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운동 전 | 9.10-10.10 | 대안공간 충정각

서울 중심부에 있으면서 최근까지도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다가 1년 전 대안공간으로 거듭난 충정각은 유럽과 일본, 한국의 건축 양식이 복합된 100년 가까이 된 건물이다. 무조건 과거를 쓸어버리고 개발하는 것을 진보라고 여기는 공사판 같은 근현대사의 틈새에서 거의 기적같이 살아남은 장소에서 열린 개관 1주년 기념전시 ‘전진 운동’은 진보의 또 다른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질서에 따라 필연적으로 방향 지워진 곳으로 나아간다는 진보라는 관념은 근대에 생겨나, 과학기술 및 생산양식과 결합되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물질적 성장을 진보와 혼동하면서 진보는 신화가 되었다. 이러한 사고에서 곧게 나아가야 한다는 비유는 강력하였다. 그러나 똑바로 앞을 향하는 시간의 화살이라는 근대적 비유는 복잡한 미로라는 새로운 역사의 기하학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 전시의 무대가 되는 장소가 화이트 큐브라는 투명하고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동서양, 과거와 현재가 착종된 복합적인 공간이라는 점은,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예술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청년작가의 자의식과 복합적인 시공간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한다. 오래된 건물이 가지는 묵직한 분위기와 요즘 건물에는 없는 특이한 안팎의 구조물들은 젊은 작가들의 감수성을 더욱 생생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최문석의 작품은 관객이 앞에 놓인 작은 북을 두드리면, 금속으로 제작된 배에서 로봇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노를 젓는다. 하나의 신호에 반응하는 집단적 전진의 이미지는 왜 그리고 어디를 향해 이렇듯 열심히 가야하는 지도 모르는 채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맹목적 시스템을 풍자한다. 김무준은 러닝 트랙을 통해 되돌이표 같은 진보의 이미지를 그린다. 유쥬쥬는 키치 스타일로 각색한 논개를 통해 종종 집단적으로 끓어오르는 애국주의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실제 사용했다는 황현호의 챔피언 벨트는 진흙탕의 싸움터에서 쟁취했을 허울 좋은 영광을 조롱한다. 권위에 대한 조롱은 청소년의 달콤한 일탈행위를 그린 임성수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젊은 작가들에게 사회의 주도적 무대에서 소외된 타자들은 그들이 새로이 마련한 무대의 주인공으로 부각된다. 백종훈은 위기에 처한 자연, 소수민족 등이 성 삼위일체라는 형식으로 표현하며, 성유진은 결코 인간에 의해 완전히 길들여지지는 않는 동물인 고양이에게 자신을 투사한다. 순수소녀의 이미지(유둘)과 사이보그 요부의 이미지(현주)는 남성에 의해 천사 아니면 악마로 타자화 된 여성을, 그리고 추영호와 정수용의 작품은 이성이 억압해왔던 몸을 세계와 직접 접촉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이 전시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전진의 이미지는 통상적인 진보의 이미지와 달리, 하나가 아닌 다양한 모델을, 단일한 미래상이 아닌 예측 불가능성을, 동질성이 아닌 이질성을, 확고한 존재가 아닌 차이 짓기와 변신에 통한 운동에 가깝다.
출전 | 퍼블릭 아트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