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시 <국제 판화의 흐름전>을 주최한 홍익판화가협회는 그 동안 <한호 현대판화교류전>과 <한중 현대판화교류전>(각각 2007년)과 같은 국제전 형식의 전시를 이미 치러낸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는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출신 판화작가들 116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형식으로 열린다. 세부적으로는 미국의 네바다 주립 대학교, 인디애나 주립 대학교, 필라델피아 챌튼햄 프린트 협회, 일본의 동경 예술 대학교, 다마 미술 대학교, 중국의 천진 미술 학원을 비롯한 한국의 홍익 판화가 협회 출신 작가들이다. 차후로도 이런 국제 교류전 형식의 전시는 더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계기로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적인 현대판화의 경향과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되리라 본다.

이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면면을 대략 다음과 같이 주제별 혹은 경향별로 구분해볼 수 있을 듯싶다. 즉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 사물과 사물현상에 대한 관심, 자아와 자기정체성에 대한 관심, 도시와 사회 그리고 문명사적 비전, 공간과 구조에 대한 관심, 소통과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 차용의 경우, 그리고 재료와 기법으로써 판화의 확장을 꾀한 경우다. 이 주제나 경향들은 서로 구분되면서도 상호 관계적으로 물려있다. 이를테면 자아와 자기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도시와 사회 그리고 문명사적 비전으로까지 확장되고, 도시와 사회의 문제의식은 소통과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연이어진다. 해서, 이 주제나 경향은 다만 외적으로 두드러진 현상에 따른 것으로서, 실상 그 이면에선 서로 연결된 경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 먼저 자연과 생태와 관련해서는 대략 김현주, 이청자, 정수성, 차재홍(이상 꽃), 고숙희(연꽃), 민광식(요강꽃), 김선영(나비와 엉겅퀴), 이은옥(나비와 꽃), Koji Saigusa(나비, 낙엽, 자갈), 서길종(담쟁이), 김정순(고추), 송대섭(개펄), 신혜영(병 속에 갇힌 물고기), 장영숙(비와 물방울), 장이향(새), 정춘자(무당벌레), 안유선(고양이), Cynthia Osborne(돌고래), 최성렬(화석), 김소희(풍경), Koichi Yamamoto(심의적 풍경), 박성미, 이성구(이상 자연을 추상화한), Ogawa Kouichi(빛을 추상화한), Yukiko Inagaki(존재에 내재된 에너지의 흐름을 추상화한), Mitsuru Hiraki(계절감각을 형상화한), Kimiko Moyoshi(나뭇결의 옹이 부분에 추상적인 문양을 대입해 그린), Xu Suixin(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Marilee Salvator(현미경을 통해본 세포나 미생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Andrew Au(생태파괴에 대한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보이는 기계곤충들), Beauvais Lyons(일종의 신화적 상상력에 연유한 변형동물들), Phyllis McGibbon, Kathryn Polk 같은 작가들이 포함된다.

여기서 자연은 단순히 소재적이고 재현적인 차원을 넘어 일정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데, 자연은 이를테면 생명의 원형을 상징하기도 하고(송대섭의 개펄), 생명의 순환원리를 암시하기도 한다(최성렬의 화석). 때로 자연은 추상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동양화의 수묵추상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자연의 침묵하는 소리를 떠올려주기도 하고(이성구), 빗방울을 형상화한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심플한 화면구성이 정적이고 관조적인 인상을 자아내기도 한다(장영숙). 그런가하면 자연은 존재 혹은 자아를 대리하는 일종의 메타포로서 기능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흙탕물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 재생하는 존재를 상징하기도 하고(고숙희), 고양이가 작가 대신 일상을 살기도 한다(안유선). 때로 자연은 이런 존재론적 메타포를 넘어 사회학적 의미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김현주의 꽃 그림은 단순한 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미디어 꽃으로 명명할 만 하다. 구겨진 신문과 꽃의 형상이 결합된 그 그림은 생태에 대한 관심이 현실적 맥락과 연동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기할 만한 사실로는 일본작가들의 경우,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여타의 주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연을 모티브로 하여 이를 추상적인 형식으로 환원하는 경우가 많다.





사물과 사물현상에 대한 관심. 주지하다시피 사물에 대한 관심은 내적으로 욕망과, 그리고 외적으로 자본주의 정체와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이렇듯 사물에 대한 내적 욕망과 자본주의가 생산한 상품에 대한 반응이 팝아트의 동력으로 작용했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 오브제나 패티시 그리고 키치와도 맞물리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대략 이하나, 정진경(그릇이나 용기), 조정성(병), 진보라(화장품), 최선주, 한윤정, 홍정우(도자기), Yuji Hiratsuka(모자와 우산) 같은 작가들이 주목된다.

이 가운데 이하나는 원래 바람을 소재로 한 작가로서, 작가의 그림에서 바람은 물리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사물에 대한 욕망과 같은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현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정성의 그림에서의 병은 일종의 성적인 메타포를 의미하는데, 이를테면 세로로 긴 병이 남성성을, 그리고 옆으로 퍼져 보이는 병이 여성성을 상징한다. 그런가하면 진보라는 화장대 위에 화장품이 놓여진 정경을 마치 도시의 마천루처럼 표현하는데, 거울에 반영된 상에 의해 이미지는 더 복잡해지고 더 심화된다. 또한 최선주의 그림에는 나무가 등장하며 그 나무에 무슨 열매마냥 각종 사물들이 매달려 있는데, 여기서 나무는 일종의 욕망의 나무로, 그리고 사물들은 꿈꾸는 사물로 부를 만 하다. 실제로도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그림들이 초현실적이고 무의식적이고 환상적인 비전을 열어 놓는다. 그리고 한윤정의 그림에선 기울어진 잔속의 커피나 밀크가 고양이로 변형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상상이나 기억 속에서 사물들이 변태를 일으키는 경우로 볼 수 있고, 이로부터 일종의 자유연상기법에 대한 공감이 감지된다.


자아와 자기정체성에 대한 관심. 자아와 자기정체성이야말로 아마도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만큼 자아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고 자아를 통해 전달하는 의미내용도 광범위하다.

일종의 존재론적 자의식으로 고쳐 부를 수 있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고은강, 곽태임, 김규남(이쑤시개를 존재론적 상처를 상징하기 위해 도입한), 김미로, 박기훈(엑스레이로 투사된, 그리고 픽토그램으로 형상화된 인체), 박상아(의학서적에 등장하는 인체도상을 차용한), 성영경(자신의 무의식적 자아와 대면하는 경험을 표현한), 이경희(흔적을 통해 존재론적 자의식을 표현한), 이승일(공 空으로 존재론적 자의식을 함축한), 이시은, 이유정(어릴 적 살던 동네를 재현한), 정재원, 천영진, 한인순(사후세계를 상상으로 그린), Yoichiro Nishikawa(반영상), Yoshisuke Funasaka, Kou Jianghui(전통적인 수묵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Jiao Lei(재생과 윤회), Michael Barnes(머리에 변형돌기 같은 이물질이 자라는 그로테스크한 인물), Jeff Sippel, Shelley Gipson(불에 탄 흔적을 통해 존재의 트라우마를 표상한), Mark Hosford(해골과 피에로) 같은 작가들이 범주화된다.

이 가운데 고은강의 꼬치에 꿰여져 있는 사람의 두상이나, 선반에 정리된 신체의 파편들에서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전달된다. 그리고 동물과 사람이 결합된 일종의 이종 생명체에서는 마치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신화적 상상력과 함께 이를 지지하는 어떤 악몽과도 같은 비전이 감지된다. 그 이면에선 초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일종의 생물학적 변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곽태임은 기왕의 몬스터 시리즈로부터 주변적인 모티브로 소재를 확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몬스터로 상징되는 무의식적 자아로부터 일상적인 맥락으로 주제의식의 축이 옮아가거나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특기할 만 한 점으로는 작가가 기법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콜라그래피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정형화된 판 대신 직접 만든 판으로서, 판을 만들기 위해 차용된 이물질들, 이를테면 천 같은 소재의 표면질감이 고스란히 전사돼 고유의 물질감이 강하게 어필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감이 작가의 주제의식과도 부합해 보인다. 그런가하면 김미로는 위장을 통해서 존재론적 자의식을 주제화하는데, 상호간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하나의 화면 속에 중첩시키는 방법으로써 이를 실현한다. 이를테면 추상적이고 패턴화된 문양과 구상적인 형태가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삼투되는데, 이로부터 시지각적 현상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시점에 대한 문제의식(이를테면 시점이나 관점에 따라서 똑같은 대상도 다르게 지각되고 인식된다는)이 확인된다.





도시와 사회 그리고 문명사적 비전. 자아와 자기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특정 주체에 연유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대동소이한 탓에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고, 따라서 이는 현대인의 초상으로 부를 만한 공통분모로 나타난다. 결국 자아가 고립무원의 존재가 아닌 한 사회적 주체일 수밖에 없고, 존재론적 자의식과 사회적 주체는 상호 내포적인 관계에 놓여져 있다 할 것이다.

때로 역사의식이나 문명사적 비전을 아우르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강숙영(현대인의 소외된 초상으로서의 피에로), 박성원, 신상우(희화화된 인간), 오현철, 이석환, 최성욱, 권혁재, 배원준, Noriaki Kondoh(전통적인 바벨탑의 형식을 빌려 일종의 진화의 탑, 문명의 탑을 형상화한), Du Chao(일상성을 테마로 달라진 삶의 환경에 대한 반응을 표현한), Sun Lina(희화화된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욕망을 표현한), Zhang Wan, Zheng panpan, Fan Min, Li Wang, Zhang Xi, Aaron C. Base(유사고고학과 박물학을 연상시키는 환상적 비전), Erika Adams(최소한의 라인으로 표현된 얽히고설킨 인간군상을 통해 생존현실을 암시한), Jennifer Anderson, Shaurya Kumar(인도의 민속춤을 추는 무희들을 소재로 문명사적 비전을 예시한), Mariana Depetris, Ashley Nason(우화 형식의 캐릭터를 통해 인간존재를 풍자한) 같은 작가들이 주목된다.

이 중 박성원은 현대인의 무분별한 욕망을 비판하기 위해 일종의 말장난을 시도한다. 즉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을 웰바잉(well-buying)이라는 말로 고쳐 부르는데, 일부러 잘 살기를 잘 사기로 그 의미를 왜곡한 것이다. 자본주의 정체와 소비지향적인 사회 체제 속에서 잘 살기의 의미는 필연적으로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풍자한 것인데, 더욱이 잘 사기가 잘 싸기처럼 들려 그 비판적 의미는 더 강조된다. 그런가하면 이석환은 프라모델(조립식 구조로 된 장난감)의 형식을 빌려 자본주의 체제의 대량복제 시스템을 풍자한다. 조악한 민예품들이나 대량 복제된 전쟁도구들을 통해 관광이 상품화되고 나아가 폭력마저도 복제 재생산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Jennifer Anderson 역시 신체에 난 상처를 통해 합법적인 미명 하에 자행되는 전쟁, 살해, 폭력을 비판한다. 그리고 Zheng panpan은 중국의 전통적인 사실주의 내지는 현실주의 풍의 그림들이 돋보이는데, 희화화된 인물들을 통해 현대를, 일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을 형상화한다. 그런가하면 Fan Min은 노끈에 칭칭 감긴 목각인형(마리오네트)을 통해서, 그리고 Li Wang은 새장 속에 갇힌 새를 통해서 이데올로기나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군상을 비판하며, 제도에 길들여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풍자한다. 이와 함께 모닝커피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는 Zhang Xi의 그림에서는 커피 잔 위에 서린 김 속에 중국 역사의 편린들이, 그리고 일상의 조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데, 사적인 정황과 역사적인 현실을 매치시킨 작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특히 중국작가들은 자기 정체성 문제나 현대인의 변화된 삶의 조건에 대한 반응이나 반성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이는 아마도 오랜 사회주의 체제와 근래의 자본주의 체제가 합류되는 것에 따른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정체성 혼란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제도는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사람들의 의식은 자본주의화된 것에서 오는 일종의 불일치 내지는 부조화 현상 같은 것이다. 개인의 자기 정체성 문제가 사회적 제도나 그 현상과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공간과 구조에 대한 관심. 공간과 구조에 대한 관심은 각각 주관적이고 내면적이며 심리적인 공간경험,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도시 공간, 그리고 현실공간의 기하학적 환원과 추상적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집이나 도시 그리고 우주와 같은 공간 개념이 다름 아닌 삶의 장이라는 인식에 의해 지지되는 연유도 있겠지만, 대개는 공간이나 구조 자체에 대한 순수한 형식적 관심보다는 공간에다 일정한 메타포로서의 의미기능을 투사한 점이 특징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대략 강은진(일정한 고립감과 함께 마치 식물처럼 상상력이 자라나는 사적 공간을 주제화한), 남천우, 박예신, 오성희, 김수연, 김지혜, 윤세희, 석유선, 이민휘, 이종철(색면 콤포지션), 정미옥(기하학적 패턴과 옵아트를 연상시키는 반복구조), 한정원(도시의 정경을 항공지도 같은 도면의 이미지로 환원한), Ryuichiro Onuma(사이버스페이스), Hua Shaoying(도시의 변두리에 내재된 삶의 흔적), Evan Summer(기하학적 풍경), Nicholas H. Ruth(기하학적 풍경), Eileen Mcdonald, Jenny Robinson(도시 변두리에 건축 중인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통해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묵시록적 비전을 표현한), Kevin Haas(도시풍경) 같은 작가들이 주목된다.

이 가운데 김수연의 공간개념은 여타의 작가들처럼 일정한 상징적 의미기능을 수행하는데, 작가는 특히 이를 지지하기 위해 특정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셀 푸코의 전언으로부터 차용해온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즉 없는 장소, 부재하는 장소라는 일종의 모순어법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폐허가 된 공장지대의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자신의 나체를 전시한다는 낯선 만큼이나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일종의 세기말적이고 묵시록적인 암울한 비전이 예시되고 있다. 이는 실상 공해로 인해 치유할 수 없는 도시환경을 다룬 전작과도 일맥상통한 것이다. 그리고 볼록거울이나 오목거울을 통해 본 도시의 왜곡상이 일종의 심리적 정황과 함께 밀도감을 더해주는가 하면(윤세희), 건물의 벽체와 같은 일정 부분을 클로즈업한 경우 도시에 내재된 기하학적 형태가 두드러져 보인다(이민휘).


소통과 인간관계에 대한 관심. 한편으로 김중걸, 엄정호, Melanie Yazzie 같은 작가는 소통과 인간관계를 주제화한다. 이 가운데 김중걸은 이 주제를 지지하기 위해 언어의 집이라는 특정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실상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전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언어가 비로소 존재를 존재이게끔 해주고, 의미론적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끔 만들어준다는 말이다. 작가는 이 개념에 힘입어 언어가 올바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 즉 소통부재의 상태, 불통의 상태로 인해 마치 고립된 섬처럼 고독한 현대인의 소외현상을, 그 실존적 극한 상황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차용의 경우. 주지하다시피 차용은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분야에서조차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인 만큼 동시대 문화현상을 대변해주는 핵심개념 중 하나이다. 차용은 원전에 대한 경외감(오마주)과 함께 이에 대한 재해석(비판?)을 수행하는 이중적 개념이다. 차용은 이미지를 생산하기보다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태와 맞물려 있다. 원전을 숙주 삼아 이에 기생하는 논리, 원전에 개입하고 간섭하고 첨삭하고 수정하고 개작하는 과정을 통해 원전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부풀려 나가는 것, 원전의 의미를 해체해 전혀 다른 의미차원에 재배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민경아는 서양미술사와 조선시대 풍속화를 차용하고 각색한다. 그륀네발트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에 등장하는 종교적인 도상과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 속에 결합시킨 것이다. 그리고 하임성은 서양미술사 중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그림에 나타난 7명의 예언자들을 차용하고 이를 현대의 기계문명의 파편들과 중첩시켜 문명의 이기와 이에 따른 현대인의 무분별한 욕망을 비판한다. 그런가하면 정주은은 고구려 분묘벽화를 차용해 시간의 지층과 함께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존재의 결을 드러낸다. 그리고 조향숙은 심우(불교에서 소로 상징되는 본성을 찾아가는 삶의 과정을 그린)를 매개로 진아(眞我, 나의 실체)에 대한 자기반성적 수행을 꾀한다. 한편 윤성희는 18세기 제왕절개 수술도구를 재현한 의학 텍스트를 차용하는데, 무슨 살인도구 같고 고문도구 같고 폭력도구 같다. 이런 고고학적 의술에 대한 관심은 여성으로서의 존재론적 자의식과 함께 여성에 대한,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성에 대한 역사적 인식론과 연동돼 있다.


판화의 확장. 그동안 판화의 확장을 불러온 계기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강력한 계기로는 사진과 컴퓨터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판화는 인쇄의 역사와 맞물려 있고, 사진과 컴퓨터의 출현이 인쇄의 메커니즘을 바꿔놓은 것처럼 덩달아 판화의 생리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현대판화에서 사진은 사진전사기법의 형태로 기왕의 여러 판종에 널리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며, 컴퓨터에 의한 디지털프린트의 출현은 사진과 판화와의 경계를 눈에 띠게 허물고 있다. 사진전사기법과 디지털프린트는 이제 보편화된 현상인 만큼, 여기에서는 아날로그적인 방법론의 카테고리 내에서 판화의 확장을 꾀하는 경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김덕현은 페이퍼캐스팅을 통해 일종의 저부조 판화를 예시해주고 있으며, 김기창은 영상 위에 드로잉한 후 이를 다시 영상으로 재구현하는 식의 과정을 통해 정지화면과 움직이는 화면과의 상호 호환성을 꾀한다. 이서미는 일종의 팝업 형태의 판화를 통해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드는가 하면, 최종식은 그 끝이 동그란 젓가락 끝을 도장 삼아 찍어나가면서 형상을 만드는 식의 과정(그 자체 이미 탁본과 전각에서 예시된)을 통해 판화를 위한 도구로서 오브제를 도입하는 가능성에 대해 시사해준다. 그리고 임영길은 컴퓨터를 이용한 레이저커팅 기법으로 제작된 정교한 목판화를 선보인다. 12지신 시리즈, 흙, 물, 불, 공기를 소재로 한 철학적인 4원소 시리즈에 이어 근작의 5독부 시리즈가 이 프로세스를 통해서 제작된 것들이다. 특히 5독부 시리즈는 두꺼비, 지네, 거미, 뱀, 전갈과 같은 그 속에 독을 포함하고 있는 5동물을 소재로 한 것으로서, 이 동물들이 예상되는 나쁜 일을 미리 막아준다는 민간신앙에 착안한 것이다. 작가는 이 소재를 판화로 찍어내기도 하고, 아티스트북 형식으로 묶어내기도 하고, 여러 부수적인 오브제와 함께 설치하는 등 다변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판화의 소통적 측면을 강조하는 한편, 형식적으로 판화의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