회화로, 명암의 대비가 확연한 비정형적 형상을 보여준다. 추상적이든 구상적이든 작품의 질감은 박선녀의 작품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2006년 작품인 [아이들의 사연들]에는 신문지를 붙여서 크레파스로 드로잉 한 후 젯소로 마감한 독특한 질감을 가진다. 2000년대 초반에 몰두했던 추상미술에서 그 이후 아이들 같은 스타일의 그림, 그리고 요즘의 꽃과 벌을 그린 회화를 관통하는 것은 반들반들한 표면보다는 작가의 힘을 표현하는 깊은 마티에르이다. 박선녀의 작품에서 색채와 형태는 상반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고양 시킨다. 근대미술의 선지자가 언급했듯이 ‘색채가 풍부해질 때 그 형태 역시 충만해지는 것’(세잔)이다. 꽃과 벌의 재현은 광학적인 정확함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꽃은 어디선가 빛을 받기 보다는 그 내부로부터 빛을 발하는 듯하다. 꽃의 입체감과 재질감은 물리적 반사광 보다는, 회화적 리얼리티에 더욱 충실하다. 현대화가의 광학은 자연 뿐 아니라, 예술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는 세잔에 대한 화론에서 화가가 이 세계를 표현하고자 할 때에 색채 배열은 분리할 수 없는 전체를 자기 안에 담고 있어야 하며,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림은 단지 사물을 넌지시 가리킬 뿐이며, 실재하는 것의 절대적인 통일성, 현존, 더없는 충만성 속에 있는 사물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터치 그 하나하나가 공기, 빛, 대상, 구성, 성질, 윤곽 및 스타일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징성과 재질감을 동시에 내포하는 박선녀의 그림은 인생에 대한 상징이면서, 회화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형식적 문제에도 닿아있다.
출전 | 미술과 비평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