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시오 곤잘레스 전 | 9.19--10.24 | 더 컬럼스 갤러리
스페인의 작가 디오니시오 곤잘레스(Dionisio Gonzalez)의 사진과 정소영의 설치작품은 건축의 어법을 빌린다. 그것들은 거주하기는 물론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는 가상의 건축이지만, 도시적 생태계의 발생과 구조, 그 시원과 절개 면을 명쾌하면서도 매혹적으로 보여준다. 곤잘레스의 사진은 파노라마 형식으로 길게 늘여진 나지막한 건물들의 집적이 한낮의 한가로운 고요 속에 잠겨있고, 정소영의 설치는 지하 깊숙이 자리 잡은 광산 같은 구조물이 인공 광원에 반사되어 별처럼 빛난다. 하나는 밝고 하나는 어둡지만, 둘 다 도시의 야생적인 면모를 강조한다. 정소영의 작품이 현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파헤쳐지는 지대의 단면을 보여준다면, 곤잘레스의 작품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일, 곧 끊임없이 기존의 것들이 무너지고 새로 지어지고, 그 중간에 과도적이고 복합적인 상태를 가지는 도시 생태계의 현재와 미래상을 그린다. 지하든 지상의 풍경이든, 집적된 덩어리들은 고정과 정지가 아니라, 증식하는 구조를 가진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 아니라, 삶으로 회귀하는 반복적인 운동을 통해, 공식적인 법의 질서가 미치지 않는 바깥 공간을 예시한다.
정소영은 지하실인 사루비아 다방의 기둥이나 천정 지지대 같은 고정 구조물을 비슷한 형식의 기하학적 덩어리들로 확장시킨다. 다양한 크기의 입체구조물이 천정 위에서 기둥에서 바닥에서 솟아나 공간을 채운다. 그것들은 마치 동굴의 종유석이나 수정처럼 점차 자라나는 듯하다. 이 장방형, 정방형 구조물들이 지상으로 뻗어 올라가면 도심의 콘크리트 숲을 이룰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도시 공간의 근간을 이루는 가상적인 모델이다. 시멘트 표면을 가지고 있지만, 두들기면 속이 빈 소리가 나고, 그 위에는 육중한 무게감을 줄여주는 반짝이도 붙어있다. 시멘트 구조물 사이에 간간히 박혀있는 유리 상자는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이 구조물들이 핵심 없는 표면들의 연속체임을 예시한다. 저 너머의 공간에는 음각으로 파헤쳐지는 감실이 뚫려 있고, 그 안에 안치된 형광등이 벌거벗은 공간을 비춘다. 강력한 시멘트 냄새와 떨어져 나와 나뒹구는 시멘트 덩어리는 방치된 장소를 연상시킨다. 그곳은 인간이 들어서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작동 중인 듯하다.

작가의 말대로 이곳은 공간의 전복 또는 공간의 무용화이며, 지상의 모든 실용적이고 실제적 공간을 위한 잠재적인 공간이 된다. 지상의 도시를 이루는 건축물이 구성적 공간이라면, 이 장소는 전시부제처럼 ‘zero construction’의 지대이며, 소유와 접근을 거부하는 부재 및 네가티브 공간이다. 그러나 작가는 지상의 기념비를 이루는 모든 강건한 실체가 생겨나기 위한 기본적인 질료와 물적 구성 방식을 폐허 같은 이질적 공간에서 찾아낸다. 지상에 우뚝 선 건물들이 존재와 본질을 강조한다면, 지하의 공간은 모든 지상적 존재의 기초적 가치들을 침식하는 배제된 공간이다. 지상적 존재가 의식의 영역이라면, 어둠이 지배하는 지하는 무의식의 영역과 비교될 수 있다. 지하의 공간은 다양한 체적을 가진 구조물이 차이를 둔 반복으로 형성된 곳이며, 서로 대체될 수 있고 미 결정적이다. 그러나 지상적 존재의 자기 동일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지하의 이 불안정하고 불연속적인 공간인 것이다.
지상과 지하는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소영의 작품은 자기동일성이라는 경계 밖으로 내쳐지고 억압받는 내부의 타자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의식을 포함하여 모든 지상적 존재의 독립성과 명증성은 차이와 연기(延期)에 의해 가시화되지 않는 영역에서 분출된 무의식적 질료가 응결된 순간적 고정 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소영의 작품은 실재를 가시화하는 무의식적 구조와 그 힘을 드러낸다. 지하의 언어인 무의식은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의 힘이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모순의 언어이다. 그곳은 실재를 가능하게 하는 잠재적 공간, 동질성을 가능하게 하는 이질적 공간의 혼돈과 에너지를 보유한다. 심층에 존재하는 구조는 수수께끼 같은 표면들로 중첩된 교차적 공간이며, 서로 뒤섞여 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모호하다. 그것은 미로와 폐허 중간쯤에 걸쳐진 곳이다. 이 불투명하고 비 표상적인 장소의 중심은 없으며 주변은 모든 방향으로 확장된다.
그 위로 떠있는 다양한 형태의 구름만큼이나 여러 형태의 주거 단위들이 조각조각 이어져 있는 곤잘레스의 사진은 대도시의 어두운 단면들을 백주대낮의 탁 트인 공간 앞으로 정렬시킨다. 멀리서 조망하는 세련된 형식을 갖춘 가상의 마을 사진은 절대 빈곤을 심미화 시키는 위험이 없지 않으나, 삶이 있던 그 자리의 흔적과 활기를 조형적인 유희와 뒤섞는 실험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비루한 현실도 뿌리 없는 이상주의도 아닌, 대안의 삶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어지러운 살림살이들이 드러난 판자촌은 다양한 형태와 각도로 튀어 나온 추상적 구조물과 절묘하게 조합된다. 작품마다 다르지만 덧입혀진 상상적 인공 구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것은 현실이 만들어낸 다양한 표정을 지닌 건물들의 카오스적 흐름에 악센트와 추임새를 넣어주는 정도이다. 상호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 벌집 같은 자연적인 구조물처럼 빈틈없이 단단한 응집체를 이룬다. 언제나 밝은 태양 빛을 가득히 받는 그곳은 상상과 현실의 공조로 재구축된 가상의 마을이다.
디지털로 재건축된 마을들은 하늘과 땅이 맞닿는 지평선 위에 삶과 예술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처럼 펼쳐져 있다. 작가가 영감을 받은 곳은 쿠바의 아바나나 브라질의 빈민촌인 파벨라(favela)라고 한다. 도시빈민이 몰려 사는 불법 점유 가건물들은 거주 주민들에게는 운명처럼 지워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곳이고, 당국으로서는 철거와 개발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곳은 단일한 계획에 의해 완결된 닫힌 구조가 아니라, 끝없는 보충에 의해 차이화되는 공간이다. 디지털 방식으로 가필된 인공 구조물은 거대한 카오스의 흐름으로부터 돋아난 결정체처럼 보인다. 이 결정체는 오성이나 이성처럼 더 많은 빛을 끌어들이고 새로운 시야를 가능하게 하며, 건물의 안과 밖을 더욱 효과적으로 연결시킨다. 그곳은 일방 독주하는 이성이나 빠져 나오기 힘든 빈곤이라는 양극화가 지배하는 현실에 트임과 소통을 제안한다. 작가가 만든 마을은 자연스러운 삶의 흔적을 지워버리지 않으면서 이성의 투명함이 복합됨으로서,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고 서로 대화하는 일종의 이상향이다.
질감이 살아있는 다양하고 불규칙적인 형태들은 주체의 상상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나온 것이다. 규격화되어 있지 않고 예측 불가능하게 확장되는 주거 단위들은 기술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총체성의 지배를 벗어나 뿌리줄기처럼 뻗어나간다. 그것은 획일적인 기호체계들에 대항하는 복합적이고 다의적인 공간이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개성과 지역성이 남아 있는 그곳은 근대의 총체적 비전과 거리가 있다. 근대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그곳은 무질서하고 비합리적이고 비 기능적이다. 건축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장한 젠크스의 이론처럼, 삶으로부터 새롭고도 오랜 건축 언어를 되찾는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근대 건축의 기호체계가 지닌 단일기능성, 일차원성, 비역사성을 비판하면서, 복합기능성, 기호학적 복합성, 문맥성 및 문체양식 상의 다원주의를 내세웠다고 평가된다. 절충적이고 다양한 흐름은 단일한 강령이 결정화된 근대적 공간과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정책 입안자나 계획가가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실제적 사용가치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곤잘레스의 사진이 남미에 현존하는 빈곤 지역에서 나온 만큼, 그의 건축적 언어는 포스트모던적인 유희성만큼이나 정치적인 의미를 중시해야 할 것이다. 빈민들은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부터 쫒겨나 도시의 주변으로 몰려든 무단거주자들로 주변인들로 취급된다. 그들의 거주지는 위협받고 관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항대립의 정치학은 곤잘레스의 합성사진에서 나오는 이상향처럼 해체되어야만 한다. 중심과 주변의 관계처럼 빈곤은 풍요에 대립되는 위치에 놓여있지 않다. 자본주의의 풍요는 빈곤을 재생산한다. 도시빈민은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노동 예비군으로서 자본의 축적을 돕는다. 자본주의적 풍요 내부에 끝없는 빈곤이 있다. 빈곤에는 곤잘레스가 형상화한 바와 같은 또 다른 가치의 원천이 존재한다. 현대철학이 예시하듯, 범주의 순수함은 언제나 이미 위반되고 오염되어 있다. 안과 밖,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중심과 주변 등으로 설정된 경계를 해체하는 곤잘레스 작업은 억압적인 지배질서의 가장자리에서 이질적 흐름들을 풀어놓는다.
출전 | 아트 인 컬처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