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학산 프로젝트 | 11.1-11.23 | 심학산 등산로


파주 지역에 자리 잡은 심학산은 등산로로 유명하여, 지역주민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방문객도 많은 곳이다. 심학산의 등산로 일대에서 벌어진 이 프로젝트는 일산지역에 있는 푸르뫼 창작공간이 수년째 주최하고 있다. 2006년에 시작하여 올해가 3년째이고, 전시 기획과 진행에 서송, 장선영, 그리고 다수의 에듀케이터들이 참여하였다. 15명의 참여 작가는 대부분 파주와 일산지역에 거주하는 30대 중반의 화가와 조각가들이다. 대자연 속에서 수행되는 전시이니 만큼 초기에는 자연을 중심에 두었지만, 올해에는 관객 참여 및 인공성에 방점을 두었다. ‘자연미술’, ‘야외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다른 지역과 단체의 행사와 나름의 차별성을 확보하고, 예술이 자체적으로 가지는 인공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공미술로서 관객 참여의 계기를 높이고자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연과의 조화는 중요하다.

등산로 입구에 걸린 작은 플래카드에는 행여나 자연을 찾은 사람에게 누를 끼칠까봐,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시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며,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재료를 사용하거나 전시 이후 원상 복구 하겠습니다’고 써있다. 행사기간이 계절이 바뀌는 기간이 포함되어, 설치 당시에는 자연 속에 묻혀 있다가 낙엽이 지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품이 놓이는 공간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추이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이 전시는 등산로 주변에서 열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동선도 설치의 요소로 활용한다. 임선규는 소의 목에 거는 방울을 밧줄에 묶어서 나무마다 걸어놓았다. 재료와 형태면에서 눈에 띄는 듯 마는 듯 자연스럽고, 걸어가면서 한 번씩 당겨보는 재미가 있다. 이영호는 금속선으로 나무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 설치하였다. 실제 나무와 구조적 동형성을 가지는 추상적인 구성물로, 주변의 자연과 대조되면서 조화를 이룬다. 많은 작품들이 눈에 띄기 위해 나무를 이용한 설치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낙엽이 지고 나서 더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다. 김석희는 가시철망을 둥글게 엮어서 조화들을 끼워놓았고, 이동호 여러 색깔의 잠수함을 나무에 메달아 놓았으며, 임성필은 색색깔의 작은 인형을 나무에 걸어놓았다. 서송은 주사위 모양의 입방체를 나무 사이에 설치하였다. 오제훈은 이모티콘 같은 것을 나무에 설치하여, 마치 숲과 대화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성재는 나무를 자르고 부분들로 조합하고 채색하여 인공성을 두드러지게 하였다. 야외 설치 작품이 가지는 인공성은 부피가 너무 크지 않고, 견고할 때 빛을 발한다. 그러나 손현호와 우선경의 작품은 야외 전시로는 취약한 재료를 사용하여 비온 날 다음에 방문했을 때 많이 망가져 있었고, 조아미의 모빌 작품은 산바람에 줄이 심하게 꼬여 있는 상태였다. 영구설치물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에만 전시되는 것이라도, 작품의 물리적 견고성을 충분히 확보되어야만 할 것이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을 거쳐 가며 다양한 기후 조건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작품의 지속적인 보수가 필요하다. 참여 작가들은 전시 오픈 후에도 최소한 두 세 번씩은 와서 관리를 했지만, 애초부터 물리적인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예술 작품으로 보여지기는 커녕 시각적 공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성웅의 철망으로 만든 꽃이나, 물결모양의 금속판 위에 바다 생물을 끼워놓고 이진희의 작품, 갈라진 바위를 꿰매는 바늘을 보여준 최은동의 작품은 견고해 보였다. 작품이 견고하기 때문에 관객의 참여를 보다 순조롭게 이끌 수 있었다. 가령 이성웅의 작품에서 철망 꽃의 심은 둥근 스테인레스로 되어있는데, 금속의 반사면은 관객의 모습을 비롯한 주변을 품어내며, 이진희의 작품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물고기를 움직여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야외 전시 뿐 아니라, 전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함께 진행한 연계 행사가 돋보인다. 여기에는 에듀케이터와 함께하는 전시 투어, 작가와 함께하는 창작체험, 심학산 생태 교실 등이 있다.

심학산 프로젝트는 작품이 생산되고 소통되기 위해 필요한 맥락을 창출하려는 부분이 훌륭하다. 이 프로젝트를 주최한 푸르뫼 창작 공간은 지역에 기반을 둔 미술 연구소로, 전시, 작가연구, 교육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인근에 작업실이 많은 지역의 특수성을 활용한 것이다. 우리의 미술문화는 전시회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전시가 제대로 소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물밑 작업들은 또 다른 전문 능력을 요구하는 영역이다. 푸르뫼 창작 공간은 2007년에 고양시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업실 탐방을 진행하였고, 연구소 자체 내에서 작은 전시 공간도 운영한다. 2007년에는 나무를 소재로, 2008년에는 돌을 소재로 한 조각전도 열었다. 작업실 탐방 프로그램은 작품의 생산자가 관람자에게 자산의 작품을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며, 이를 컨텐츠로 만들어 자료화하며 홍보하고, 더 나아가 작품 판매까지도 목적으로 한다.




작품의 창작과는 구별되는 이러한 매개 과정은 기획자 뿐 아니라, 훈련받은 에듀케이터들이 필요하다. 푸르메 창작공간에서는 2006년에 아트 에듀케이터 양성교육을 실시하여, 다양한 현장에 투입하였다. 그들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현재 다른 일을 하는 이들로, 지역단체에서 교육을 맡고 있기도 한 자원봉사자들이다. 무작정 소통과 참여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참여에 필요한 구체적인 인적, 물적 자원들을 수급하고 배치하는 조직화된 활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심학산 프로젝트는 가족 단위 방문객 뿐 아니라, 지역의 각급 학교와 단체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푸르뫼 창작 공간이 자리한 지역은 인근에 많은 작업실이 있는 곳이지만, 지역주민들에게 괴리감을 주는 ‘예술가 마을’ 같은 타이틀의 사용을 배제하고, 주민을 상대로 한 미술 수업을 시도 한다. 작품을 둘러싼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어느덧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획자들은 심학산에 들른 어느 노부부가 ‘평생 미술 작품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고 전해준다. 작업을 업으로 삼는 작가들을 비롯하여 미술계 종사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문화 예술적 불모성은 작가들에게 피드백 되어 외롭기만 한 작업이 계속되는 것이다. 미술대학에서도 작가가 되는 법에만 치중할 뿐, 예술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좌표계 속에 놓이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작품과 작가를 공공영역에 매개하는 작업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동시에 지역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푸르뫼 창작 공간은 비롯 소수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러한 전문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 현재까지는 작가와 이론가로 이루어진 부부가 중심이 되어 있지만, 사업의 지속성과 탄력을 위해 더 많은 동조세력(?)을 규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지역 주민 뿐 아니라, 작가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운영하였다. 그동안 지역성과 자연미술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였고, 일반인과 만나도록 주선하였다.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 프로젝트와 전시에도 참여하는 식이다. 고독하게 작업하는 이들과 문화예술에 목말라하는 대중을 연결시키는 일은, 대중 앞에 설 준비가 돼있는 작가와 작품 앞에 설 준비가 돼있는 관객들을 동시에 생산하는 일이다. ‘생산은 주체를 위한 대상만이 아니라, 대상을 위한 주체도 생산’(마르크스)해내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가의 말대로, 예술은 재능 있는 예술가 뿐 아니라, 재능 있는 관객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재능은 선천적인 것 못지않게, 후천적인 학습과 계몽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특히 미술이 공공영역으로 나올 때 작품만 덜렁 던져 둘 것이 아니라, 보다 전문화되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내밀한 경험을 시민들의 공유 재산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출전 |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