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 |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호남대 교수
한때 한류(韓流) 바람이 불어 영화, 음악, 의상, 드라마, 전통음식 등등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와 예술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을 휩쓰는 것 같더니 요즈음에는 그 마저도 다소 시들해진 것 같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경기도는 일산 호수공원 인근의 장항동과 대화동 일대에 30만평 가량의 ‘한류 우드(韓流-Wood)’ 단지를 조성, 2010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을 발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이러한 분위기라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될지 적이 걱정이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약 2조원의 막대한 사업비가 투입되는 만큼 반드시 성공을 거두어 국위를 선양하는 데 앞장을 서야 하겠습니다.
주지하듯이, 한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해외에 알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지속성입니다. 냄비가 끓듯이 한 때 ‘와’할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탄탄한 밑그림을 그리고, 면밀히 수립된 계획을 바탕으로 소요 예산을 확보하여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때 성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단발성 사업으로 그쳐 실효를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정책의 지속력과 연계성의 부재입니다. 이 문제는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정권이 수립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령,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같은 국책사업의 경우 특별법에 의해 보호를 받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업의 기본 구상이 단발성을 염두에 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질의 프로젝트들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변질되거나 심지어는 중도에 그쳐 아까운 예산만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기 위해 우리나라 문화 예술 정책의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산하기관인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였으나, 아쉽게도 이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연구논문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현대미술을 국제적으로 ‘브랜드’화 함으로써, 우리의 예술적 역량을 세계의 미술계에 알려 그 위상을 정립하는 일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미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현대미술을 국제적으로 브랜드화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대미술 가운데에서 과연 어느 것을 ‘브랜딩(branding)’ 할 수 있느냐 하는, 즉 대상을 찾는 게 급선무입니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브랜딩’하는 데 있어서 잘못하면 다소의 혼란이 야기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을 선별하는 데에는 어떤 기준과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론적 토대를 위한 연구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실천적 논의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한국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기점을 6. 25 전후(戰後)로 잡습니다만, 그 이후에 나타난 미술의 양식이나 사조 가운데 한국의 미적 특질을 잘 구현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것을 하나의 샘플로 삼아 국제적으로 알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미의 정체성이 잘 구현돼 있고 예술적 수준이 높은 양식이나 사조를 선정하여 이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과 전략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그 대상은 자연히 총칭적으로 부를 수 있는, 즉 고유의 ‘작명(naming)’이 가능한 양식이나 사조가 돼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구난방이 돼 ‘브랜드’화가 어려운 난점이 있습니다. 가령, ‘한국 이십대 작가들의 설치미술’하면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브랜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Gucci’라는 브랜드에 수 백 가지 상품의 종류가 있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포장할 수 있는 개별
작품들의 집합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큰 흐름을 형성했던 단색화(Dansaekhwa)가 가장 적절한 한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사조는 1970년대 초반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것입니다. 권영우, 김기린, 김창렬, 박서보, 서승원, 윤명로, 윤형근, 이동엽,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최명영, 하종현 등등 70년대의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세계가 90년대 이후에 들어서 김택상, 김춘수, 남춘모, 안정숙, 오이량, 장승택, 천광엽 등등 후기 단색화(Post=Dansaekhwa)의 작가들에게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저는 2천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한일현대미술의 단면전>이라는 특별전을 기획한 이후 이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단색화(Dansaekhwa)라는 고유의 명칭을 붙이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일이 브랜드 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저 혼자만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작가들의 창작적 실천을 바탕으로 비평가 및 미술사가들에 의한 학술적 탐구, 미술관과 갤러리의 적극적 수용,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후원이 혼연일체가 될 때 국제적인 브랜드화 프로젝트가 비로소 탄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단색화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발생한 일본의 ‘모노하(Monoha:物派)’는 일본의 고유명사로 국제적 브랜드화에 성공한 좋은 사례입니다. 이것은 일찍이 퐁피두센터를 비롯하여 구겐하임미술관, 뒤셀도르프 시립미술관, 로마대학 부설 미술관 등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초대전 형식으로 서구의 미술계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단색화는 영국의 테이트갤러리 리버풀과 프랑스의 몽뻴리에미술관을 통해 소개된 것이 거의 유일한 경우입니다만, 그마저도 고유의 브랜드를 단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전자는 ‘Monoha라는 고유명사를 달고 당당히 해외에 소개된 반면, 후자는 ’한국의 현대미술‘(테이트모던리버풀), 혹은 ‘침묵의 회화들’(몽뻴리에미술관)이라는 애매하고도 추상적인 명칭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아이를 낳고도 이름을 붙이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에 소개한 꼴이 된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스스로 이 사조의 명칭을 ‘모노크롬 페인팅’이니 ‘모노톤 회화’라는 외국어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 사람끼리 결혼하여 아기를 낳고도 ‘존(John)’이니 ‘주디(Judy)’니 하는 영어식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으니 이 얼마나 사대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일본의 원로 미술평론가인 미네무라 도시아키 선생은 한국의 이 사조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모노크롬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애써 일궈놓고도 스스로 서구미술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라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네무라 선생의 이 고언을 경청해야겠습니다.
미국의 현대미술을 세계미술사의 반석에 올려놓는데 큰 공헌을 한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일찍이 아실 코르키, 윌렘 드 쿠닝, 잭슨 폴록, 한스 호프만, 마크 토비, 아돌프 고트립, 로버트 마더웰 등등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가리켜 ‘미국형 회화(American-Type Painting)’라고 명명함으로써 이를 유럽의 다른 사조와 차별화하고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국제적 브랜드화하는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이 작가들에게 비평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또한 이 작가들을 베니스 비엔날레에 집중적으로 참가시킴으로써 국제적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던 바, 가령 웰렘 드 쿠닝은 6회(1950, 1954, 1956, 1978, 1986, 1988), 잭슨 폴록은 4회(1948, 1950, 1956, 1978), 마크 로스코는 3회(1948, 1958, 1968), 마크 토비는 무려 7회(1948, 1956, 1958, 1962, 1964, 1972, 1986)에 이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전략을 구사했다고 하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작명과 관련하여 또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트랜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소위 말하는 ‘한국적 팝(Korean Pop)’입니다. 한국의 독특한 미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소비문화를 풍자하는 동시에 미술의 대중화를 이끄는 화풍을 일컫는 용어인데, 대표적인 작가로는 권기수, 김동유, 김준, 데비한, 이동기, 이이남, 홍경택, 홍지연, 홍지윤, 홍경택 등등입니다. 이 작가들의 작품을 기술할 때 마땅한 비평적 용어가 없어 막연히 ‘한국적 팝’이라고 불렀던 것이 어느덧 관례가 된 것 같은데, 저는 이 자리에서 ‘대중화(Daejunghwa)라는 브랜드 명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팝(Pop)’이라고 하는 용어는 60년대 미국의 팝아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기적으로 안 맞을뿐더러 자칫하면 스스로 문화식민지화를 용인하는 꼴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단색화(Dansaekhwa)’와 함께 보다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입니다만, 이름이란 것이 자꾸 부르다보면 관례적으로 인정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지미술(Hanji Art)’도 국제적 브랜드화에 적합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초반 이후에 번성하기 시작한 한지미술은 수많은 전문작가들을 배출했습니다. 류재구, 문복철, 박은수, 박철, 이선원, 이종한, 조덕호, 최창홍, 한기주, 한영섭, 함섭 등등 많은 작가들이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의 역사적 숨결이 흠씬 배어있는 전통 한지나 직접 제작한 수제 종이를 재료로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가꿔나가고 있어 그 활동이 주목됩니다.
저는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명제를 자주 사용하는 편입니다만, 진정으로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고유 브랜드로 세계화에 성공한 사례로는 ‘태권도(Taekwondo)’와 ‘김치(Gimchi)’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스시(Sushi)’나 ‘가라데(Karate)’가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구찌나 루이 뷔똥, 샤넬, 이브 생 로랑 등등의 브랜드가 전 세계적으로 수 천 개의 매장을 갖고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분은 아마 안 계실 것입니다. 이들 브랜드의 힘은 비단 회사나 상품뿐만이 아니라 국가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알리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고, 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국제적으로 상품화하는 세계화 시대에 유독 예술만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문화예술은 고부가 가치를 유발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국가 이미지의 제고를 위해서도 미술의 ‘브랜드화’는 시급한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수행되어야 할까요? 기본적으로는 이에 대한 인식이 앞서야 되겠습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인식이 선행된 다음, 구체적인 전략이 강구돼야 할 것입니다. 저는 한 나라의 문화정책은 거창한 구호보다는 작은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실천에 옮겨질 때,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룰 때 보다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제가 제기한 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전략이 수립된다면, 그리고 그 전략이 치밀한 계획 하에 실천에 옮겨진다면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믿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을 ‘브랜드화’하여 세계에 알리는 일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비평가, 미술사가, 화상, 큐레이터, 정부의 관료, 기자, 컬렉터 등이 힘을 합쳐 인식을 공유할 때, 그리고 그것이 구체적인 전시의 형태로 꾸며져 해외에 순회전의 형태로 소개되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화상품들이 개발돼 전 세계에 유포될 때 비로소 그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출제 |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브랜드화에 대한 방안과 전략:2008 KIAF 국제세미나 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