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환 전 | 5.22--6.11 | 송은 갤러리



머리, 얼굴, 입술 등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과 체모 같이 무정형적인 재료와 질서 정연한 진열 방식은 묘하게 어울린다. 그자체로는 물리적으로 고정되기 힘들고 주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소재들이기에, 배열하는 방식이 각별히 중요하긴 하리라. 지저분한 재료들은 귀중한 수집품이나 희귀한 유물, 또는 명품 매장의 상품처럼 제시된다. 작품 [내가 생산한 것_12개의 입술]은 입술 껍질을 입술모양대로 배치했는데, 각질의 모자이크가 배치된 12개의 판에는 몸에서 시료를 채취한 날짜들이 기재되어 있다. [내가 생산한 것_우주]는 하얀 비듬을 어두운 바탕에 뿌린 것으로, 줄지어 벽에 걸린 12개가 마치 아득한 은하수 사진처럼 보인다. [내가 생산한 것_얼굴 각질]은 얼굴에서 일어나는 하얀 각질을 필름으로 채취한 것이다. 병렬된 30개의 판은 얼굴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서 안면 가죽 컬렉션 같은 오싹함을 준다.
12나 30같은 숫자가 자주 나오는 것은 몸에서 나오는 재료의 생산주기와 관련된다. 개인의 DNA 정보가 들어있으며, 일정한 주기로 수집될 수 있는 각질이나 체모들은 그자체로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삶은 삶만이 아닌, 죽음과의 교차로 인해 지속가능한 것이다. 낙엽이 지고 새잎이 나듯, 묵은 각질이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김철환의 작품에서 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갱신의 대상으로 변화의 와중에 있다. 여기에서 갱신이란 진보나 퇴보의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순환에 가깝다. 탈각된 각질이나 체모는 몸의 경계에서 생산된다. 몸은 하나의 상징체계로, 안과 밖의 경계를 이루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몸의 가장자리들, 그 경계선 상에서 생산되는 그것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속성을 가진다. 밖으로 내던져져야 오염물 내지 비천함이 예술작품이라는 방식을 통해 경계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작가는 나름의 규칙에 의거하여 명확히 구획 짓고 배열한다.

그렇게 해서 ‘순수를 위협하는 오염’(메리 더글러스)이나 ‘정체성과 질서를 방해하는 비천함’(크리스테바)은 변형된다. 은폐되고 폐기되어야 하는 대상은 생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염의 제거나 비천함의 승화는 아니다. 김철환의 정교한 장치들은 대상을 그 자체로 주목하게 하는 것이지, 그것을 미화하거나 숭고한 의미를 덧붙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체가 아닌 나머지들, 코드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애매한 것들을 다시금 중앙의 무대에 올려놓는 그의 작품은 인간의 중심이 이제 다른 곳에 있음을 알려준다. 부분이 또 다른 전체를 이루고, 거대 우주의 차원으로 도약하는가 하면, 자아는 수 십 개로 차이로 분열하는 타자들이 된다. 동일성은 이제 비동일성에 자리를 내준다.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인간, 거대 서사의 주체, 유기적 총체성은 수정은 불가피해진다. 여기에서 인간은 과정 중에 있고 개방상태에 있다. 예술은 늘 차이와 반복 속에 놓여 진 몸, 요컨대 갱신되는 몸의 기록들과 관련되어 있다.

출전; 월간 퍼블릭 아트 6월호