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의 ‘월남에서 온 편지’전은, 지금은 주변화 된 사건--누군가는 왜 새삼 월남전이 문제인가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므로--을 통해, 역사의 망각을 대가로 성장해온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정체성을 들추어낸다.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에게 월남전은 록음악이나 영화로나 알려져 있지만, 그 전쟁은 64년부터 시작하여 65년 전투병 파견하고 73년에 철수할 때까지 8년 8개월 동안, 한국에서 32만명이 파병되어 5099명의 사망자를 낸 엄청난 전쟁이었다. 명분 없는 냉전의 싸움터에 동원된 이들의 비극은 국가 지도자들의 오판이 야기한, 한 때의 역사적 해프닝(?)으로 지금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전쟁이 미국과의 경제적 의존 관계 속에 물질적 성장을 일궈낸 남한 정권의 정치적 거래였으며, 그 이후로도 자국민의 희생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은 전례였다는 점이다. 역사적 과거 뿐 아니라 현재를 오고가는 임흥순의 작품은, 이러한 근본적인 경향이 지금도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알려준다.
단기간에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뜨거운 전쟁 대신에, 일상에 자리한 차가운 전쟁이 자리했을 뿐이다. 그의 작품에서 현재의 차가운 전쟁은 자본주의적 일상을 이루는 소비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뜬금없이 날아온 듯한 ‘베트남으로부터의 편지’를 우리가 숙독해야 하는 이유이다. 몇 년 전에 발표된 임흥순의 작품에서 파병용사들은 대개 성조기를 흔들어 대며 우익 궐기대회 등에 등장하는 다소 풍자적인 모습이었다. 이 전시에서 그들은 보다 내재적으로 접근된다. 작가는 2004년부터 베트남 참전 군인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왔으며, 공식적이면서도 사적인 기록들을 추적했다. 수집된 증거물들은 역사의 시간을 거스르는 물줄기 위에 드문드문 놓여 진 징검다리가 된다. 물론 그 징검다리는 일정한 간격마다 놓여진, 단단한 디딤돌이기 보다는 제각각의 간격을 가지며, 과감한 도약이 필요한 곳도 많다. 예술적 상상력은 이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발휘된다. 임흥순의 작품은 역사를 예술화거나 예술의 한 소재로 역사를 다룬다기 보다는,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고 있는 주요한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예술의 힘--발상이나 수단 양면에서--을 이용한다.
그의 작품에서 성장과 속도에 탐닉하는(또는 강요당한) 국가가 망각한 얼마 전 과거의 증거물들은 때깔 좋게 가공한 심미적 대상물보다 더 큰 환상적 현실적 울림을 주곤 한다. 작품 [아카이브a]는 전쟁기념물들과 다리 잘린 참전군인 K씨의 악몽을 대조시킨다. 그 아래에 박물관의 유물처럼 배열된 [아카이브b]에는 베트남 전쟁 관련서적, 교과서, 우표, 훈장 등이 놓여 있다. [승공통일의 길], [자유수호의 길] 등 70년대 문교부에서 발간한 교과서들이 가관이다. 그의 작품은 조악한 이데올로기적인 선전물에 미술도 동원되었음을 고발한다. 70년대 ‘한국 경제의 발전상’들을 그린 어용 그림들이 그것이다. 경제발전의 상징으로 간주된 경부고속도로는 작가에 의해 유화로 각색된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텅 빈 도로 가운데의 그린벨트에는 돌격 중인 군인의 실루엣이 잠재되어 있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과 고속 성장의 상징을 연결시킨다. 이러한 사물들이 ‘이런 것도 있다’는 식의 소재주의를 넘어서는 지점은, 그것이 고도성장을 위한 오직 하나의 길이 있는 양, 밀어붙이는 준 군사 및 토목 공학적인 발상이 21세기의 현재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도너츠 다이어그램]은 던킨 도너츠로 만든 다이어그램으로, 과거에 대한 공식적 기억과 현재의 사적 기록을 대조한다. 국방부 공식 기록의 경우 1966년에 벌어진 한 전투에서 의 사상자 수, 고엽제 후유증 현황 등이 있다. 개별 인터뷰에 의한 사적인 기록을 보면, 월남에 간 이유로 ‘무작위 차출’(어쩔 수 없이), ‘군인으로서의 의무’(복종과 사명), ‘경제적 어려움’(배가 고파서)의 순이며, 주입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미국에 보답)도 4%나 되었다. 화려한 외관 속에 소리 없이 건강을 잠식하는 달콤한 도넛의 원환에는 죽음의 기록이 각인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상의 고리는 등고선 형태의 모형과 도표로 그려진 사망자와 전상자의 부위별 통계에도 나타난다. 여기서는 군복의 얼룩무늬가 연상의 연결고리가 된다. 껌이나 초콜릿 등, 당시에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흔해빠진 것들과의 대조는 설치작품인 [귀국박스-무명용사 기념비]에도 드러난다.
그것은 박스 앞에 껌으로 만들어진 야자수 기념비, 그 위에 슬라이드 프로젝션 되는 당시의 기념사진으로 이루어진다. 박스에서는 동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폐가전 제품을 수거한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종이 박스, 씹다 버린 껌, 소음 등은 무언가를 소중히 기념한다는 분위기가 전혀 없다. 기둥과 박스 위로 투사되는 사진은, 오브제의 거리 차이에 따라 투사된 사진의 일부만 초점이 맞아 흐릿해진 기억을 암시한다. 사물과 이미지의 몽타주에 의해 드리워진 그림자는 공백으로 남겨진 시공간의 간극을 일깨운다. 박스는 베트남에서 귀국할 때 병사들의 물건을 담아오던 것이라고 한다. 작가에 의하면 계급마다 귀국박스의 크기는 달랐고, 그 안에 깡통, 초콜릿, 껌, 커피 등 당시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물품이 들어있었다. 귀국 박스는 미국의 일상문화가 들어오는 창구가 되었던 것이다. 장교의 귀국박스 경우, 일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이 들어있었다.
이때부터 도입된 새로운 물질문화는 현재 수거대상인 흔해 빠진 물건들이 되어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음은 당시의 결핍과 비교되는 현재의 과잉을 상징한다. 소음에는 민방위 훈련 경보음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가상의 적을 향한 훈육과 일상의 소비 생활을 이물감 없이 공존시키는 현실 문화를 일깨운다. 껌으로 만든 야자수는 이국적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곤 했던 습속을 풍자한 역설적 모뉴먼트이다. 설치 작품 [한강의 기적]에서도 현재와 과거는 중첩된다. 라면 박스로 만들어진 산타클로스는 베트남 공군 기지에 설치했던 미군의 장식물에서 따온 것이다. 박스는 여기에서도 어디선가 날아온 ‘선물’처럼 등장한다. 미군들은 전시 중에 맞은 성탄절에 썰매 끄는 사슴대신 폭격기를 배치했다. 당시에 하늘에서 쏟아졌을 폭탄들과 성탄 선물의 아이러니한 교차는 한강의 불꽃축제와도 겹쳐진다. 그것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념비들을 위해 오늘도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는--용산 참사에서 알 수 있듯, 실제로 ‘전사’하기도 하는--사회적 약자를 떠오르게 한다.
임흥순은 이 전시에서 박스, 은박지, 껌 같은 일회용 오브제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일견 근사해 보이는 과거와 현재의 장면들을 허접스러운 것들로 소격시킨다. 이미지 북인 [꿈]과 사진을 긁어 드로잉 한 [전쟁구술 사진]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또 다른 방식이다. [꿈]은 참전 군인의 인터뷰 과정과 일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관객은 좌우로 나란히 배치된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면서 시각적이고 개념적인 연상의 고리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는 시각적 연상으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부분과 전체로도 연결된다. 오른 쪽 화면이 부분으로 나타나면서 궁금증을 자아내다, 다음 장의 왼쪽에 전체가 나타나는 식이다. 여기에는 어둠 속에서 무작위로 밝혀진 조명을 따라 전체 장면을 재구성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것은 후손을 위해 자신의 연대기를 고스란히 보존해주지 않는 역사가 나타나는 방식이다.

작품 [전쟁구술 사진]은 사진을 긁어 만든 드로잉으로, 한 화면에 두 가지 이미지/의미를 교차시킨다. 넘겨가며 보는 작품 [꿈]이 시간에 따른 서술구조(통시적)에 가깝다면, 한 번에 보여 지는 [전쟁구술 사진]은 공시적이다. 역사적 증거물들은 시공간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배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임흥순의 작품의 서사구조에는 많은 도약이 내재되어 있다. 작품 [편지 아카이브]와 [B면]은 감광지에 얹힌 사물로 드러낸 그린 전쟁 이미지, 위문편지, 엽서 뒷면, 사진 뒷면 등을 액자에 넣어 꽂아놓은 것이다. 그것을 굳이 뽑아서 보려하지 않는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 작품들은 편지, 사진, 유행 지난 대중문화, 무엇보다도 실재했던 사물에 의해서만 형태가 그려지는 감광지를 이용해 역사의 큰 그림을 이루었던 미시 사료들의 존재를 일깨운다. 임흥순의 작품에서 과거와 현재의 일상을 구성하고 지속시키는 사실의 단편들은 자신의 침묵을 깨뜨리고, 우리의 현재적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결정적 증거물이 된다. 이를 통해 예술가는 역사가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출전 | 경기문화재단 시각예술 부문 지원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