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웅의 작품은 동화적인 환상과 그것이 주는 포근함이 특징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뜯어보게 하기 보다는, 함께 동화되고 싶은 즐거움과 편안함을 준다. 그의 작품은 직시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현실이 지배하는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 달콤한 상상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동승하기를 권한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무판을 조립하고 여기에 밝은 색채가 가미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여행의 메타포가 강한 소재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처음부터 밝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금속 공예를 전공한 그가 사용했던 금속 소재의 인물들은 모노톤으로 표현되며 주변의 환경과 겉도는 외로움을 품고 있었다. 최근 2-3년 동안 작업에 집중적으로 사용된 나무는 금속의 번쩍임과 무거움, 그리고 색채의 한계를 넘어 무광의 담백함과 화려한 색채, 무엇보다도 작업의 수월함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작품은 평평한 캔버스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 목재를 오려서 짜맞춘 독특한 구조 위에 구현되어 있다. 이미지에 맞게 목재가 오려져 조립되는데, 작품에 따라서 8층까지도 올라간다. 복잡한 외곽선이 있는 세부 작업은 실톱으로 제작된다. 그리기보다는 만드는 작업에 방점이 찍혀진다. 가구 제작하는데 많이 사용하는 자작나무 목재를 자르고 오려 붙인 다음 색을 칠한다. 그 위에 다시 조각을 하여 색다른 질감을 주기도 한다. 붙이고 짜 맞추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의 층위는 점차 두터워지며, 화면 위에는 조명에 따라 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평면위에 입체를 표현하거나, 오브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평면들이 중첩되어 이미지가 합성된다. 그 위에 나무 판들이 얹혀 질 배경 화면은 종이에 그리고 색을 칠해 나무에 붙인다. 그림처럼 한 평면에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독립된 판들이 쌓여지는 구조는 단편들이 연결되는 기억의 메카니즘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번 전시의 부제는 ‘봉봉bonbon’이다. 불어로 ‘사탕’이며, ‘좋다’는 의미도 있다. 박현웅의 작품에서 풍선은 사탕이나 꽃다발과 비슷한 계열이며, 자동차나 이국적인 풍경들과 함께 나타난다. ‘봉봉’은 ‘빵빵’ 거리는 자동차, ‘붕붕’ 날아오르는 풍선의 이미지와 동음이의어적인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풍선이라는 소재가 그의 작품에 처음 등장할 때만해도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 시리즈로 되면서 점점 커졌다. 풍선은 실제, 또는 가상의 여행을 떠날 때의 부풀어 오름이 가속화된 것이다. 풍선은 다양한 크기와 색깔, 각도로 배치되어 있지만 원형이라는 통일적 형태 때문에 화면에 운동감을 준다. 그것은 마치 연속 동작이 구현된 것처럼 고정된 화면에 동감을 부여하는 장치이다. 공간 여기저기를 연속적으로 점유하는 그것은 리드미컬한 시간성을 내포한다. 풍선은 종종 화면 밖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그것은 유쾌하게 경계를 넘나드는 여행의 이미지이자, 상상의 자유로움을 예시한다.

풍선은 연기나 향기처럼 공간으로 퍼져나가며, 입안 가득히 녹아나는 달콤함과 연결된다. 박현웅의 작품에서 풍경은 다양한 감각에 동시적으로 호소하는 공(共)감각성을 지닌다.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이미지에 부착되어 있는 풍선은 고정된 사물의 무게를 덜어 내고 상상으로 변모시킨다. 줄에 매달린 다채로운 풍선은 꽃다발을 연상시키며, 꽃이 가지는 축제적인 활기는 색색의 풍선이 가지는 역할과 비슷하다. 그의 작품에서 꽃이나 풍선은 자동차와 연결되어 여행을 시작하는 이의 부푼 설렘을 가시화한다. 풍선이나 꽃다발을 달고 있는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는 단적으로 여행을 상징한다. 안팎의 다양한 꽃과 풍선처럼 자동차 역시 다양하다. 세계의 각 도시를 굴러다니는 지역적 색채가 강한 자동차들이 컬렉션된 것처럼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작품 속 자동차들은 뉴욕의 노란 택시부터 단종 된 지 오래인 한국의 삼륜차까지 공간과 시간을 망라한다.

그러나 차 안에는 운전사나 승객이 없다. 자동차들의 형태와 색채는 대체로 사실에 충실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나 장면을 재현하는 것을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현웅의 작품에서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생각 중의 인물, 또는 상상 속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변화된 환경을 음미하는 여행자의 입장이 반영된다. 어떤 인물이 탈 것 위에 있는 유일한 작품은 [보물단지]이다. 분홍 스쿠터를 탄 소녀 뒤로 풍선들이 화면 바깥까지 날라 간다. 보물단지는 다름 아닌 작가의 딸이다. 어린 소녀에게 상상과 실제는 완전히 일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어른의 여행은 반추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여행을 자주 다니며, 갈 때 마다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는다. 작품 제작은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떠나는 내면 여행이 된다. 기억과 회상의 산물은 실제의 장면이 부분적으로 발췌되고 병치되며 결합된다는 점에서 꿈과 무의식, 그리고 환상의 경로를 따른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페인 남부 쪽 안달루시아 지역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작품 [그라나다 책방]에서는 화면 위와 좌측에 이국적인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푸른 잔디 구름, 예쁜 차와 화면 바깥까지 떠오르는 풍선은 그림 그자체로 남아 있는 여행지의 장면을 표현한다. 작품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에서 여행지의 소재들은 보다 역동적으로 등장한다. 건물, 돌 포장길, 산, 계단, 언덕 등이 상상 속에서 재결합되며,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거대한 커피 잔에 담긴 구름 떠 있는 하늘과 전면의 검은 고양이는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통로들은 여행이 가지는 미로 같은 속성을 대변한다. 작품 [Ronda-론다에서의 산책]은 빨간 지붕에 하얀 벽, 벽돌과 계단, 식물 같은 이국적인 소재 위로 노랑 꽃다발이 솟아있다. 꽃다발은 중력을 작용을 받는 무게를 지닌 모든 사물들을 화면의 경계선 너머까지 상승시킨다.

물론 그의 작품에는 이국적인 풍경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풍경인 경우, 과거의 모습에 경도되어 있다. 향수를 자아내는 꼬불거리는 노랑 황톳길, 달동네의 허름한 골목이 가지는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기억과 추억이라는 기조가 유지된다. 여행은 명확한 목적지를 가지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것은 확정된 것이 없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미지의 곳으로 떠난다는 점에서 반복된 일상과 차이가 있다. 일상의 고정성과 여행의 유동성, 즉 기계적인 일상의 따분함과 미지의 여행이 주는 설렘의 대조인 것이다. 실제로 떠날 처지가 안 되면 제자리에서라도 떠나기를 바라는 것이 현대인이다. 무엇보다도 작업은 여행의 핵심적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일상과 여행은 극과 극에 놓이지 만은 않는다. 여행 후에 돌아올 일상이 없다면, 여행 자체도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 유목적 여행은 정착할 곳이 불확실한 유랑민이나 이주민의 처지와는 거리가 있다. 여행은 정착민의 특권이며 사치이다. 삶 속의 예술 역시 넘쳐흐르는 것, 꽃다발이자 불꽃놀이 같은 차원을 가진다. 예술이 가지는 사치는 축적하고 억압하는 물질적 사치가 아니라, 쓰고 교환하는 상징적인 사치이다.

일상이 코드화 될수록 여행에 대한 욕구도 커지며, 시공간을 압축시키는 현대의 획기적인 네트워크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일상을 떠남과 떠남 사이의 작은 휴지기로 간주하는 21세기의 유목민도 늘어나고 있다. 구경꺼리가 제공하는 쾌락은 현대의 군중을 특징짓는다. 세계의 유명한 관광지는 소비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다. 지나가면서 보는 장면들은 그 무엇이나 심미적일 수 있다. 그래서 무사심성은 미의 근본적인 속성으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여행은 새로운 스펙타클을 탐욕적으로 전유하는 관광적 소비를 넘어, 자신을 낯선 맥락에 재배치함으로서 성찰적 계기를 부여한다. 그의 작품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에서 나타나듯이 말이다. 떠나기 위해서는 가볍고 경쾌해야 한다. 박현웅의 빈 자동차와 풍선들이 상징하는 바가 그것이다. 자신의 옆에 물질적인 것을 쌓아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리와 가슴을 새로운 경험으로 채우기 위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금 이곳을 떠나고자 한다. 반복해서 떠나는 이 끝없는 여행은 동일자의 경계를 넘어, 차이와 타자를 찾아 떠나는 이행 중의 주체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