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내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현실의 내가 나인가. 동양에서 이 문제를 다룬 사람은 장자였다. 호접몽(胡蝶夢)이 그것이다. 장자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나비가 돼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꿈에서 깨어난 장자는 꿈속에서 날아다니던 나비가 본래의 자신인지 현재의 내가 진짜 자신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비몽사몽의 세계, 그 불가사의한 경계에 대해 많은 예술가들이 주옥같은 예술작품을 낳았다.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이 어느 날 한 마리의 벌레로 변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꿈 과 현실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면서 양쪽을 오가는 것이 바로 문범강이 그리는 세계다. 그의 그림들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비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물방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얼굴이기도 한 묵직해 보이는 살덩어리, 그것은 푸른 액체가 담긴 놋쇠 사발과 포물선을 그은 빨간 색 선으로 연결돼 있다. 그 얼굴에서 입술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혀는 문범강이 즐겨 다루는 소재다.
우 리는 문범강의 그림을 통해 자주 이 혀를 만난다. 그는 왜 유독 인간의 혀에 집착하는가. 이 문제를 풀기 전에 우선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혀의 양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범강의 그림에 등장하는 혀는 비단 인간의 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개의 혀, 토끼의 혀, 심지어는 물고기의 혀도 등장한다. 한 그림에는 사람의 머릿속 가득 똬리를 튼 뱀이 그려져 있는데, 정작 붉고 긴 뱀의 혀는 사람의 입 밖으로 길게 나와 있다.
뱀의 혀가 사람의 입을 통해 나와 있는 이 기묘한 풍경! 입 밖으로 빠져나온 붉고 긴 뱀의 혀는 날름거리며 마치 더듬이처럼 이제 막 세상을 탐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뱀과 함께 주홍색 선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다. 그림의 여백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다.
“주홍의 울렁임이 들어와 외장(外場)을 일깨운다. 그러면 ‘external field(외장)’는 바삐 움직인다.”
인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주홍빛 ‘울렁임’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가 쓴 글의 전후 맥락으로 보면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인 것 같다. 그 에너지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니 외장이 영향을 받아 바삐 움직이는 것이다. 그는 “주홍은 빛이어라. 에너지여라. 주홍의 아들이 빛이고 빛은 에너지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그는 또 “현빈(玄牝)의 장은 에너지의 물물교환 시장”이라고 썼다.

알 다시피 ‘현빈’은 노자의 도덕경 여섯 째 장에 나오는 중요한 개념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빈이라 한다”고 말했다. 곡신은 신령한 것, 곧 텅 비어 아무런 형태도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이른바 ‘도(道)’의 다른 이름이다. 이 현빈으로 가는 문(玄牝之門)이 바로 천지의 근간인 것이다. 그는 천지의 근간이 곧 물물시장이라고 말한다. 물물시장은 물건의 교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곳이니, 그렇다면 필경 만물의 에너지가 교환되고 발산되는 곳이 바로 이곳일 터이다.
문 범강의 몸은 에너지 혹은 기의 덩어리로서의 몸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힘찬 기와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논리적으로 말 되어질 수 없는 사태는 지각이 가능한 현실을 넘어서 있다. 상자를 핥는 사람의 붉은 혀, 개의 혀와 인간의 혀의 부단한 접촉, 단칼에 잘라진 물고기의 몸통과 삐죽 튀어나온 혀, 도대체 이 부조리한 상황은 뭐란 말인가.
한 큐레이터와의 대담에서 문범강은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벌거벗은 여자의 머리를 밟고 있는 발을 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이 그림이 자기 세계의 분수령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그는 이 꿈을 꾸었는데, 해몽 책에도 없는 그것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것인가. 그는 이 꿈이야말로 자기 영혼의 깊은 우물, 즉 저장된 메모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다른 몇몇 그림에는 태초의 공간인 암흑의 세계가 배경으로 표현돼 있다. 거기 칠흑과도 같은 공간에 물체들이 부유하고 있다. 기억자로 꺾인 연통의 양 입구에 갇힌 개와 물고기의 머리, 허공 속을 유영하는 어떤 에너지 덩어리와 같은 모호한 덩어리들, 붉은 구덩이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장미꽃을 쥔 주먹 등 한결같이 부조리한 상황들이다.
그 림은 초당 24프레임으로 이루어진 영화와는 달리 한 순간을 박제화하는 예술이다. 그래서 ‘몸의 언어’의 거장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사진을 참고하여 많은 그림을 그렸다. 사건의 한 장면을 아주 짧은 순간에 포착해 낸 사진이야말로 전율할 만한 생생한 감동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그림은 스토리가 아니다. 거기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다. 문범강은 꿈을 토대로 그림을 그린다. 그가 그려내는 그림들은 비현실적인 장면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단지 꿈에 지나지 않을까. 그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부정하며, 꿈이야말로 진정한 현실일지 모른다고 강변한다. 필자는 기이한 소재를 다루는 이 기이한 작가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리고 그가 그려내는 이 기이한 세계야말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 어떤 화가보다 더 삶의 진실에 육박해 있다고 믿는다.
문범강, 그의 세계는 그 어떤 철학자의 세계보다도 더 철학적이다. 존재의 비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그 베일을 벗기기 위해 과감히 도전장을 던지는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오랜 세월을 거쳐 이제 하나의 일가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몽환 속에서 웅얼거리듯 들려주는 몸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혀의 예민한 촉수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