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작가 자신이 투사된 것으로, 자유로움으로부터 속박에 이르는 상태들로 표현된다. [기억] 시리즈에서, 물고기와 같이 등장하는 소재 나침반은 물고기 문양이나 화석등과 연관되어 무한한 시간성에 상응하는 공간적 이미지를 이룬다. 어망은 나침반과 같이 둥근 외곽선을 반복하면서 화석이나 문양, 그림에 고정되기 위해서는 잡혀야 하는 운명적 상황을 표현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에 새겨진 한시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살아있는 것을 포획하는 어망도 헤지고 녹이 슨다. 한편에서 스킨 스쿠버의 경험 등이 어우러진 심해의 이미지가 있으며, 그것은 동시에 기억, 즉 무의식으로의 탐사와 중첩된다. 기억 속의 바다, 즉 고향은 현무암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잘 나타내는 소재로 더욱 분명해 진다. 물고기를 비롯한 몇몇 소재들의 바탕에는 물기 머금은 지면에 점점이 뿌려지면서 번져나간 얼룩들이 깔려 있곤 한다. 그것은 명확한 바다 속 풍경이 아닌, 얼룩은 떠도는 기억들과 흐릿한 흔적들이 출몰하는 카오스 패턴을 이룬다.
어떤 관객들은 여기에서 해양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사고나, 검은 색으로 죽어가는 근해의 풍경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무암이 화면 가득히 배경으로 깔려 있고 그 위에 또 다른 현무암이 놓여있는 작품 [흔적](2005)은 추상과 재현이 중첩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배경의 암석에서 현무암을 이루는 검은 구멍들이 얼룩들로 대체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면의 암석은 재현에 충실한 형태이고 뒷면은 뿌리기 등의 기법을 통해 추상적인 효과가 가미된다. 육지의 풍경과 관련된 꽃이나 나무 등도 자세히 그리는 수법과 비정형성을 병치시킨다. 최근작 [꽃1](2009)은 종이 위에 번진 얼룩이 꽃과 잎의 수액처럼 보인다. [꽃2](2009)는 자세하기 표현되지 않은 꽃송이들과 배경으로 한층 더 느슨하다. 이름 모를 꽃은 비워 놓은 부분이 많으며, 꽃송이라기보다는 뭉글거리는 색채 덩어리로 보인다. [나무](2009)는 화면을 관통하는 나무를 자세하게 그리고 배경은 색과 음영이 어른거리게 했다.

긁으면 표피가 떨어져 나갈듯 거칠거칠하게 처리된 나무줄기의 표현에서 수채화 특유의 투명함과 가벼움이 발견되지 않는다. 수채화는 재료적인 면에서 약간의 돌출성만 용납하기 때문에 유화 같은 마티에르를 내기 힘들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마스킹 액 위에 나무를 그려 질감의 효과를 더했다. 그리고 바탕화면은 수세미로 종이를 밀어서 수분을 많이 흡수하게 하여 처리했다. 고승우는 주로 수채화를 그리지만, 그의 수채화는 이렇듯 조금 색다른 절차를 거친다. 물고기나 나무 같은 대상은 사진 못지않게 세밀하게 표현하고 배경은 대체로 우연성이 강한데, 그것은 화면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수채화의 우연적인 면이 좋다고 말한다. 칠하기 전, 또는 칠하면서도 수세미, 사포, 나이프 등으로 종이를 문지르고 먹이나 물감을 뿌리면 번지면서 우연적 효과가 나타난다. 바탕을 많이 처리하면 물의 수용성이 높아진다. 바탕처리 때문에 반드시 판넬 작업을 한다.
잘못하면 산만해질 수도 있고 크기가 커지면 표면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작품 크기도 한정되는 면이 있지만, 화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우연성이 새로운 느낌과 자극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 화가보다도 사생을 많이 한다. 작업실에는 야외 스케치용 6호 사이즈의 종이 위에 그린 바다와 산 풍경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수채화의 기본에 충실한 아카데믹한 그림이 싫어서 작품에 다양한 효과를 실험하면서도 사생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작업의 리듬을 깨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는 직접 그린 사생과 작업실에서 의도적으로 한 것을 구별하며, 후자의 경우에만 매몰되면 화면에서 답답함이 느껴진다고 한다. 특히 많은 소재가 등장하는 경우, 구성에 신경을 쓰다보면 작위적인 면이 생기기도 한다. 반면 사생은 새로운 작업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생 작품은 대부분 발표 작품의 목록에 끼워 넣지 않는다. 사생은 베낀다는 느낌만 줄 뿐이지만, 작업에 빠져서는 안 되는 과정이다.
물고기, 어망, 나침반, 나무, 꽃 등의 소재를 현실 속에 명확한 대상으로 짜 넣기 보다는 공간에 떠도는 효과를 주는 것이 고승우의 독특한 바탕처리이다. 바탕에서 오묘하게 번지는 얼룩들은 사물과 사물 사이를 이어주거나 떼어내고 잠재적인 운동감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물고기 같은 소재가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사하는 사물이라면, 바탕면의 얼룩은 보다 근원적인 현실을 이룬다. 상상적imaginary의 대상은 거울 반사와 같은 명확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가지는 통일성은 가상적이다. 물고기는 가장(假裝)한 주체처럼 다양한 양태를 가진다. 바탕의 검은 얼룩들은 보다 깊숙한 곳에서 용출된 잔여물로 대상이나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라깡이 이론화한 현실계Real처럼 상상계, 상징계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그 구성물들의 감추어진 이면을 이루고 있다. 실재계는 상상계와 상징계의 기반을 이루는 물질적 기질을 의미하는 질료이다. 이 기질에는 몸이 포함된다.

그것은 정확하게 재현된 대상들과는 이질적인 형상을 이루며, 육체에서 출발한 충동을 표시한다. 여기에서 충동은 ‘의미를 생산하는 물질의 끊임없는 분열이며 항상 부재중인 주체가 생성되는 장소’(크리스테바)이다. 고승우의 작품에서 물고기 같은 상상적 투사물은 재현의 문법에 따라 정확하게 그려진다. 재현의 문법은 사회적 상징계symbolic의 산물이다. 라깡의 이론이 예시하듯, 상상계는 언제나 상징계에 의해 구조화된다. 관습으로 확립된 회화는 인류학자들이 정의하는 상징계처럼 언어 그 자체, 그리고 언어를 본떠 구조화된 문화의 전 영역과 관련된다. 자연적 대상이 상상적 투사 물에 해당된다면, 회화는 자율적인 우주를 지향하는 문화의 영역이다. 그러나 명명, 의미화, 사회 질서를 나타내는 상징계는 죽음, 부재, 결여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회적 주체에게 인식의 합의점을 만들어주는 표상의 질서를 형성한다.
사회적 소통의 매개이며 역사를 가지는 관습으로서의 예술은 이러한 표상의 질서에 속하지만, 기성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새로운 것을 생성하기도 한다. 예술에 있어 새로움이 가능한 것은 충동과 상징 사이에 상상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 상상, 상징은 연동되면서 의미를 만들어 나간다. 크리스테바는 의미화 과정의 세 요소--상징계, 상상계, 실재계(기호적 충동의 영역)--를 연결시켜 주는 것은 사랑이라고 본다. 사랑이 없다면 연결고리는 끊어지고 상징계가 상상계와 실재계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는 정신병이 발생한다. 고승우의 작품에는 자신이 기원한 모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있다. 그림은 그것에 대한 기억과 흔적으로 가득하다. 그의 그림에서 비결정적인 바탕 면은 그림의 상징적 언어에 충동을 끌어 들인다. 충동은 쾌락에 가득한 의미를 낳지만 의미를 교란시키기도 한다. 이질적인 물질의 운동인 충동은 단절된 이미지들을 상징과 다시 연결시킨다.
출전 | 미술과 비평 2009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