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선 도로에 인접해 있으며 크고 작은 상가가 밀집한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해, 주변과 차단되는 기존의 교문 구조물을 변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업 수행자들은 미술의 개입 지점으로, 기존 구조물 위를 덮는 표피 장식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들의 의도는 ‘자연 이미지를 중심으로 세라믹 칼라 모자이크 벽화’로 나타났는데, 철제 대문을 연결하는 세 개의 기둥과 기존의 담 및 축대와 연결되는 약간의 부분을 모자이크로 덮었다. 경사가 심한 교문 위의 통로는 최악의 환경 조건으로, 나무계단 쪽 벽은 붉은 벽돌과 슬라브 지붕 등이 덧대어진 개인 주택과 상가건물의 낡은 벽이 지저분하게 노출되어 있었고, 상태가 비슷한 그 반대편벽은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무 계단이 시작되는 쪽의 벽면을 가리기 위해 모자이크 타일을 붙인 작은 화단을 조성하긴 하였지만, 지저분한 벽면을 가릴 수 있을 만큼의 큰 나무가 심어지기에 공간은 충분치 않아 보인다. 그나마 실제로 나무를 심는 것은 학교 측에 맡겨져서 잘못하면 쓰레기 통으로 방치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썰렁한 환경을 가릴 수 있는 화려한 모자이크도 교문 주변에서 몇 미터 되지 않아 새롭게 덧붙여진 장식과 낡은 축대 사이의 단절감이 심하다. 모자이크 장식은 아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개구리, 꽃, 나무, 나선형 패턴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기능주의에 충실한 그리드 형태의 스테인레스 교문 및 나무 계단과 어색하게 만나고 있었다. 이 현장에서 기능과 장식 사이의 괴리는 매우 심해 보였다. 기능과 장식 사이에 놓인 긴장은 미술이나 디자인의 역사에 나타나 있다. 특히 심미주의 계열의 작가와 비평가들은 장식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러스킨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은 모두가 어느 장소엔가 부합되어 있다. 즉 어떠한 목적에 종속되어 있다. 장식성 없는 최고급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오스카 와일드는 ‘회화란 원래 인간이 만든 건물의 평범한 벽면을 시와 꿈과 이념에 의해서 장식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학교 교문 안팎의 벽들은 평범한 벽면조차도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부분을 재개발이나 사유재산 등의 이유로 포기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협소해 진다. 기존의 표면을 쓸고 다듬는 정도의 일이 남은 것이다. 그래서 기능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기능만으로 끝냈고, 장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장식으로만 끝낸 듯하다. 기능과 장식은 서로 겉돌고 있으며, 양자가 상호작용하고 그 다음에야 도래할 수 있는 상징적 차원이 끼어들 여지는 더욱 좁아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현재 순수 미술이 처해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미술 말고, 공공미술이라는 것이 또 필요한 것 아닌가. 공공미술은 순수미술이 가지는 조형적인 능력에 더해 사회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공공미술은 제각각의 이해관계에 의해 무관심하게 방치되어 있는 부분을 새롭게 활성화하기 위해 우호적이지 않은 주변을 설득하는 마지막 노력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공공미술가는 한계 내에서만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려는 소극성을 넘어서, 수완 있는 전략가가 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이 충족되지 못했기에 송림 초등학교 교문 만들기 사업은 약간의 환경 미화만을 결과물로 남겼다.

사업은 교문의 위치와 구조를 변경할 수 없다는 조건(학교 측의 요구) 아래, 기존 구조물에 대한 표면 장식과 경사가 심한 통학로를 개선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타일작업의 연장으로 조성된 화단이나 나무 통학로 옆의 공간에 아스콘을 까는 작업도 학교 측에 맡겨져 있고, 공공 벽화가 자리 잡기 좋은, 경사로 끝자락에 있는 병설유치원 벽면의 빈 공간도 제안서만 제출한 상태라고 한다. 나무 통학로 외에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벽면, 바닥 면 등의 처리는 예산부족으로 완전히 손을 놓고 있고, 기존 교문의 구조물의 일부 표피만을 장식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어지러운 상업시설 때문에 교문 기둥과 그 언저리의 다채로운 표면장식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 장소가 초등학교라고 어린이 풍의 그림으로만 채운다는 발상도 신선하지 못하다. 교문 작업이 끝나고 주변 동네를 소재--새로 작업한 교문도 포함된다고 하기는 함--로 작품을 하여 송림 초교에서 전시를 하겠다는 계획은 실제로 시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맥락이 맞지 않는다. ‘작가의 작품 전시’ 같은 것을 공공미술의 현장에서 하기보다는, 그 여력으로 부족한 예산을 메울만한 의지와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출전 | 인천문화재단 공공미술 프로젝트 ‘아름다운 교문 만들기’ 참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