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인성

구인성은 수묵화로 그린 도시 풍경과 골판지를 뜯어서 만든 픽셀구조를 보여준다. 횡단보도나 지하철 앞에 모여 있는 도시의 수많은 익명의 군상들이 있는 [무리지어 흩어지다]는 손가락으로 수많은 먹 점을 찍어가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 이러한 지필묵 작업과 다소 구별되는 것이 골판지 작업이다. 그는 골판지의 피막을 벗겨내고 빌딩 숲이나 난초 따위의 이미지를 드러나게 한다. 골판지에는 원근의 차이가 급격한 각도로 포착된 빌딩 숲 사이로 별이나 날아가는 토끼 등이 새겨놓아, 아찔한 마천루로 이루어진 삭막한 도시환경과 서정성을 결합시킨다. 지필묵 작업이 현대의 일상성을 재현하는데 집중되어 있다면, 골판지 작업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현대성을 대변한다. 권태로운 일상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진보적 현대성은 상반된 듯 보이지만, 한 실체의 양면이다. 구인성의 작품에서 양자의 연결고리는 반복적 제작방식에 있다. 손으로 먹을 찍거나 골판지의 피막을 단위별로 벗겨내는 행위는 집요한 반복의 축적이 낳은 산물이며, 이는 현대의 일상적 삶의 패턴과 유사하다. 그의 작품에서 일상성과 현대성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주제와 방법론 모두에서 관철되고 있다.

2. 박상조
박상조의 [흙으로 쓰는 그림일기]는 시골에서 노동하며 그림을 그리는 견실한 삶이 드러나 있다. 그의 그림에는 자화상과 더불어 있는 밀집된 도시풍경이, 그리고 소나무나 밭이랑 같은 장면과 거기로 난 길이 그려져 있는데, 물감 외에 황토나 백토 같은 자연 재료를 나이프로 발라 두툼한 질감을 낸다. 도시나 자연의 풍경은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선과 색에 의해 완성된다. 박상조의 그림은 자신을 둘러싼 삶의 풍경을 투명한 창처럼 비추지만, 그가 사용하는 조형 언어는 매체의 불투명성이 내재해 있다. 그의 그림은 자기 주변의 생활을 묘사하는 재현성 못지않게, 추상적인 질감이 두드러진다. 현대미술이 추상화되는 길목에서 그 미학적 근거를 제시해 주었던 비평가 그린버그는 예술이 순수해 지기 위해서는 특정 예술의 매체적 한계를 기꺼이 수용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바로 그 매체 때문에 각각의 예술이 유일하고 엄밀하게 그자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의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그 매체의 불투명성opacity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래서 재현주의 회화의 화면 깊숙이 존재했던 원근법적 비전은 회화의 추상적 표면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화면의 구석구석은 새롭게 조명 받는다. 박상조의 그림에서, 캔버스 틀에 상응하여 이미지에는 검은 테두리가 둘러지고, 그 안을 채우는 색채는 자체의 질감과 평면성을 보유한다.





3. 홍원석
홍원석의 그림에는 미군 장갑차에 비명횡사한 소녀들이나 운전자를 덮쳐올 듯 갑자기 날아오는 왕 벌레 등,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기원을 가지는 위험 상황들이 내재해 있다. 멀리서 보면 서정적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위험하고 심란한 현실 장면이 종종 발견되는 홍원석의 그림은 앰뷸런스와 대리운전의 기억이 생생한 작가의 인생경험으로부터 온다. 자동차에서 뻗어 나오는 광선에 의해 조명되는 크고 작은 장면들은 사건 속의 또 다른 사건 들이 벌어지는 무대 같은 효과가 있다. 많은 작품의 공통 특징인, 딥 블루의 공간을 가르는 밝은 노랑의 색상 및 명암 대비는 사건들을 멀리서 바라본 시점과 더불어 그의 작품에 내재된 심미주의를 예시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어떤 상황을 재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 듯하나, 재현은 하나의 객관적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이질적 세계를 공존하게 한다. 그러한 역설적 태도는 작품의 환상성을 드높임과 동시에, 현실비판으로 확장된다. 탄광촌에 존재하는 명암의 깊은 대조를 통해 현실을 비판한 화가 황재형을 오마주하는 작품에는 명암의 극적 대조로 삶의 비극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다. 개인의 경험이나 환상의 세계로부터 사회 역사적인 차원으로의 도약은 빛과 어둠의 변증법을 타고 전개된다.

4. 김인
김인의 작품 소재는 아이들 장남감이나 잡지의 사진 등 집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친근한 소재들이지만, 화면에 모여 있는 이미지들은 낯선 기표들로 떠돈다. 그림에 종종 등장하는 숫자나 종교적 도상 같은 것도 수수께끼이다. 그것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침잠되어 있는 기표들로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에 의해 잠시 표면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들이다. 기표들은 의미와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 채 떠돌지만, 그것들은 작가의 무의식적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거기에는 가정, 집, 먹을 것, 돈을 갖고 싶다는 생각 등이 나타나 있다. ‘happy’라는 단어가 그림에 흩어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쉽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떠도는 파편적 기표들은 느슨한 이완이 아니라,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 정서’(김인)로 변한다. 기호의 해체는 이야기가 아니라, 침묵 또는 비명으로 귀결된다. 그의 영상 작업은 그림에 비해 쉽게 이해되는데, 그것은 영상이 가지는 시간적 속성과 내러티브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평탄치 않았던 개인사는, 관객에게 천천히 이야기하다가 한꺼번에 기표를 쏟아 내거나, 아이와 한 공간에서 있던 여성이 갑자기 지워지는 노이즈가 심한 영상 장면, 그리고 결박된 신체를 떠오르게 하는 묶인 손 등으로 가시화된다. 이러한 영상들은 토막 나 있는 현실들이 담긴 그의 그림이 단순한 형식 유희가 아니라, 현실의 질곡을 빠져 나가기 위한 변신의 몸부림임을 예시한다.





5. 오윤석
오윤석의 작품은 세한도나 금강경 같은 비중 있는 원본을 택하여 정교하게 글자를 오려내고, 오린 종이들을 겹쳐 층위화 된 문자의 흔적을 남긴다. 난초 같은 형상 역시 오리고 붙이고 긁어내는 작업을 거친다. 이를 통해 글자와 이미지는 본래의 의미가 탈각된다. 기표는 의미로부터 분리되어 물질화되는 것이다. 수많은 문자의 층이 만들어내는 텍스추어는 문자의 내용과는 다른 형식의 내용을 창출한다. 그것은 엄청난 노동이 투여되는 거의 종교적 수행과 비교될 수 있지만, 원본과 똑같은 것을 재생산하는, 가령 사경 같은 작업은 아니다. 그것은 반복이기는 하지만 차이를 둔 반복인 것이다. 차이를 둔 반복은 단순한 재생산인 재현과 다른 차원에 놓인다. 차이를 둔 반복은, 작품의 의미를 원본이라는 유일한 중심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텍스트로 변화시킨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차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빛이다. 그것은 문자와 문자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그림자와의 유희를 통해 강조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전적인 텍스트와 이미지에 치중하는 만큼, 빛 역시 햇빛이 들어오는 시골 집 방문 같은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이러한 소재적 고풍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빛과 결합된 설치적 요소는 오윤석의 작품에 현대미술의 속성을 부여한다.

6. 여상희
여상희의 그림과 입체 작품에는 접혀있는 주름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한 떨기 호박 꽃 같은 유기체에 새겨진 생명의 주름 뿐 아니라, 마카로니 같은 유기물의 확대된 표면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굴곡을 포함한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다양한 소재들은 마치 동질이상의 것인 양, 하나의 실체가 접기와 펼치기의 유희에 의해 수많은 겹으로 분화되고 변모된 듯하다. 작가는 버섯, 조개, 파프리카 같은 생물이나 음식물 같은 소재의 표면이 가지는 기이함에 탐닉한다. 설치작품의 경우 반짝거리는 천으로 만들어진 보따리로 선인장을 표현했다. 수많은 대상의 표면에 새겨진 미세한 주름을 탐색하는 일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 외에, 관찰과 수집의 주요한 도구라 할 수 있는 카메라의 도움이 컸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된 소재가 그림이나 설치로 번역됨으로서, 주름진 대상들에는 또 다른 촉각성이 가미된다. 주름이나 구멍에 집중하며 부분이 확대됨으로서 징그러운 느낌과 페티시즘적인 섹슈얼리티가 강조되기도 한다. 대상들은 표피를 뚫고 내부와 심해로 확장해 간다. 오목 볼록한 부분들,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반죽과 살덩어리 같은 것은 증식과 변형의 메카니즘을 가진다. 이것은 대상을 재현하거나 의인화하는 것을 넘어서, 발생과 생성의 단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7. 권영성
권영성은 그가 발견하는 수많은 자연적, 인공적 대상물에서 지도를 발견한다. 가령 그의 작품에서 손금과 지문은 선이 얽혀있는 지도이며, 입술은 주름 때문에 생기는 선이 지도가 되고, 눈동자의 실핏줄이 지도가 되는 식이다. 피자나 파리채 같은 인공물 역시 도시의 지도로 변화한다. 예술작품 뿐 아니라, 자연의 기이한 형상에서도 지도는 발견된다. 거북이 등껍질에서의 지도 형상이나 나뭇잎 지도가 그것이다. 사물에서 지도를 발견하고 조형화하는 일은 다양한 현상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내는 재미를 넘어서, 구조적 동형성을 탐색하는 것과 연관된다. 그의 작품에서 씨앗 내부에 잠재된 형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뭇잎, 나무에 이르는 형태들의 닮음 꼴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더 나아가 우주의 이미지에 대한 심리적 지도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소우주로부터 대우주에 걸치는 시각적 상동성은 공간에 분배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형태가 드러난 것이다. 권영성의 지도그리기는 대상에 대한 단순한 복사를 넘어서, 지도가 명백해 보이지 않는 대상들에도 무차별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말하듯이, 지도그리기는 대상을 고른 판위로 최대한 펼쳐 놓으면서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 접속할 수 있다. 지도 화 된 배치는 대상의 명확한 의미를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뿌리줄기처럼 많은 입구와 출구를 가지고 있어서 미지의 대륙으로 나아간다.

8. 권인숙
권인숙은 박스를 이용하여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하듯 미니어처 형식으로 무대를 만든다. 실내의 축소모형인 무대는 프레임 역할하면서 소우주로 연출된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세트화 된 풍경은 미술을 전공하였지만, 대학 때부터 영화와 무대에 관심을 쏟았던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 [미학 에세이]에서 정밀묘사와 축소모델의 미학적 의미를 밝힌다. 그에 의하면, 축소모형은 만들어진 것이며 무엇보다도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상물에 대한 단순한 투영이거나 수동적인 상사체가 아니라, 대상물에 대한 실제 체험을 구성한다. 이러한 특질은 권인숙의 작품 같은 소형 무대 뿐 아니라, 미술작품 전체에 해당될 수 있다. 미술작품 자체가 현실의 축소모델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모사하는 것은 그의 정신이 축적했던 이미지들이다. 인간보다는 구조를 중시하는 레비 스트로스의 사고방식은 권인숙의 축소 모델에 주인공이나 스토리가 없다는 사실과도 연관된다. 구조주의는 통시성보다 공시성을 강조한다. 현재에 결정화된 구조를 가능하게 했던 시간의 흐름, 또 시간의 흐름이 내포하는 서사의 주인공은 부재하다. 그러나 세트는 사람처럼 여기저기로 이동하고, 고립되거나 소통을 추구하는 등 자체의 내러티브가 있다.

9. 박은미
박은미는 기괴한 복장을 하고 영화 같은 상황 극 속에 스스로를 배치한다. 작품 [움직이지 마] 시리즈는 영화의 장면과 연관된 것이다. 작가는 헐리웃 영화 [다이 하드] 한편에 200명이 넘게 죽어 나가는데, 자신은 그것을 관람하는 동안 팝콘 한 봉지를 먹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총은 실제의 총과는 달리, 죽음과 무서움이 아닌 유희적인 도구가 된다. 관객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영화라는 틀 속에서 실제는 어떤 차원이 삭감되어, 허구화되고 놀이화된다. 현실에 대한 괄호 치기는 자유로운 실험과 유쾌함을 자아낸다. 작품 [1001의 기억]에서 개개인의 기억이 담긴 필름을 기분 전환 용 사물로 변모시킨다. 개별적 사연들은 재료로 뭉개져 파라솔이 된다. 개인과 현실을 괄호치고 한정된 시 공간 내에서 행해지는 무상의 행위들은 놀이의 메카니즘을 가진다. 인류학자 카유와는 놀이의 속성에 따라 우연, 경쟁, 가장, 어지럼증 등으로 나눈 바 있다. 박은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가장Mimicry과 어지럼증Ilinx의 결합이다. 놀이가 이루어지는 한정된 계(界)는 변신과 상호 반사를 고무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은 어린이의 놀이부터 원시시대의 제의, 현대의 대중문화 및 예술을 관통한다.

10. 박경범
박경범의 그림에는 인형같이 예쁜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 인형은 사람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다시 사람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형태는 인형인데 인간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상적인 인간이기 보다는 유사(類似) 인간이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들이 접합된 기괴함과 인공물에 성애적인 욕망이 투사된 퇴폐성을 보인다. 이 유사인간들은 기계 같은 무표정함과 유혹적인 몸짓이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박경범의 작품 소스는 하위문화에서 두터운 매니아 층을 가진 구체 관절 인형이다. 작품 속 인형 같은 여자들은 [절 아시나요], [절 찾아주세요]같은 제목에서 암시되듯, 보여 지고 소유되는 여자들이다. 그것은 인형 같은 아름다움과 섹슈얼리티를 결합하여 유혹과 불길함(위험)을 상징하는 팜므 파탈의 계보에 속한다. 그의 또 다른 작품들은 세계 명화를 차용하여 등장인물에 구체 관절을 부여한 것이다. W. 부그로 같은 당대 아카데미즘의 대가들은 남성적 주체(남성 화가, 남성 관객)의 응시에 따라 배열된 여성의 신체를 보여준다. 작가는 단지 명화를 구체 관절 인형으로 번역 했다기보다는, 명작에 애초부터 내재되어 있는 가부장적인 시선-욕망-권력의 복합체를 두드러지게 한 셈이다. 그의 회화적 버전에서 나체로 유희하는 님프들이나 과도한 모성을 보여주는 여성들은 명화의 신화적 아우라를 벗어던지고, 그녀들이 그 자리에 그런 자세로 고정되어 있는 이유들을 명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전 | 10 next code 작가 워크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