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길 전 | 2008.9. 3-10. 2 | pkm 트리니티 갤러리
김상길의 최근 사진들은 건축 내부 구조의 일부인 뼈대들과 도시의 빌딩, 그리고 제복을 입은 근로자 시리즈로 이루어진다. 크게 세 가지로 유형화되지만, 언뜻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 사진들은 현대 도시의 생태를 안팎에서 포착한 것일까? 그러나 그의 사진은 매순간 풍경을 바꾸고 있는 역동적인 현대 도시의 모습을 포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적막하다. 사진 속 인물들도 직업과 나름의 정서 상태가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매우 표준적이고 익명적이다. 그의 사진은 특별히 멋지다고 할 수 없는 구식 건물들과 전형적인 기념사진에서 보이는 어색한 자세들로 일관되어 있다. 그러나 Layer라는 전시부제는 흘러가는 순간을 얼음처럼 응결시키는 사진의 수수께끼 같은 표면을 헤집고, 장면에 내포된 다양한 층위들을 해독할 것을 권유한다. 건물 사진들은 모두 ‘mode’라는 제목이 붙어있고, 옆에 그 건물이 세워졌을 시기라 추측되는 연도가 병기된다. 부분, 또는 전체적으로 리모델링 건물 사진에는 서로 다른 시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것들은 절개 면이 드러난 단층처럼, 하나의 장면에 여러 시간대가 동시에 포착된 것이다. 김상길의 사진에는 건물이 지어졌을 때와 개축되었을 당시의 건축 어법, 말하자면 양식이나 유행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 속 건물들은 원통형 중심 지주를 노출하거나, 트롬 세탁기를 쌓아 놓은 것 같은 60년대의 환상적 스타일의 건축부터, 국가적 규모의 거대 행사를 위해 급조된 21세기의 초현대식 건축까지 각기 다른 시대정신이 읽혀진다. 기능주의에 충실한 평범한 건물들 역시, 그 이후에 덧대어진 자국들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또 다른 ‘mode 시리즈는 건물 내부를 이루고 있는 교차 구조들을 프레임 가득히 잡아낸 것으로, 다양한 밀도와 구성, 그리고 색상을 가진다. 변화를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자연과 달리, 건축 같은 인공적 구조물은 시간에 따른 변화 주기가 빠르다. 빌딩같이 덩치가 큰 것은 몇 십 년 지나갔다고 완전히 사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 생태계가 요구하는 문맥에 따라 변화를 겪는다. 미시적, 거시적 변화를 추동하는 문화의 규칙은 시간차를 두고 구조와 표면에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김상길의 건물 사진들은 서로 상이한 기술 체계들이 동시에 아로 새겨진 공시적(synchronic) 구조를 보여준다. 80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은 전후를 풍미한 국제적 모더니즘이 지역성과 역사성을 배제한 기념비들을 양산했다고 비판했지만, 기능주의 역시 어떤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 시대의 산물인 한 끊임없이 시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족적인 논리로 구축된 근대 건축들은 이후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적으로 변화했다. 김상길은 근대적 순수 이성의 패러다임을 현실화 한 기능주의 건물들은 추레한 이면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에 기록된 것은, 단지 근대적 순수성의 결정체들이 삶에 의해 침해되고 변형된 퇴락한 모습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풍자했다고 보기에는 매우 정적인 사진들은 변화의 층위를 슬쩍 드러낼 뿐이다. 이 변화는 마치 나무에 새로 생겨난 옹이들이나 둘레를 키운 나이테처럼 자연스럽게 보인다.
어떤 ‘모드’가 시작되고 사멸하는 원초적 지점은 불확실하다. ‘모드’는 도시처럼, 그리고 언어처럼, 처음부터 동질적인 것과 이질적인 것이 공존한다. 표피 뿐 아니라, 재료나 형식들 역시 시간이 새겨져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다양한 스타일의 절충을 주장하기 전에, 이미 모더니즘 내부에는 타자가 존재했던 것이다. 시간의 단면을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는 사진기라는 전능한 도구를 이용하여 냉혹한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김상길의 사진은, 모더니즘 바깥으로부터의 이견이 아니라, 자체의 모순으로 금이 가고 내파되는 지점을 드러낸다. 외부로부터의 반대보다는 내부 모순의 분출이 더욱 파괴적일 수 있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일부인 도구적 이성이 아니라, 계몽 전체를 역사화의 방식을 통해 비판(상대화) 한다. 작가는 모더니즘과 피상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기말을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완된 태도에 경도되지 않는다.

비록 연출된 것이지만, 건물사진만큼이나 단순명료한 초상사진 시리즈는 근현대의 추상적 구조물 속에서 살아감직한 이들의 모습이 반영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주차원, 배달원, 판매원 등 각자의 일터에 어울리는 모종의 제복들을 착용하고 관객을 향해 포즈를 잡는다. 그들은 소속 표시와 이를 인정해주는 또 다른 시선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실제 공간에서 기념촬영 한 이전의 오프라인 커뮤니티 시리즈처럼, 이 전시의 ‘오프라인’ 시리즈의 인물들은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하는 파트 타이머들이다. 이들의 어색한 포즈는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직장 동료라는 점에 있다. 2명 혹은 3명이 안정된 구도로 무리지어 있는 인간들을 이어주는 것은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예시하는 통일된 의상뿐이다. 여기에서 노동은 한 인간의 실존과 온전히 일체가 되는 무엇이 아니라, 시간당으로 계산되는 임금 액수에 따라 현실성이 체감되는 방편에 불과하다.
개인은 현대성을 이루는 근본 단위로 간주되곤 하지만, 김상길의 사진에서 전형된 바의 현대인은 익명적 원자에 가깝다. 그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로 출발하여 근대적 개인이 쟁취했다고 가정되는 자율성과 자유로움과 거리가 있다. 현대성은 시장지배를 더욱 공고하게 했을 뿐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들을 자연과 전통으로부터 떼어내고, 노동과 소비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배열한다. 제반 가치를 코드화 시키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 역시 돈과 결부된 무엇이 되게 한다. 구조에 소속되어 제복을 입어야 그들의 욕망을 추동하는 소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mode’ 시리즈에 나오는 건물들처럼 무수한 격자로 나뉜 칸에 배치된 요소들이고, 서로에 대해서는 물론,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전체적인 비전을 결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생산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 수단을 획득하기 위한 일시적인 집단이다. 나사못처럼 교체될 수 있고, 서로의 옷을 바꾸어 입는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김상길의 사진은 무엇인가 강하게 주장하거나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현대사회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출전 | 월간 포토넷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