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인간을 욕망의 동물로 규정하면서, 리비도 즉 통제 불능의 맹목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것으로 진단한다. 평소에는 그 욕망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제도(혹은 제도화된 의식)가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야 만다(억압된 것들의 귀환). 욕망의 이러한 자기실현을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엿볼 수 있는데, 그는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도박으로도 유명하다. 작가의 일화를 보면, 집필하지도 않은 소설의 선불을 받아내 도박으로 탕진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책 쓰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결국 도박이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던 셈이다. 도박은 작가를 절체절명의 상태로 몰아가고, 그 실존적 위기의식에서 작가는 글을 썼던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도박이 아니라, 도박으로 인해 빚어진 계기 즉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계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 계기 없이는 책도 불가능해진다. 욕망은 이처럼 양면적이다. 존재를 절체절명의 위기상태로 몰아가는가 하면, 이와 동시에 그 위기를 돌파하게끔 만들어준다. 이를테면 창조적인 그 무엇을 생산하게끔 유도한다.
두민은 주사위와 카지노 칩을 소재로 해서 행운 또는 운명을 형상화한다. 이전작품에서는 주로 욕망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이 또한 행운이나 운명에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그림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욕망의 형상화로 포크와 함께 쇼윈도에 진열된 명품 하이힐 등이 소재로 채택됐으며, 특히 그 끝이 날카로운 포크의 형태가 욕망의 공공연한 공격성을 암시한다.
더불어 욕망은 수면에 반영된 이미지에도 투사된다. 일종의 유사풍경의 형식을 취한 것으로서, 비에 젖은 아스팔트길 표면에 비친 유흥가의 불빛들, 휘황한 네온불빛이 욕망의 유혹을 암시한다. 이때 반영된 이미지를 그린 것인 만큼 원래의 이미지가 역전돼 보인다. 그리고 아스팔트 특유의 표면질감을 위해서 작가는 한지를 여러 겹 대고 두드려 중첩시킨다. 이렇게 캔버스 표면에 오돌토돌한 미세요철화면을 조성한 연후에, 그 위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 보기에 따라선 점묘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실제로 아스팔트의 미세 요철 위에 광점들이 반사되면서 점점이 빛을 발하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준다. 때론 아스팔트 표면에 물방울이 떨어져 수면에 작은 파문이 일고, 그 파문과 함께 상이 흐려지면서 왜곡되기도 한다. 이로써 두민의 그림은 반영상과 역전상, 그리고 왜곡상을 통해 욕망의 허구성(실제를 결여하고 있는)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두민의 작업은 주사위와 카지노 칩으로 옮아가는데,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만큼 그에게는 친숙한 소재이다. 작가는 주사위와 카지노 칩을 소재로 해서 행운과 운명(Fortune)을 주제화하는 한편, 그 이중성과 양면성(Janus)을 드러낸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두 얼굴의 신인 야누스에 빗대어 행운과 운명의 이중성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띤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자연스레 행운과 관련된 보편적인 도상으로 유도한다. 그 전형적인 예로는 돼지와 금박을 소재로 한 그림과 조형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들 소재들이 행운을 가져다주는 결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비해, 주사위는 행운과 불운이라는 상반된 의미에 대해 모두 열려 있게 된다. 작가가 주사위에 주목하는 이유 또한 바로 이런 이중성 내지는 양면성에 있으며, 그것이 고스란히 삶의 보편적 상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삶의 보편적 상징으로서의 이중성과 양면성이야말로 두민의 그림을 지배하는 키워드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림 도처에 이런 상징적 장치가 발견된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이중 이미지 내지는 반영상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외부의 이미지를 되비치는 성질을 지닌 유리나 거울을 테이블 삼아서 그 위에다 주사위와 칩을 그려 넣는 식이다. 화면은 자연스레 상하로 양분되는데, 테이블 위에 그려진 주사위와 칩의 이미지가 화면 아래쪽 테이블의 표면에 반영됨으로써 똑같은 상이 역전된 형태로 반복 재현되는 것이다. 이때 반영상의 이미지는 약간 흐릿하거나 초점이 흔들리게 표현됨으로써 테이블 위의 선명한 이미지와는 대비돼 보인다. 이러한 대비(실상과 허상)로써 작가는 행과 불행, 운과 불운의 양면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배경화면으로 도입하는 흰색 화면과 검정색 화면 또한 운의 양면성, 삶의 양면성(밝음과 어두움)을 암시한다. 이외에도 양면성은 그 존재를 선명하게 부각하고 있는 주사위와, 상대적으로 흐릿하게 그 개략적인 형태만으로 제시돼 있는 칩을 대비시키는 것에서도 느껴진다.

이와 함께 양면성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주사위 자체의 속성으로부터 유래한다. 주지하다시피 주사위는 육면체로 돼있고, 그 면의 숫자는 각 면의 표면에 새겨진 숫자와 일치한다. 이때 주사위의 전면과 그 이면의 숫자를 합하면 7이 되는데, 어떤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리고 숫자 7은 행운을 상징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주사위는 처음부터 행운의 상징으로서 의도된 것이다. 다만 주사위가 행운을 의미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데, 그 전면과 이면의 숫자가 합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물의 한 면만으론 행운을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이면과 함께 보면 행운을 점칠 수 있다는 주문처럼 읽힌다. 이로써 주사위의 숫자에 숨겨진 의미는 자연스레 사물의 이면읽기와 행간읽기로 유도한다.
이처럼 주사위는 행운을 상징하며, 작가는 그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고 극대화한 그림을 제시한다. 주사위 9개를 모아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을 이루도록 배열한 그림에서, 그 위에 주사위 표면의 하얀 점(숫자를 표시한)을 이용해 일종의 이모티콘 형식의 복 주머니 그림을 중첩시킨다. 이로써 주사위에 함축된 행운의 의미를 반복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두민의 그림은 포토리얼리즘 경향으로 범주화되는 만큼 회화적이기보다는 사진적이다. 그 생리나 질감이 사진에 가깝다. 이를테면 줌을 조절하거나 초점을 조작하는 등의 사진 고유의 시각적 장치와 더불어, 포커스가 나간 것처럼 흐릿한 이미지를 의도하고 연출한다. 그리고 주로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한 주사위를 선명하게 부각하고 화면의 가장자리를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공간적인 깊이감을 준다. 이렇듯 대체로 주사위 이미지는 그 자체로도 선명하게 표현되지만, 그 표면에 덧바른 투명 에폭시로 인해 선명함이 더욱 강화되는 느낌이다. 작가가 소재로 사용하는 주사위는 룰렛게임 전용 주사위로서 밝은 주황색감의 투명 에폭시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와 같은 소재로 마감함으로써 마치 실물 같은 느낌을 주게끔 의도한 것이다.
이로써 주사위와 카지노 칩을 소재로 한 두민의 그림은 욕망과 행운 그리고 운명 등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삶의 조건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행운 그 자체는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비결정적인 것(가능성의 자장에 속해 있는 것)임을 주지시키고, 그 열려진 의미구조를 통해 삶의 이중성과 양면성이라는 보편적 상징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