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츠오 미야지마 전 | 2008.9.3 - 11.2 | 몽인 아트센터


1층 전시장 벽면 아래에 몇 개의 단위로 분절된 채 한 줄로 도열한 LED는 어둠 깊은 명상적 공간에서 무슨 메시지인가를 발신하려는 듯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직 어둠에 순응이 되지 않은 관객에게 불빛은 단지 벽면 아래에서 빛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관객이 발 딛고 서있는 장소를 포함하는 전체 공간의 중간에 둥 떠있는 듯, 공간 감각을 교란시킨다. 점멸하는 빛의 도열은 벽면과 바닥을 같은 차원에 배열해 놓고, 그 위와 아래를 가르는 선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환영의 효과에 의해 벽과 바닥을 아우르는 전체 공간의 허리에 걸치게 된 점들의 모임은 38선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아마도 38선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예의 하나가 될 것이다. 38선은 20세기 한국에서 최대의 희생자를 낳은 냉전 시대의 산물로, 이제 전쟁의 기억은 희미해졌지만 한국인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바로 그 선이다. 우리에게는 분단의 정치경제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지마의 작품에서 선은 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는 다양한 현상에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질서를 부여해주며, 그것이 각인된 것들에 뚜렷한 윤곽과 경계를 만들어 준다.



2층의 사진작품은 보다 구체적이다. 작품 [Counter Skin at 38° in South Korea]는 분단풍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과 세대, 성별을 가진 한국인 10명의 신체에 디지털 코드 이미지의 숫자를 물감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각각의 몸에 그려진 숫자는 분단과 관련된 숫자와 무관한,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숫자들이다. 1층 설치 작품이 허(虛)의 공간까지 포함하는 기하학적 균형을 보여준다면, 2층의 사진 작품은 시공간의 일부를 단호하게 잘라내는 사진의 방식에 의해 포착된 파편화된 몸 아무 곳에나 거칠게 덧입혀진 임의성이 두드러진다. 1층의 설치작품이 분단 풍경을 추상화된 구조로 표현한다면, 2층의 사진작품은 장구한 시공간 속에서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몸뚱이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미야지마의 작품에서 한국의 분단 상황은 머나먼 우주 공간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보이는가 하면, 만지면 페인트 자국이 묻어날 것 같은 즉물성이 있다. 그것은 미야지마의 작품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숫자의 두 속성이다.




숫자는 인간의 삶에 본원적이고도 구체적인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가령 숫자는 성스러운 장소를 빛내주는 상징이기도 하고, 매순간 갱신되는 주가 전광판처럼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죽이는 다급한 현실이기도 하다. 2층 중정 연못에 설치된 작품 [100 Time Lotus]는 경계와 얽힌 우주적이고 사회적인 이미지에 자연의 차원을 더 한다. 인공 연못 표면을 가득 메우는 디지털 연꽃들의 숫자들은 자연에 새겨진 신성한 주기를 나타내는 듯하다. 실제의 연꽃처럼, 수면 아래에서부터 줄기를 뻗어 수면에 100조각의 LED를 비추는 이 작품은 연꽃이 가지는 동양적인 분위기로 인해, 기계적 추상이나 임의적 구체성 모두를 지양한다. 연꽃은 다른 식물과 달리, 꽃을 피운 다음에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열매와 꽃을 동시에 피우는 생태적 특성으로 인해 불교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으로 간주되어 왔다.

숫자는 알파벳만큼이나 보편적인 소통 수단이다. 소통은 생명의 본질이다. 그래서 미야지마는 10개의 숫자 중에서 무와 죽음을 의미하는 숫자인 0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1에서 9에 이르는 숫자들은 생명이 호흡하듯이 끝없이 점멸하면서 무엇인가를 세고 있다. 숫자는 기능적인 의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율화되어 고유의 분위기를 발산하기도 한다. 수는 근대에 과학을 낳았지만, 그 보다 더 긴 인류의 문화적 삶의 기간 동안 사물에 새겨진 신비한 질서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예술가는 기능이 아니라, 상징으로 숫자를 사용한다. 10진법을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0은 공(空)을 상징하였다. 오토 베츠는 [숫자의 비밀]에서 세상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0이 아닌 1을 최우선적으로 인식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반드시 조화나 일치로부터 시작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야지마가 수에 부여하는 상징적 차원은 모호한 관념보다는 보편적 질서에 근거하는 인간의 삶에 맞추어진다. 1에서 9사이의 숫자로 만들어진 38선은 화해와 조화로 나아가기 위한 긴장감 있는 경계인 셈이다.

출전 | 공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