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매체와 새로운 매체-그 길항의 여정 전 | 4.11-6.13 | 영은 미술관


한지로 대변되는 전통매체와 컴퓨터로 대변되는 새로운 매체 사이의 역학관계를 다루는 이 전시는 양대 매체를 다루는 두 단체인 한국 한지학회와 한국 영상미디어 협회 주최(협찬-숭실대학교 BK21 디지털 영상 사업단)로 열렸다. 각 학회의 소속 작가들의 작품이 두 매체의 차이를 다루는 1부 전시에서 30점, 그리고 두 매체 사이의 교차와 종합을 모색하는 2부에서 35점이 출품되었다. 필자가 본 전시는 2부에 해당되는 것으로, 매체-반매체-합매체 라는 부제가 걸려있고, 양 매체 사이의 차이를 넘어서는 지평을 지향한다. 전시는 영상과 설치 등, 뉴미디어 작품이 주로 전시된 어둑한 1층 전시장과 자연광이 들어오는 2층의 한지 작품 군으로 나뉘었다. 영문 모르고 들어간 관객에게는 서로 다른 전시로 보일정도로 양 공간은 이질적이다. 양 매체의 차이(1부 전시의 주제)도 아닌 교차점(2부 전시의 주제)을 모색하는 장이기에, 이러한 이질성은 당혹스럽다. 1층에도 한지를 이용한 작품이, 2층에도 뉴미디어 계열의 작품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양자의 접점이 전시라는 형식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말이다.



전시의 담론을 뒷받침해 줄 수 있을 만한 학술 세미나도 전시 마지막 날에야 열려, 두 달 가까이 되는 기나긴 전시 기간 동안 그곳에 들른 관객들이 전시 기획자 및 참여자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을 작품이나 담론의 차원에서 얼마만큼 공유할 수 있었는지 회의적이다. 올드미디어든 뉴미디어든 간에, 미디어라는 것이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때, 매체라는 단어가 두 개나 들어간 전시에 그 맥락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이러한 아쉬움이 전시된 개별 작품이나 발표된 담론 적 차원의 흥미로움까지 무화시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기획자와 작가들이 제시한 양대 매체간의 관계를 찾아내야 하는 것은 철저히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다. 먼저 뉴 미디어 계열의 작품이 주로 전시된 1층 전시장에는 서로 구별되는 두 세계를 병치하거나 교차한 작품이 눈에 띈다. 새들의 움직임 같은 아날로그적 운동을 디지털 기술로 가시화한 작품(오경수), 중첩된 화면으로 시간의 흐름을 대조한 영상(심철웅)이 그것이다. 그 다음은 전자매체가 가지는 상호작용성을 적극 활용한 경향으로, 관객과 가상의 테니스를 치게 하는 인터랙티브 설치(송기원), 건반 키보드를 두들기면 이에 상응하는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화면(임가은, 양현록)이 그것이다.

관객이 다가가면 영상이 떨리거나, 선명해지는 식의 작품들 역시 뉴미디어의 대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상호작용성이 부각된 작품이다. 그러나 뉴미디어 계열의 전시에서 전형적인 한계가 이 전시에서도 발견되는데, 상호작용의 효과를 내기 위해 새롭게 고안되어야 하는 장치들에 투자하는 작가의 노력에 비해, 그 효과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는 점이다. 반대로 단순한 반작용이나 놀이적 측면을 넘어서, 고도의 개념이고 인식론적 문제를 작품의 형식--가령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램 등을 통해--속에 관철하려 할 때 작품은 너무 난해해지고, 소통의 또 다른 벽이 생긴다는 점이다. 때로는 뉴미디어가 어두운 장소에서 상영되는 영화 같은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서, 관객을 스펙터클의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있다. 영상이 설치와 결합될 경우에서도, 그렇게 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 없이 장식적 차원에서 늘어놓은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1층 입구에 ‘몸짱’ 등, 현대 대중문화의 키워드들이 빼곡이 새겨져 작품은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서 담아내는 미디어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여러 굵기의 띠에 세로로 씌여진 글자들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듯하다. 그것은 문자가 내포한 평면적 시각성을 입체적 촉각성으로 전화시킨 작품으로, 전통매체와 새로운 매체의 특징이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이 전시에서 전통매체로 제시된 종이는 동양에서 그것이 처음 발명된 이후, 인쇄와 결합하여 인류 문화사에 있어 거대한 역할을 담당한 미디어였다. 그것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청각의 세계 곧 구술적인 사회를, 시각의 세계 곧 문자적 사회로 변모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전자가 몸 전체와 관련되는 촉각성에 호소한다면, 후자는 시각에 집중된 감각의 전문성을 낳았다. 구술성/문자성, 청각성/시각성의 대조를 낳게 한 종이(와 인쇄) 매체의 힘에 대한 논의는 미디어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의 [구텐베르크 은하계]나 월터 옹 신부의 [구술성과 문자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의 논지에 의하면, 종이와 인쇄를 통해 근대의 중앙집권적 국민국가, 그리고 계몽과 이성, 과학과 산업이 확립되고 확장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전자매체는 근대의 선형성을 넘어 장(場)으로 변모한다. 전자매체는 즉시성과 상호작용성으로 근대적 주체의 세계를 넘어선 지구촌을 형성하여, 다시금 문자 이전의 구술적이고 촉각적인 문화를 부활시켰다. 시각 중심의 근대문화에서 금기시된 촉각성은 오늘날 최첨단 미디어가 관심을 가지는 감각이 되었다. 2층 전시장의 많은 작품이 종이와 통상적으로 연관 지을 수 있는 평면성과 시각성을 넘어 촉각성을 잘 살리고 있다. 관객들에게는 종이에 내재된 촉각성은 손에 닿는 페이지의 느낌 뿐 아니라, 어릴 적 종이죽을 주물러대며 미술 숙제를 했던 추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촉각성이 새로운 미디어와 내재적으로 연관되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제작 방식과는 달리, 대부분 벽에 일괄적으로 붙어있는 작품의 배열 양식은 전체적으로 볼 때 촉각성을 다시금 평면적 시각성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다. 뉴미디어가 아닌 작품도 설치의 방식을 통해 촉각성과 상호 작용 성을 극대화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화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통나무에 한지를 겹겹이 발라 만든 모형에 색을 칠해 고목의 느낌을 잘 살린 작품(한기주), 한지를 꼬아 리드미컬한 결을 만든 작품(박경주), 한지로 점자 같은 촉각성을 살린 작품(조윤경), 닥종이로 고무신 자국을 낸 작품(김재선)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작가의 몸과 상호작용하는 재료의 촉각적 성질이 잘 살려진 작품이지만, 마치 회화와 같은 평면적인 전시방식으로 인해,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소극적인 올드 미디어의 단계에 머물러있다. 사실, 한지가 단지 재료의 차원으로만 사용된다면 미디어라는 속성이 약화된다. 무엇보다도 한지는 파피루스나 양피지와 달리, 인쇄와 비로소 결합할 수 있는 양질의 종이이다. 동양에서 처음 발명된 종이는 인쇄라는 생산 방식과 결합하여 근대의 산업문명을 낳고, 현대의 전자매체에 근거하는 탈 산업사회를 열었다. 물론 현대가 근대라는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듯, 뉴미디어에도 근대의 매체(종이와 인쇄) 논리가 내재해 있다. 누구도 전통성 그자체로만, 현대성 그자체로만 살아갈 수 없다. 전통은 선택과 변형을 거쳐 현대에 그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전통을 무너뜨렸던 이성과 계몽, 과학과 기술 역시 전통이 된다. 시간이 가속화되기 시작한 근대는 ‘새로움의 전통’이라는 역설적 표현을 낳았다. 또한 전통을 호출하는 것은 색다름을 요구하는 현대의 압력에 의한 것일 수 있으며, 전통이 완전히 와해되어 버린 것 같은 당대에 진보주의의 관점에서 전통이라는 맥락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듯한 것들이 근대에 ‘만들어진 전통’(에릭 홉스봄)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뉴미디어의 근간을 이루는 컴퓨터의 무한 복제의 원리는 근대적 미디어(종이와 인쇄)에 이미 내재해 있다. 복제는 거울과 같은 선형적 반사 원리에 기초한다. 전자에 해당되는 작품으로, 동일한 크기의 평면들에 만화 캐릭터를 반복해서 프린트한 임승률의 작품이다. 후자에 해당되는 것이 웹 카메라 등을 동원하여 관객을 비추고 변형시키며 그 심리적 차원을 탐색하는 신은주, 김동호, 김규정의 작품이다. 전자거울에 내재된 나르시시즘은 근대적 주체를 낳은 거울보다 더 불안정하다. 뉴 미디어 계열에 반영된 인간상들은 실재보다는 허상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가령 이창, 최승일의 작품 [Homo Oblitus의 투구]처럼 머리뼈와 투구 모양 등으로 끊임없이 변형되는 연기 같은 형태의 인간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근대적 문자성에 의해 구축된 주체는 연기처럼 흩어지고 망각된다. 근대 문화를 낳은 종이는 당시에 최첨단 미디어였다. 그것은 동양의 발명품이었지만, 인쇄 메카니즘을 통해 산업과 결부시킨 서양에서 비로소 가공할만한 물질적 생산력으로 전화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물질문명은 근현대의 압축적 성장을 거친 동양에서도 공유하는 전통이 되었다. 특히 서양의 알파벳과 같이, 인쇄라는 메카니즘과 결합하기 용이한 표음문자를 가진 한국의 문화적 전통에서, 종이나 컴퓨터로 대변되는 매체 계 사이에는 흥미진진한 인터페이스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출전 | 경기문화재단 미술부문 지원 사업 모니터링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