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천성명처럼 자의식의 심연으로부터 다양한 상징들을 길어 올리는 작가를 대하면 더럭 겁부터 난다. 이건 결코 엄살이 아니다. 그 이유는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또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한 작가를 비평하는 일은 비평 이전에 이해의 넓은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해라는 게 결코 만만치 않다. 그것은 한 두 마디 말이나 몇 번의 대화로 충족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또 같이 산다고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을 몸으로 부딪치며 산 부부조차 이해의 강을 건너지 못해 끝내는 헤어지는 일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택한 것이 이 책의 주제에 해당하는 ‘몸’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살펴볼 것인가.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천성명이 명백히 자신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을 현저히 닮은 인물상을 설정한다. 그가 만든 자소상들은 그러니까, 자신의 분신인 셈이다. 머리를 박박 깎은 얼굴에 서양의 죄수 혹은 피에로를 연상시키는 줄무늬 티셔츠와 검정색 바지를 입은 인물상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둡거나, 우울하거나, 고통스럽거나, 공포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 짐작컨대, 그가 들려주는 나레이션은 그 자신의 깊은 내면의 언저리 어디쯤에 도사리고 있을 정신적 외상trauma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인 상징과 은유로 서사narrative를 풀어가게 만든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그의 작품을 통해 그에 관한 이해의 강을 건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먼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어제는 작업실로 나오기 전, 방에서 거울을 찾았다. 방바닥에 늘여놓은 책 더미를 뒤지고 옷가지 사이를 아무리 뒤져도 욕실 벽 이외엔 거울은 없었다.”
이 거울은 그의 작품에도 나오는 소품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거울은 실제의 거울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소상의 모습을 그린, 액자에 담긴 그림이다. 이 거울의 이미지는 나르시소스의 신화가 의미하는 것처럼, 그가 자의식이 강한 작가임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에서 자의식은 이해의 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핵심적인 키워드인 셈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 번 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작업이 진척이 없다.
산 속에서 길을 잃은 이가 같은 숲을 계속 헤매듯 며칠 째 제자리걸음이다.”
<광대, 별을 따다>(2000), <잠들다>(2001), <길을 묻다>(2002), <거울 속에 숨다>(2003), <달빛 아래 서성이다>(2005), <그림자를 삼키다>(2007, 2008) 등등,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일곱 차례의 개인전들은 모두 작업과 관련하여 자아의 심리적 방황을 서사 형식으로 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실제보다 작은 크기의 자소상들을 비롯하여 개, 풍경, 소녀, 거울, 물고기, 대나무 숲, 새, 검은 연못, 백열등, 칼 등등의 형상들은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내지는 길항관계를 보여주는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들은 모두 작가 자신의 심리적 트라우마와 관련돼 있다. 그것들은 매우 난해하여 이를 보는 관객은 암호를 푸는 것과 같은 수고를 해야 한다. 가령, 풍경을 든 소녀는 그의 글 속에서는 어떤 길을 암시하는 것 같지만, 욕망에 눈이 먼 ‘사내’(자아)는 ‘보지도 듣지도 못’ 한다. 그 풍경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의 진술에 의하면, 그 풍경의 진원지는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 나선 어느 날 새벽에 듣던 산사의 풍경 소리다.
“산허리를 돌아가면 향내음이 가득한 절이 있었다. 그리고 새벽의 찬 공기를 따라 흐르던 짙은 향냄새를 타고 간혹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던 종소리, 그곳에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풍경이 자신의 ‘작은 키’에 비해 ‘너무도 높이 있었다’고 술회한다. 이 의식 속의 원형성archetype이 곧 성장이 멈춘 것 같은 작은 키의 자소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판단기준criteria이 아닐까. 위의 인용문의 첫 머리는 “작업이 진척이 없다”는 구절로 시작된다. “산 속에서 길을 잃은 이가 숲을 계속 헤매듯”, 작업에 진척이 없어 제자리걸음인 작가에게 있어 풍경소리는 소녀가 비춰주는 등불처럼 미래의 어떤 지향점일 게다.
천성명의 작품에서 소망은 결코 충족되지 못하는 심리적 기제에 불과하다. 물고기처럼 되길 원하지만 허사로 돌아가고, 자기살해를 시도하지만 도로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그의 몸은 욕망과 허무, 사랑과 증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갈등 등 다중적 자아가 소용돌이치는 전쟁터요, 의식의 성장통이 벌어지는 제의(祭儀)의 장소다.
작업의 과정에서 느끼는 작가 특유의 내면의식에 관해 천성명만큼 뛰어난 은유와 상징을 사용하여 표현한 작가도 드물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어둡고 우울한 내면적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설치작업을 통해 관객들은 그가 벌이는 자작극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그것은 상상을 통해 가능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기 내면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자기살해, 연민, 상처, 사랑, 증오, 좌절, 갈등, 불안과 같은 내면적 감정들을 이처럼 절실하게 압축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천성명의 조각은 몸을 통한 한편의 심리극이다. 작가의 심리에 해석자로서의 관객의 심리가 덧붙여진다. 이 두 요소가 서로 만날 때 그의 작품은 보다 풍부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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