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란 전 | 2008.11.28-2008.12.16 | 표 갤러리
하얀 백합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붉은 고깃덩어리들이 주렁주렁 메달려 있다. 한 떨기 꽃 같은 순결한 신부의 드레스 밑자락을 적시는 것은 핏물이며, 핏물은 고깃덩어리로 서서히 변모한다. 송미란의 작품에서 몸통으로부터 날카롭게 잘려나간 정체불명의 붉은 살코기는 소리 없이 경계를 오염시키는가 하면, 세상을 채우는 공기처럼 도처에 편재해 있기도 하다. 신부의 드레스로 상징되는 결혼제도, 진정한 만남이 있기나 한 것일까를 의혹에 붙이는 남녀 간의 이별, 누구도 채워주지 못한 욕망을 스스로 충족시키려 하는 고립된 공간,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도시의 야경 속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고깃덩어리이다. 송미란의 그림에서 붉은 덩어리는 베어진 단면이나 핏물이라는 즉각적인 형태로 인해 개체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깊은 상처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상처는 의식되지 않은 채 주체를 잠식한다.

[wound in marriage] 시리즈에 나오는 핏빛 웨딩드레스의 주인공은 얼굴을 화면에 나타내지 않으며, 붉은색 카펫에 끌리는 웨딩드레스 밑자락이 붉게 물들여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이나 자신이 앉아있는 의자가 물컹거리는 살코기의 형태를 갖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송미란의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에서는 살코기와 웨딩드레스 등,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이 병치된다. 칼로 베어진 상처 같은 육체의 구멍에서 모체의 분비물과 함께 바깥으로 밀어내어진 인간은 태생적으로 트라우마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결혼 같은 제도에 의해 원초적 트라우마는 사회적인 형태를 갖추게 될 뿐이다. 절단된 육체, 이별, 고립, 자위 같은 이미지는 여성의 욕망이나 희생을 의미함과 동시에, 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보다 깊은 상처, 즉 무의식적 층위의 그것을 다루고 있다. 상처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이루는 방어막의 상실에 의해 일어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의한 물리적 결과이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외부로 분출되는 힘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도 하다.
전자가 실제적인 상처에 의한 공포를 낳는다면, 후자는 주체의 과도한 욕망에 의한 것이다. 송미란의 작품에서 응시하는 눈이 살코기의 질감을 가지는 것을 욕망과 상처의 인과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외상의 실제성 대신, 그것의 환상성을 강조하는 프로이트는 유아가 자신이 온전하게 향유할 수 없을 만큼의 넘치는 욕망으로 인해 외상을 입는다고 말한다. 환상이 펼쳐지는 가상의 무대는 개인의 심리적인 공간으로 전치되며, 욕망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기관, 즉 가상적 육체에서 증상으로 나타난다. 주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욕망은 환상과 불안을 낳는다. 존재의 한계, 그 통합성의 와해는 죽음에까지 이르는 삶의 욕망, 삶에 드리워진 죽음을 예시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모호한 공간 속에 환상이 자리하며, 여기에서 일상적인 친숙함은 기괴함으로 변화한다. 환상은 ‘현실을 도려내고 거기에 부재하는 것, 말해질 수도 없고 보여 질 수 없었던 것’(로즈메리 잭슨)을 드러낸다.
출전 | 퍼블릭 아트 200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