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근의 작품 속 사진 이미지는 그의 작품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시공간적인 무한함을 상징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늘이나 바다 같이 계측할 수 없는 크기를 가진 대상이나 기기묘묘한 나무들이 있는 오래된 숲 같은 것이 그렇다. 자연 아닌 인공물, 가령 건물 역시 장구한 시간의 흔적만 남은 폐허들에 가깝고, 인간의 몸 또한 수백 년 묵은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시공간적인 거대함을 유한한 입방체에 담는다.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플라스틱 판위에 직접 찍은 사진을 전사하여, 2차원적 사진과 3차원적 구조물을 결합시킨다. 장방형, 정방형으로 이루어진 실제 건물들은 유사한 형식의 틀에 밀착되어 일종의 축소모델 같은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하늘이나 바다 같은 부정형적 대상은 그것을 적절하게 담아낼 틀이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 자연을 담는 틀은 볼록 렌즈처럼 추상적이지만, 때로 집 같은 모양 같은 구체성을 가진다. 틀의 형태는 이미지와 마주한 순간의 감흥에 따라 달라지는듯하다.

산의 능선이나 바다의 물결,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등은 투명한 판 표면들에서 중첩된 이미지로 거듭난다. 반투명 구조물에 의해 복잡한 층이 형성되면서 자연에 내재된 수많은 주름을 가시화한다. 닫힌 입방체 안에 무한을 담아낸 것이다. 새어나갈 틈 없는 구조 속에서 순환하는 이미지는 처음과 끝을 확정할 수 없다. 인공적 구조물의 표면도 끝이 없다. 작품 속 건물은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각인하고 있으며 문, 창, 벽의 일부가 하나의 단위가 되어 또 다른 구조물에 안착된다. 그것은 건물을 그럴듯하게 재현 했다기 보다는 반복되면서 누적된 시간의 층을 기념비화 한 추상물이다. 유한의 도형을 상징하는 몸은 반투명 다면체에 담기면서 명확한 실루엣이 흩어진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몸이 아니라, 잡을 수 없는 환영처럼 떠돈다. 인체 조각의 일부가 찍힌 작품들은 그 표면성이 강조된다. 끊이지 않고 흐르는 선들은 사진의 1차적 참조대상이 명작이라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유한한 도형의 상징적 기준인 몸을 뫼비우스 띠 같은 표면으로 확산시킨다.
특히 오래된 나무를 찍은 사진을 대칭으로 펼친 것은 인체의 느낌이 난다. 그것은 대칭을 이루는 몸 구석구석까지 복잡하게 가지를 뻗어 말단으로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내부기관처럼 보이는 것이다. 작가는 관객의 시야를 몸의 외곽선에 맞추기 보다는 밑도 끝도 없는 몸의 표면이나 세포 같은 차원으로 전치시킨다. 체적은 유한해도 그 안으로 접혀지는 선은 무한해 진다. 자연, 몸, 건물 등의 이미지가 담긴 구조물은 닫혀 있기 때문에 열려 있는 역설을 보여준다. 아귀를 꼭 맞춘 다면체들은 그 투명함을 통해 경계를 교란시킨다. 여기에서 경계와 탈경계는 상호 의존적이다. 경계는 그어지자마자 지워진다. 만물의 형태는 고정된 윤곽선으로 분리되지 않고 경계들끼리 접촉한다. 접촉은 미묘한 차이들을 낳고, 고동치면서 분산된다. 반투명 입방체들은 이미지들이 중첩되고 확산되는 밑자리가 된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만물을 품어내는 원초적 용기(容器)이자 순수 공간이다.
출전 | 계간 조각 2008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