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 전 | 9.25-10.21 | 서울대학교 미술관

철조, 석조, 목조, 그리고 회화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이 나온 이번 전시는 1968년에 제작된 작품 [통격의 장]부터 금년에 제작된 것까지 포함하는, 근 40년을 망라한 회고전 성격을 가진다. 전준의 조각에서 회화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점과 얼룩으로 뒤덮인 그림 [소리]는 추상 표현주의적인 특징을 가지는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한지 부조로 제작된 [소리-숨] 시리즈는 회화와 조각의 중간적 단계로서, 손자국이 그대로 드러난 리드미컬한 질감과 화면 가운데 구멍을 뚫어놓은 공간감이 특징적이다. 작품 제목에 병기된 ‘소리’, ‘숨’ 같은 키워드는 무거운 중력의 지배를 받는 조각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짓을 예시한다. 조각 특유의 묵직한 양괴감보다는 공중으로 치고 올라간 금속 면들의 구성이 경쾌하다. 작품 [소리-우연과 필연사이]같은 철단조 작품은 마치 두꺼운 쇠판을 찢어서 이어붙인 듯한 복잡한 실루엣이 3차원 상에 그려진 필획 같은 느낌을 준다.





같은 제목을 가진 시리즈 작품들에서 나타나듯이, 그의 조각은 다양한 변주 가운데에서도 그림틀 같은 구조가 반복됨으로서 회화적 특성을 내포한다. 철 조각들은 빈 공간을 품는 경쾌함과 안정된 무게 중심을 동시에 확보한다. 이러한 양면가치의 공존은 ‘우연과 필연 사이’에 작품을 놓고자했던 작가의 의중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철 용접 작업은 공간을 점유하는 부피가 강조되기 마련인 조각에 회화 같은 복잡한 질감을 부여한다. 돌조각 역시 표면질감이 살아있다. 오석으로 제작된 작품 [소리-숨-靜](2005)은 표면에 새겨진 무늬가 풍화작용으로 지워진 비문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전시는 그림과 조각이 마치 한 작품처럼 배열되어 있어, 양자의 상호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검은 얼룩이 뒤덮인 그림 [소리-우연과 필연 사이] 앞에도 비슷한 표면 이미지가 새겨 있는 검은 돌조각이 배열된다. 양자는 형태 속의 형태, 그리고 검정색이라는 공통된 조형 요소로 연결된다.
벽화 부조로 된 군상 이미지와 바닥에서 가득 돋아난 싹 같은 이미지를 가지는 나무 조각, 그리고 물결과 산맥이 교차되면서 산과 바다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부조작품과 그 앞에 놓인 오리 모양의 나무 조각은 회화적 이미지와 조각 사이에 설정된 관계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나무는 본래의 표면이 살려지기 보다는 색이나 무늬가 입혀져 있어, 회화적 표면처리라는 방식이 여러 재료에 관철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에서 회화와 조각은 소리로 연결된다. 소리는 조화로운 음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가령 동족 간의 비극적 전쟁을 표현한 작품 [통격의 장]처럼 다양한 크기로 붙어있는 파이프들은 찢어지는 굉음을 내포한다. 한편 오석 위에 새겨진 무늬들은 단조롭게 반복되는 경 읽는 소리 같은 느낌도 준다. 전준의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의 역사와 삶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출발한 추상이기 때문에 복합적이다. 시각적인 질서가 소리의 생기와 함께 얽혀있는 작품에서 조각의 자기 동일성은 함께 속해 있는 것, 즉 공속성이 된다.

출전 | 계간 조각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