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같은 오밀조밀한 장소도 있지만, 대부분 탁 트인 장소에 서있는 나무는 뒤에 세워진 거대한 사각 캔버스로 인해 말 그대로, 한 장의 그림이 된다. 이 하얀 배경 막은 그림처럼 입체감이 있는 대상물을 평평한 표면 위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뒤에 장치한 캔버스 말고는 특별한 조작 없이 대상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계절, 주변 환경 등이 일련의 계열을 이루면서 차이와 반복의 유희를 행한다. 재현의 파산의 선고하는 현대의 철학자 들뢰즈는 동일성의 우위가 재현의 세계를 정의하지만, 모든 동일성은 차이와 반복이라는 보다 심층적인 유희에 의한 광학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주변으로부터 이렇게 유리된 나무는 자신의 실루엣을 캔버스 천위에 남김없이 드러낸다.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진 소나무이든 축축 늘어진 잔가지 많은 나무이든 간에, 땅 아래로 뻗은 뿌리를 통해 물을 흡수하고 태양을 향해 가지를 뻗어 광합성을 하기에 적합하게 생겨난 자연적 구조는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대로 떠내어진 듯하다. 캔버스천은 때로 나무 뒤가 아니라, 앞에 드리워지며 그림자로 투영되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나무가 형태와 더불어 자신의 그림자를 거대한 캔버스에 드리우며 광원과의 관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명호의 작품은 전방으로 뚫린 가상의 창문을 향해 눈을 고정시키고 자리 잡은 주체의 시각적 단면을 떠낸 것인 동시에, 선으로 윤곽을 그린 대상의 그림자로부터 탄생한 재현의 다양한 기원을 예시한다. 재현적 장치들이 함께 드러나 있는 재현 대상은, 대상을 단지 지시할 뿐인 투명한 리얼리즘의 언어로서가 아니라 재현에 대한 메타적인 차원을 강조한다. 3차원 공간에 뜬금없이 드리워진 평면은 지시대상을 구별해준다. 대상은 차이들의 체계 안에 배치된다. 그것은 대상에 선행하며, 보여 지는 층위들을 변별함으로서 세계를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지 사진이 아니라, ‘사진 행위photography-act’라는 부제가 붙는다. 이 전시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나무 사진들은 그의 ‘사진 행위’ 프로젝트 중에서 2004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는 연작들이다. 나무 뒤에 드리워진 천은 재현이라는 것이 우선 대상의 선택과 바탕을 고르는 행위와 연관된 것임을 예시한다. 천은 지시대상을 주변과 분리함으로서, 그것의 자연스러운 견고함을 와해시킨다. 나무는 물리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조형적 기호가 되어 작가에 의해 새롭게 짜여진 공간 안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리얼리티는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조립된 것이며, 조립된 것이므로 재구성되거나 해체될 수 있다. 대상은 새로운 전후 관계를 획득하면서, 단순한 현실반영을 넘어 적극적인 의미의 생산을 요구한다.
출전 | 월간미술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